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학생인권조례 개정 예시 공개…'보편적 인권' 삭제
생활지도 고시 시행 후 정책연구 통해 예시안 마련
학생·교사·보호자 권리와 책임, 갈등조정 절차 담아
"보편적 인권만 규정하고 책임은 경시한다는 지적"
"조례 개정 권한 가진 시·도교육청에서 반영 가능"
[서울=뉴시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월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교육부-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위한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3.11.29.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교육부가 이른바 '생활지도 고시' 제정 이후 교권보호 차원에서 마련해 왔던 학생인권조례 개정 예시안을 공개했다.
생활지도 고시가 현장에서 원활히 작동하는 데 초점을 두고 기존 조례에 명시돼 있던 학생 인권을 포괄적으로 보호하는 조항은 모두 삭제한 게 특징이다.
교육부는 29일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예시안)을 일선 시·도교육청에 안내했다고 밝혔다.
이번 예시안은 교육부가 지난 9월1일자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를 제정·시행한 이후 학계와 함께 마련해 온 것이다. 고시와 충돌하는 학생인권조례 조문을 개정할 때 지침으로 삼도록 한 것이다.
예시안은 학교 구성원인 학생·교원·보호자 3주체가 지켜야 할 기본 원칙 및 권리와 책임, 교육감·관리자의 책무, 민원의 처리 절차와 갈등 예방책으로 구성됐다.
학생의 경우 "권리의 행사는 교원 및 보호자의 적절한 교육·지도 아래 이뤄져야 하며 법령과 학칙 등에 따라 일정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권리는 총 6개 조문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예를 들면 '자치활동을 통한 학교 운영과 학칙 제·개정에 의견을 개진할 권리', '개인·사회·문화적 배경과 관계 없이 균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같은 식이다. '학습부진, 학교폭력, 가정위기 등의 각종 위기상황 극복과 적성, 진로 등 건강한 성장·발달을 위한 적절한 지원'과 '개인정보 보호'도 학생의 권리로 명시했다.
학생이 지켜야 할 책임으로는 '교권과 타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를 줄 수 있는 물품을 소지하지 않기', '교육과정(수업) 시간을 준수하기' 등 6가지 조문을 담았다.
교원의 경우 '교육감과 학교장에게 교육활동 개선을 요구할 권리', '근무시간 외 부당한 간섭 또는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 6가지를 담았다. 책임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 '모든 학생의 학습권 보호' 등 6개이다.
보호자는 '학부모 조직을 구성해 의견을 개진할 권리', '자녀에 대한 정보 열람권' 등 6가지 권리를 보장했다. 대신 '자녀가 학칙에 따라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협조', '교원과 학교의 전문적인 판단을 존중' 등 6가지 책임을 함께 요구했다.
[서울=뉴시스]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월20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2023.11.28. [email protected]
교육부는 이런 조항을 일각에서 악용해 교권을 침해해 왔다는 입장이었던 만큼 이는 예상된 결과였다.
학생인권조례는 상위 성격의 생활지도 고시와도 충돌하는 조항이 있어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교육부 입장이었다.
예를 들어 고시에는 학칙으로 소지를 금하거나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물품을 학생으로부터 분리 보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는 소지품 검사를 원칙적으로 금하는 학생인권조례의 '사생활의 자유'와 부딪힌다.
교육부 한 간부는 "보편적 인권을 규정하는 조례가 학생의 권리만 강조하고 책임은 경시한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헌법적 수준에서 보장해야 할 가치를 조례에 담아 그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간부는 "교육청에서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서 권고하는 성별에 따른 차별 금지나 종교의 자유 등에 대한 내용을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례 제·개정 권한은 시·도교육청에 있다. 이번 예시안을 참고해 지역 여건에 맞게 활용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를 시작으로 서울·광주·전북·충남·제주·인천 등 총 7개 시·도에 마련돼 있다.
서울과 경기는 교육청이 개정안을 발의했고 전북은 개정안 입법예고가 이뤄지고 있다. 충남도의회에서는 조례 폐지안이 발의돼 있다. 다만 보수 우위의 시의회와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갈등하는 서울처럼 진통이 있는 지역도 있다.
[서울=뉴시스] 지난 7월27일 오전 서울 중구 도시건축전시관 앞 인도에서 열린 서울 학생 인권조례 폐지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2023.11.28. [email protected]
이번 예시안에는 구성원 간에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나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처리하되, 시·도교육청 단위의 '교육갈등관리위원회'를 두고 갈등을 중재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도 담겨 있다.
보호자 또는 학생이 조례에 규정된 권리를 침해 당했다고 여길 때 '민원대응팀'을 통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사생활 등 교육 활동과 무관한 민원, 교사의 직무를 넘어서는 위법·부당한 민원, 부당하게 3회 이상 지속·반복해 제기된 민원은 학교에서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교육감이 학교 구성원들의 상호 존중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기념일을 지정할 수 있다는 근거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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