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출신 권동진 독립사상…탄생 160주년 학술대회
3일 오후 괴산문화원 대회의실에서 괴산문화원·충북학연구소 주최, 충북학연구소·괴산향토사연구회 주관으로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우당 권동진의 생애와 민족독립운동'에서 "권동진의 시대와 사조를 넘어 선 민족·독립운동 전개와 자주국가 수립을 위한 통일전선운동은 6·10만세운동와 신간회, 광주학생운동(민중대회사건) 등으로 이어졌다"며 "1930년대 대외활동 중 눈에 띄는 것은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이었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권동진의 3·1운동 초기단계 주도와 독립사상의 피력'에서 "권동진이 3·1운동 발발 이틀 전 조선군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宇都宮太郞)를 만나 소문을 전하는 형태로 (거사) 사실을 타자화하는 삼자적 화법으로 3·1운동을 귀띔한 것은 오랜 인연과 인간적 관계에서 이해하되 흠결로 비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3·1운동으로 붙잡힌 권동진은 의연하게 법정공방을 펼치며 독립사상을 피력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부정하고 10년간의 통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권동진은 희생의 밀알이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민족대표 가운데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파종론(播種論)을 펼쳤다"고 말했다.
김근수 괴산향토사연구회 고문은 '충북 괴산 출생 권동진의 친필시문과 유허지'에서 "그동안의 기록과 임야대장 등을 종합할 때 권동진 생가는 소수면 아성마을(아성2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독립기념관 자료의 아성1리(애재) 기록과 사진은 정정해야 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동진은 손병희의 영향으로 천도교 간부로서 3·1운동을 주도하고 좌우합작의 신간회운동 때 회장으로 추대되는 등 독립운동계에 큰 획을 그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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