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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비핵화 협상 재개되면… 영변핵단지+α에서 시작 가능

등록 2019.03.04 1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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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의 수준은 큰 진전으로 평가할만해

파국으로 가지 않게 우리 정부 역할해야

【하노이=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확대 정상회의를 갖고 있다. 왼쪽 줄 앞부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럼프 대통령, 믹 멀베이니 대통령 비서실장 대행이다. 오른쪽 줄 앞부터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김정은, 통역, 리용호 외무상. 2019.02.28

【하노이=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확대 정상회의를 갖고 있다. 왼쪽 줄 앞부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럼프 대통령, 믹 멀베이니 대통령 비서실장 대행이다. 오른쪽 줄 앞부터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김정은, 통역, 리용호 외무상. 2019.02.28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언론을 통해 회담 결렬의 책임을 상대에게 지우는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참모들은 북한에 대한 압박(또는 비난)의 강도를 서서히 높이는 분위기다. 각종 스캔들로 곤경에 처한 국내정치적 곤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회담을 결렬시킨 쪽이 미국이기에 결렬 이후의 행보도 신속하게 이어갈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하노이에서 심야 기자회견을 통해 전날 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한 북한은 이후 아직 추가로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행이 아직 평양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의 특별열차가 평양에 도착한 이후에 추가로 반응할 전망이다. 

미국이나 북한 모두 아직은 회담 결렬이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이다. 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헤어졌다"고 강조했다. 회담을 누가 끝내자고 했느냐는 질문에도 "내가 먼저 걸어나왔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답해 김정은 위원장을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북한도 기자회견에서 더이상 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밝히지 않았다. 다만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김정은 위원장이) 생각이 좀 달라지신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기자들에게 밝힌 대목이 주목된다. 외교관의 어법으로 대단히 완곡하게 표현했을 뿐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무척이나 마음이 상했다(또는 화가 났다)는 뉘앙스로 들리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사라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게제했다. 2019.02.28. (사진=사라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 SNS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사라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게제했다. 2019.02.28. (사진=사라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 SNS 캡처) [email protected]


후폭풍이 얼마 동안, 어느 정도로 이어질 지 예측하기엔 아직 이른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측은 이미 결렬 이후의 전략을 정해두었을 것이다. '빅 딜'이 아니면 결렬시킨다고 마음을 먹고 회담에 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 딜'을 위해 대북 압박을 하든, 물밑협상을 하든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발언을 이어가는 건 미국이 이미 갈 길을 정해두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북한이다. 예상치 못하게 '한 방 크게 먹은'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상실감(또는 패배감)을 극복하고 대책을 마련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수령은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무오류설(無誤謬說) 이데올로기'가 북측의 행보를 어렵게 만든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주민들 앞에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북한도 수습에 나설 수밖에 없다. 회담을 재개함으로써 회담이 파탄난 것이 아니라 잠시 진통을 겪은 것으로 포장할 지, 아니면 회담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지워 처벌하고 미국과 본격적으로 대립할 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이라면 후자의 방식이 유력했을 것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어찌 나올 지는 알기 어렵다.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핵 및 미사일 실험 중단 등 북한의 선의적 조치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강력한 경제 제재로 인해 외화가 갈수록 고갈되는 형편상 '새로운 길'을 가기보다 우여곡절 끝에 회담에 다시 나설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을 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회담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결렬됐는지를 알면 우리 정부의 상황 대처에 도움이 될 것이다. 몇가지 징후들을 살펴보면 추상적이나마 진행과정을 더듬어볼 수 있다.

우선 회담 시작 전에 미국의 온라인 매체 복스(Vox)는 인터넷 언론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대사 사이의 실무회담 합의 내용을 보도한 것이 있다. 북미가 평화선언, 한국전쟁 유해송환,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 영변 핵물질 생산 중단과 남북경협 허용에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복스는 다만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고 덧붙여 실무합의가 잠정적임을 전했다.

실제로 정상회담은 실무합의를 크게 뛰어 넘는 수준에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2월 27일과 28일 모두 네 번 만났다. 27일 오후 단독회담과 뒤이은 확대 만찬, 28일 오전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이 그것이다.

