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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영산회상도'·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 국보 됐다

등록 2024.12.26 09:51:27수정 2024.12.26 09: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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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국가유산청은 조선 후기 후불도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와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1997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화면 하단의 화기(畵記)를 통해 1729년이란 제작 연대와 의겸(義謙)을 비롯해 여성(汝性), 행종(幸宗), 민희(敏熙), 말인(抹仁) 등 제작 화승(畵僧)들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다.

이 가운데 제작 책임자 격인 의겸을 붓의 신선인 '호선(毫仙)'이란 특별한 호칭으로 기록해 그의 뛰어난 기량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불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가운데 석가여래는 크게 부각시키고 나머지 도상들은 하단에서부터 상단으로 갈수록 작게 그려 상승감을 표현했다.

국가유산청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불화의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제자들 얼굴 표현, 세부 문양에서는 조선 전기 불화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며 "불·보살의 얼굴과 신체를 금으로 칠하고 불·보살을 포함해 모든 존상의 복식 문양을 가는 금선으로 세밀하게 표현해 화려함을 더하는 등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는 1980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조선 후기 후불도다. 중앙의 영산회상도, 좌측의 약사여래설법도, 우측의 아미타여래설법도 3폭으로 구성됐다.

현존 삼불회도 중 3폭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작품으로, 세관(世冠)을 비롯해 신각(神覺), 밀기(密機) 등 화승들이 1744년) 완성해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하였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공간적 삼불회도 전형으로 평가받는 불화로, 장대한 크기에 수많은 등장인물을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장중하게 그려냈다. 3폭 모두 사방 테두리 부분에 '조상경'에 근거한 원형의 '범자문 진언'을 배치해 상징성을 부여한 점도 주목된다.

세 폭의 하단에는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의 정보가 담긴 화기가 있다. 이를 통해 직지사 화승 외에 인근 사찰의 화승들이 다수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화승 여러 명이 공동 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지만 유기적 분업과 협업을 통해 세 폭 모두 한 사람이 그린 듯 통일감이 느껴진다"며 "화기에는 화승 역할에 따라 차례를 구분하고 화승 이름 뒤에 소속 사찰이 기록돼 있어 화승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국가유산청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은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했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국가유산청이 지난해 일본에서 환수한 유물로, 뚜껑과 몸체, 안쪽에 공간을 분리하는 속상자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세로 18.5㎝, 가로 33.0㎝, 전체 높이 19.4㎝로 일반 고려 나전칠기 경함보다 작은 편이다. 몸체 앞, 뒤, 옆면에는 경첩이나 금속제 못을 박았다가 빼서 패인 흔적이 남아 있어 큰 경함을 작게 개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침엽수 계통나무로 만든 백골 위에 천을 바르고 그 위에 골회(骨灰)를 입혀 자개를 붙인 다음 여러 번 옻칠하여 마감하는 전형적 고려 나전칠기 제작 방식인 목심저피법(木心紵皮法)으로 제작됐다.

표면에는 총 770개 국화넝쿨무늬를 배치했다. 부수적으로 마엽무늬(원을 중심으로 한 수평, 수직, 사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무늬), 귀갑무늬(거북의 등딱지 모양을 띤 무늬), 연주무늬(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하여 만든 무늬)를 사용했다.

국화넝쿨무늬는 얇게 갈아낸 자개를 오려내어 붙인 줄음질 기법으로 표현했다. 마엽무늬와 귀갑무늬는 자개를 가늘게 잘라내 끊어가며 무늬를 표현하는 끊음질 기법으로 표현했다.

국가유산청은 "넝쿨무늬 줄기는 황동선을 꼬아 사용하는 등 나전을 비롯한 고려 후기 우수한 공예 기술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며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나전 고유 빛깔이 잘 남아 있으며 문양의 정교함이 돋보인다는 점에서도 높은 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은 조성발원문을 통해 1701년이란 제작 연대, 수조각승 법잠(法岑)을 비롯한 계초(戒楚), 진열(振悅) 등 제작자, 임실 신흥사 적조암이라는 원봉안처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상이다.

현재 흥천사 대방에 모셔진 이 불상이 언제 임실 신흥사 적조암에서 서울 흥천사로 옮겨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1890년 흥천사 수월도량 정비 과정에서 대방에 모셔져 있던 관음보살상과 남순동자상, 해상용왕상 등을 수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수조각승 법잠(法岑)은 조선 후기 조각계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조각승이지만 조성 작업에 참여한 계초(戒楚)와 진열(振悅)은 18세기 조각계에서 매우 비중 있는 조각승이다.

