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 거리로 나오는 학부모들…왜?
전북 상산고 학부모, 교육부·교육청 앞 시위 잇따라
경기 동산고 학부모도 교육청 앞 릴레이 단식 시위
서울 대성고 학부모· 지정 취소에 반발해 행정소송
교육부는 "교육감 권한"이라며 팔짱…소송전 예상돼
【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전북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앞두고 갈등을 빚어온 상산고 학부모들이 20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9.03.20. [email protected]
20일 교육당국 등에 따르면 전체 42개 자사고 중 올해 재지정 평가 대상은 24곳이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대구·인천·경기·울산·경북·전남·충남·강원 등 10곳은 재지정평가 통과 기준점을 기존 60점에서 70점으로 올렸다. 전북교육청은 유례없이 80점으로 정했다.
지난 1기 평가 때에는 기준 점수 미달 학교에 대해 일반고 전환을 유예하거나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지만 이번 2기 평가부터는 달라졌다. 감사결과 회계부정이나 입시부정 등이 적발되거나 교육과정 및 입학전형 항목에서 '매우미흡' 평가를 받으면 교육감 직권 지정취소가 가능해졌다.
자사고 측에서는 교육당국이 자사고를 폐지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보고 반발했다. 자사고 절반 이상이 몰린 서울지역 자사고 교장들은 지난달 평가기준 재검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평가 거부까지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자 교육당국은 평가 거부 시 시정명령과 정원감축 등 행정처분으로 맞대응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4월부터 본격적인 평가가 시작되는 만큼 전국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다니는 자사고가 폐지되는 사태를 미연에 막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특히 재지정 평가 통과 기준점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80점으로 규정한 전북은 자사고와 학부모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전주 상산고등학교와 학부모, 동문들은 교육청 이 같은 방침이 부당하다며 평가기준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상산고 학부모 110여명은 20일 오전 11시 세종 교육부 청사 정문 앞에서 1시간 동안 침묵시위를 벌였다. 전북교육청의 자사고 평가 변경을 요구하는 2만1751명의 서명지도 교육부에 전달했다.
이날 상산고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는 "다른 시도와 형평에 맞게 평가기준점을 70점에 맞춰달라"고 요구했으며 "평가지표에서 법적 근거가 없거나 자사고 자율운영권을 침해하는 항목들을 시정해달라"고 촉구했다. 교육부에도 "직접 나서서 평가지표 수정에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 사항은 사회통합전형 선발이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전형을 의무사항으로 평가지표에 포함했지만 자사고는 초중등교육법상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의무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상산고 학부모들은 오는 21일에도 전북도청 사거리와 종합경기장 사거리에서 시위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15일에는 학부모와 동문 700여 명이 전북교육청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연 바 있다. 상산고는 실제 재지정에 실패하면 교육당국을 상대로 행정소송과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할 계획이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자사고인 동산고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도 시위에 나섰다. 동산고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5일부터 경기도교육청 본관 앞에서 1인 릴레이 단식농성에 하고 있다.
이들은 경기교육청의 재량평가 영역에서 감사 지적사례에 따라 최대 12점을 감점할 수 있으며, 선행학습 방지 노력을 평가하는 항목이 동산고에 불리하게 설계됐다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처럼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는 이유는 지정취소가 유야무야 된 1기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2014~2015년 1기 재지정평가 당시에는 일부 대학이 취소 위기에 몰렸지만, 교육부는 장관 동의가 있어야 자사고 지정 취소를 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감 17명 중 14명이 진보성향인데다, 교육부 역시 일선 교육감들의 자사고 취소 결정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자사고 폐지를 포함한 고교체제개편이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지난 1월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 대해 "대입 경쟁을 부추기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부분은 기준에 맞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교육당국이 평가결과에 따라 일부 자사고를 지정 취소하더라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전국자사고교장연합회는 이미 교육당국을 대상으로 한 행정소송과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학교별 학부모와 동문들의 반발도 변수다.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한 서울 대성고등학교의 경우가 그 예다. 지난해 자사고 지정 취소된 대성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와 서울시교육청이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자사고 지정취소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법원이 기각했지만 항고를 거듭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재판 결과가 다른 자사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처럼 곳곳에서 갈등이 나타나자 교육부가 나서달라는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교육부는 교육청 관할이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비롯해 취소 결정에 대한 권한은 1차적으로 교육감에게 있는 만큼 교육부가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각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 결과가 나온 뒤 7~8월쯤 지정 취소에 대한교육부 장관 동의가 필요한 시기가 되면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한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실제 자사고 폐지 정책의 열쇠를 쥔 것은 교육부"라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사고는 결국 일반 사립고로 전환하거나 문을 닫게 되는 만큼, 고입·대입경쟁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는 발상에 대한 교육부 차원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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