회담이 결렬로 끝난 것과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전부터 여러차례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토대로 추정할 때 27일 단독회담에서는 기존 실무합의를 뛰어넘는 통 큰 합의를 해보자는 정도의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통역을 동반한 회담 시간이 불과 20분 정도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논의보다는 잘해보자는 정도로 덕담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이어진 만찬에선 그러나 분위기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만찬 배석자는 미국측에서 폼페이오 장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었고 북한측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미측 입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폼페이오 장관이었을 것이다. 1월에 임명된 멀베이니 실장 대행이 김영철 부위원장이나 리용호 외무상과 논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을 잘 알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시시콜콜 세부항목을 두고 언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회담이 결렬된 이후에 미측이 밝힌 입장을 토대로 유추하면 미측은 실무합의를 훨씬 넘는 '전면적인 핵폐기'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폼페이오 장관이었을 것이다. 결렬 직후 기자회견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 핵시설을 해체한다고 해도 그 외에도 미사일 시설과 핵탄두 무기 시스템 등이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해서 북한과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핵 목록 신고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북한도 회담에 나설 때 이미 미국이 실무합의를 뛰어넘는 요구를 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날 단독회담에 앞선 모두 발언에서 트럼프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하자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에게는 1분도 소중한데..."라면서 회담 시작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전날 만찬에서 나온 미측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는, 그리고 북한이 보기에 미국이 수용할 만한 새로운 제안을 준비한 모습이었다. 미국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말이다.

실무회담에서는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합의하지 않았다. 다만 영변에서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는 대가로 남북경협을 푼다는 내용만 있었다. 그런데 회담이 끝난 뒤 북측은 영변 핵단지 시설 전체를 미측의 입회하에 폐기하는 대신 유엔 안보리 제재 가운데 민생관련 5개 항목의 해제를 요구하는 제안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정황들을 감안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단독회담에서 영변 핵단지 전체의 폐기를 제안하고 미측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해제하도록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단독회담에서 제안의 세부내용을 논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확대회담이 오찬시간을 넘기면서 지연된 것을 볼 때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듯하다. 본격적으로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폐기의 범위와 값어치를 두고 논박이 이어졌을 것이다. 북한은 영변 핵단지의 값어치를 최대한 부풀렸을 것이고 미국은 마구 후려쳤을 것이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알려지지 않은' 핵시설을 언급했더니 북한이 놀라더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전면적 폐기를 제안했지만 미국이 알고 있는 미공개 비밀 시설을 언급하며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반박했는데 북측이 대응을 제대로 못했다는 설명이다. 북한이 영변 핵단지의 값어치를 높여 부르자 깎아 내리려 흥정한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하노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함께 28일(현지시간) 하노이의 메리어트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2019.02.28.

【하노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함께 28일(현지시간) 하노이의 메리어트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2019.02.28.


영변에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시설들이 집중돼 있다. 따라서 미공개 시설은 영변 이외 지역의 우라늄 농축시설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시설이 강선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농축시설일 것이라는 보도가 일부 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시설'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것으로 보아 보도된 적 없는 제3의 시설일 것이다. 

이 논쟁을 이끈 사람은 마이클 볼튼 백악관 안보보좌관일 것이다. 북측에서 확대회담 참석자는 전날 만찬과 동일하게 김영철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이었다. 미국만 볼튼 보좌관을 추가했다. 전날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던 볼튼 보좌관이 확대회담에서 역할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볼튼 보좌관은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 인사다. 확대회담에서 격렬한 논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측이 회담 결렬을 각오하고 볼튼을 투입했을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사후에 회담이 재개될 경우 나서야 하므로 악역을 맡기를 회피했을 것이다.

이상은 여러 관련 정황들을 토대로 재구성해본 회담 상황이다. 정확하진 않더라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결렬 대책을 내놓기에 앞서 회담 내용을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직 상황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뜻이다.

위 상황들을 보면 미국과 북한의 입장차는 매우 크다. 쉽게 좁혀지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북한이 정말 완전한 핵포기 의사가 있다고 믿을 수 있게 하는 증거는 아직 없다.

다만 수십년 동안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건설한 영변 핵단지를 미국 입회하에 폐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북한이 내놓은 것은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된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 재개된다면 최소한 영변 핵단지 및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미공개 시설의 완전한 폐기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결렬이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독여야 한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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