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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 넋 받들어 굳건한 오월로' 5·18 43돌 추모 절정

등록 2023.05.17 14:13:25수정 2023.05.17 14: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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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아들 묘 앞 주저앉은 유족들 애끓는 심정 토로

"항쟁 정신 배움 기회 늘어야" "헌법 수록 서둘러야"

5월 1~16일 참배객 14만 2173명…코로나 이후 최다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2023.07.17.hyein0342@newsis.com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변재훈 이영주 김혜인 기자 =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하루 전 오월영령의 숭고한 항쟁 정신을 기리고 이어 받으려는 참배 분위기가 절정에 오르고 있다.

5·18 43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는 오월영령 넋을 기리고 항쟁 정신을 되새기는 참배 행렬이 줄을 지었다.

고(故) 박금희 열사의 고등학교 동창 문애숙(60·여)씨는 이날 오랜만에 친구의 묘를 찾아 그간의 미안함을 토해냈다.

문씨는 1980년 5월 21일 박 열사와 함께 시민들을 위한 헌혈에 동참하고자 집을 나섰다. 박 열사를 만나 기독병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으나, 병원 내 헌혈자가 너무 많은 탓에 헌혈을 하지는 못했다.

문씨는 홀로 헌혈을 하고 나온 박 열사를 데리고 귀갓길 버스에 다시 올라탔으나 비극을 맞닥뜨렸다. 지원동에서 방림동으로 향하는 교차로에서 버스 운전대가 꺾이는 순간 계엄군의 흉탄 수십여 발이 버스를 향해 날아온 것이다.

창가 쪽에 앉았던 박 열사는 배에 흉탄을 맞고 숨졌다. 박 열사의 옆에 앉아있던 문씨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박 열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문씨는 43년 내내 당시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날 친구들과 함께 박 열사를 추모하러 온 문씨는 흰 국화 다발을 묘소에 올린 뒤 고개를 숙였다.

그는 "금희는 숨지기 전날에도 헌혈을 했다고 한다. 그런 친구한테 헌혈을 하러 가자고 한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며 "그 헌혈차에 올라타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금희는 살아있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미안하다"고 눈물을 쏟았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현장학습을 온 지역 중학생이 고 김경철 열사의 묘소에 들러 공부하고 있다. 2023.05.17. leeyj2578@newsis.com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현장학습을 온 지역 중학생이 고 김경철 열사의 묘소에 들러 공부하고 있다. 2023.05.17. [email protected]



지역 중학생들도 단체 참배에 나서며 추모 분위기에 동참했다. 학생들은 열사들의 행적을 전하는 해설사들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지그시 감으며 오월 광주의 아픔을 되새겼다.

학생들은 열사들이 잠든 묘역을 보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책 속에서만 배웠던 5·18을 이제서야 실감했다"면서 탄식했다.

한 학생은 옛 전남도청 진압 당시 최후까지 남아싸운 '교복 입은 시민군' 문재학 열사의 사연을 듣고선 "안타깝다"며 고개를 떨궜다.

참배를 마친 한 학생은 체험 활동지에 '광주정신은 민들레'라고 썼다. 이유로는 '민들레는 꽃이 화려하게 피다 결국 꺾이고 시들지만 씨앗을 날려보내 더 많이 피어나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전남 나주 남평중학교 정재원(16)군은 5·18민주묘지가 익숙하다. 정군의 아버지의 이름 '정찬용' 석자가 민주묘지에 잠들어있는 열사의 이름과 같다는 이유에서 참배를 여러 차례 온 경험이 있어서다.

정군의 아버지는 1980년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홀연히 사라진 바 있다. 친구들은 사라진 정군의 아버지가 망월묘역에 묻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차례 참배를 하러 간 적이 있다.

훗날 정군의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이 확인됐지만 당시의 기억을 바탕으로 동명의 열사를 수어번 찾아 참배해왔다는 설명이다.

정군은 "5·18에 대한 여러 공부를 하다보니 점차 열사들의 생애 등에도 관심이 간다"며 "김경철 열사와 박금희 열사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공부하는 데 앞서 이들의 희생을 기리겠다"고 했다.

광주 영천중학교에 재학 중인 조영길(16)군은 박관현 열사 묘를 참배한 뒤 "열사들의 눈물 겨운 투쟁 과정이 인상 깊었다"며 "교과서에서는 열사들이 계엄군에 의해 구타 당했다, 숨졌다 등으로만 쓰여있어 자세한 내용까지는 몰랐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5·18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마련되길 바란다"는 소망도 전했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3.05.17. leeyj2578@newsis.com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3.05.17. [email protected]



43년 전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가족을 잃은 5·18 유족들도 묘역에서 가슴 속 응어리를 눈물로 쏟아냈다.

고(故) 권호영 열사의 어머니 이근례(83) 여사는 까까머리 고등학생 당시 찍힌 권 열사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졌다. 권 열사는 1980년 5월 26일 행방불명됐다가 22년 만인 2002년 망월동 구묘역 무명열사 묘소에서 백골의 모습으로 가족의 품에 안겼다.

이 여사는 "43년 세월을 보내며 눈물이 마를 줄 알았지만 매년 5월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흐르더라"며 "후대들이 아들을 잊지 않는 것만이 남은 여생 동안 바라는 것"이라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고 임수춘 열사의 아내 윤삼례(81) 여사도 남편 묘소 앞에서 힘겹게 섰다. 숨진 남편을 향해 '신랑'이라고 다정히 부르던 윤 여사는 차오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다가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임 열사는 1980년 5월 21일 학동에서 자신의 잡화상 앞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계엄군의 몽둥이에 맞아 숨졌다.

윤 여사는 "매년 5월마다 스스로 다독이고 가슴을 두드리며 설움을 풀고 있다. 묻어둔 그리운 마음 모두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될 날 고스란히 챙겨가고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故) 권호영 열사의 어머니 이근례 여사가 아들의 묘소에 바쳐진 꽃을 어루만지고 있다. 2023.05.17. leeyj2578@newsis.com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故) 권호영 열사의 어머니 이근례 여사가 아들의 묘소에 바쳐진 꽃을 어루만지고 있다. 2023.05.17. [email protected]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임희광 5·18 유족회 이사는 "시민이 항거해 이룩한 민주주의다"며 "헌법 전문에 이 정신을 수록해 모든 국민이 민주정신을 계승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기도 하남에서 온 서정은(45·여)씨는 "여전히 5·18을 두고 인터넷 상 혐오 발언과 폄훼 집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면서 "5·18정신이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정서가 되면 폄훼와 논란이 종식될 것"이라고 했다.

항쟁 당시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친 이태범(81)씨는 "보수·진보 정당 모두 5·18정신 헌법 수록에 동의하고 있다.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헌법 전문 수록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일부터 16일까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은 14만 2173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된 2020년 이후 처음으로 참배객 10만 명대를 넘겼다. 지난해 같은 기간 참배객 9만 6307명과 비교해도 큰 폭으로 늘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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