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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 사상 첫 병원에서 선고…치매환자 집행유예(종합)

등록 2020.02.10 12: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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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아내 살인범, 1심 징역 5년 선고

2심, 징역 3년·집유 5년…주거지 제한

치매 환자에 처음 '치료적 사법' 도입

"계속 치료가 인간 존엄가치와 조화"

[서울=뉴시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10일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살인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2020.02.10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시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10일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살인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2020.02.10 (사진=공동취재단)

[고양·서울=뉴시스] 옥성구 고가혜 기자 =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60대 치매 환자에게 항소심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항소심은 치매 환자인 점을 고려해 피고인이 입원한 병원에서 선고를 진행했다. 치매 환자에 대한 '치료적 사법' 절차를 도입한 판결은 국내에서 처음 나온 것이고, 살인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이 병원에서 이뤄진 것도 처음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10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68)씨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과 달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 집행유예 기간 5년 동안 보호관찰을 명하고, 특별준수사항으로 법무부 보호관찰관 감독 하에 치매전문병원으로 주거를 제한한 상태에서 계속 치료받을 것을 명령했다.

이날 재판부는 A씨가 입원한 경기도 한 병원을 직접 방문해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A씨는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결과가 중대해 엄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범행 당시 A씨가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고, 그 상태는 범행 후에 더 악화해 현재 중증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피해자이자 A씨의 자녀들은 선처를 바라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검찰은 현재 치매환자 치료를 위한 감호시설이 없어 (치료감호) 청구를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며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A씨를 교정시설로 옮기는 것은 현재나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형을 선고하기보다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 치매전문병원에서 계속적인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과 인간이 존엄 가치를 지닌다고 선언한 헌법과 조화를 갖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고양=뉴시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10일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살인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2020.02.10 (사진=공동취재단)

[고양=뉴시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10일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살인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2020.02.10 (사진=공동취재단)

A씨는 지난 2018년 12월 아내에게 핀잔을 들은 뒤 아내를 여러 차례 때리고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1심은 A씨가 범행 후 흉기를 숨긴 정황 등을 종합해 심신상실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A씨는 구치소 수감 중 면회 온 딸에게 '죽은 아내와 왜 함께 오지 않았냐'고 말하는 등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자녀들은 항소심에서 선처를 바라며 A씨의 치료를 적극 탄원했다.

검찰도 치료적 사법을 위한 조치에는 적극 공감하면서도 현행 치료감호 절차를 통한 치매 치료는 시설의 한계로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항소심은 지난해 9월 A씨에 대해 주거를 치매전문병원으로 제한한 치료 목적의 보석을 직권으로 허가했다.

이후 A씨가 입원한 병원은 법원에 A씨의 조사 결과를 매주 한차례 통지해 왔고, A씨 자녀 역시 보석조건 준수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왔다. 재판부도 미리 병원을 찾아 보석조건 준수 점검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날 병원에서 열린 선고에 앞서 검찰은 "A씨 본인이나 가족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검사로서 개인적 감정보다 국가 기능과 국민들을 위한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며 1심과 같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A씨는 최후진술을 통해 "중요성을 알고 수긍하겠다"고 밝혔다. 또 A씨 측 변호인은 "완치가 어려운 치매 특성상 A씨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최대한의 선처를 요청했다.

이후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치료적 사법절차가 계속됨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5년간의 보호관찰 동안 치매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이런 명령을 위반하면 집행유예가 취소돼 교도소에 수감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아울러 A씨가 가족에게도 이같은 특별 준수사항을 이행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고, 치료적 사법절차를 협조해준 검찰과 변호인, 병원에도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법원은 지난 2014년에도 찾아가는 재판으로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전염성이 높은 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한 B씨 병원을 찾아가 선고를 내린 적 있다.

한편 이 사건 선고를 내린 정 부장판사는 평소 치료적 사법 도입에 적극적이다. 선진국에서 확산 중인 치료적 사법은 '사법을 치료 주체로서 기능하게 하는 사법체계 또는 그 체계 내 사법주체의 결정방식'을 의미한다. 기존 형사재판과 달리 처벌보다 치료에 목적을 두는 것이다.

앞서 정 부장판사는 음주 뺑소니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30대 남성에게 직권 보석 뒤 '치유법원 프로그램' 이행을 명령했고, 이를 잘 수행하자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로 감형한 바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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