국가유산청은 "이 불상은 이들의 조각승 계통 형성과 전승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라며 "특히, 1701년 작품으로 18세기 불교 조각의 첫 장을 연다는 미술사적 의의도 있다"”고 평가했다.

해당 유물은 수월도량 주불(主佛)인 관음보살과 남순동자, 해상용왕으로 구성된 매우 드문 삼존상이다. 이러한 관음보살삼존 구성은 이미 고려 불화에서 그 전조가 보이기는 하지만, 완전하게 자리 잡은 것은 17세기 이후부터로 판단된다.

조선 후기와 말기에 편찬된 의례집에서는 관음보살과 남순동자, 해상용왕이 관음보살삼존으로 언급되는데, 이 불상은 이보다 시대가 앞서기 때문에 의례집 간행 이전부터 성행한 관음보살삼존도상과 신앙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라는 평가다.
[서울=뉴시스]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는 화기를 통해 1790년이라는 제작 연대와 상겸(尙兼), 홍민(弘旻), 성윤(性玧), 유홍(宥弘), 법성(法性) 등 제작 화승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다.

정조는 1789년 아버지 장헌세자(1735~1762) 무덤을 화성으로 옮겨 현륭원으로 조성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하는 사찰인 원찰(願刹)로 용주사를 창건한 뒤 이곳에서 수륙재를 열었다.  이 수륙재에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 이 작품이다.

조성 후 대웅보전에 모셔졌던 이 작품 상단에는 불·보살 강림을, 하단에는 음식을 베푸는 시식 의식과 무주고혼을 배치해 천도 의식을 통해 불·보살의 구제를 받아 망자가 천도하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표현했다.

화면 상단에는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했다는 부처님 10대 제자 중 목련존자를 그렸다. 이는 효사상을 강조하는 유교적인 표현이다.

화면 하단에 그려진 죽음 장면 중 18세기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여러 장면들과 당시 유행했던 소설 삽화에 영향을 받은 표현이 있어 조선 후기 불화에 미친 일반 회화의 영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국가유사청은 "화면의 안정된 구도나 세부 표현 기법에서 완성도가 높으며, 18세기 후반 불화에 수용된 일반 회화의 양상만이 아니라 불교의 구제신앙과 유교 효사상이 결합한 양상을 보여주는 정조대 대표작"이라 평가했다. .
[서울=뉴시스]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은 2015년 강원도 양양군 선림원지의 승방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굴된 작품이다.

선림원은 통일신라기 선종(禪宗)의 요람이다. 존속 기간이 길지 않지만, 9세기 불교사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긴 순응(順應, 염거화상(?∼844), 홍각선사(814∼880) 등이 머물며 그 계보를 이어간 역사적 의의가 큰 사찰이다.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광배와 대좌까지 온전히 갖춘 희귀한 사례로 광배 포함 높이가 66.7㎝다.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있는 발굴품 중 가장 큰 보살상이다.

엎어진 채로 발견됐는데 도금 상태로 볼 때 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몰된 후 1100여 년이 지나 원래 봉안 장소에서 그대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와 대좌 장식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전체적으로 도금이 거의 벗겨지지 않아 상태가 양호하다.
 
보살상, 광배, 대좌, 영락 심지어 정병도 별도로 만들어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제작했다. 머리카락은 남색 안료로 칠하고 눈썹과 눈, 콧망울, 수염, 머리카락과 이마를 경계 짓는 발제선 등을 먹으로 그려 넣었다.

국가유산청은 "보살상 얼굴에서 보이는 도드라진 윗입술 표현과 입체적 옷주름, 천의와 낙액 등은 9세기 보살상의 우수한 조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12.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은 여러 경전에 들어 있는 참회 방법과 내용을 일정한 체계로 엮은 '자비도량참법'을 후대에 다시 교정하고 정리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중국에서 전래된 고려 때부터 여러 차례 간행되어 조선시대까지 많이 전파됐다.

이 책에는 조선 문신인 김수온이 쓴 발문이 남아 있다. 이 책을 찍기 위한 목판을 1474년 세조 비 정희왕후가 돌아가신 세종과 소헌왕후, 세조와 아들 의경왕), 예종, 성종 비 공혜왕후 등의 극락천도를 기원하며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1481년에 인쇄하며 적은 발문을 통해 예종 계비 안순왕후가 양조모인 신숙화의 처 김씨의 영가천도를 위해 펴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판본의 다른 불완전본이 보물로 이미 지정된 바 있다. 국가유산청은 "조선 왕실이 발원해 제작을 주도한 왕실판본으로, 간행과 인출 시기 및 목적까지 명확해서 의미가 있다"며 "이번 지정 대상은 10권 5책 완질본이고 보존 상태가 우수한 선본이므로 자료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자. .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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