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사적 제재가 정의인가…'밀양 성폭행' 가해자 신상공개 논란

등록 2024.06.08 07:00:00수정 2024.06.08 11:01:59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20년 전 밀양 성폭행 사건 다시 수면 위로

유튜버가 가해자 신상 공개하며 공분 일어

"법과 제도가 처벌하지 않으니 개인이라도"

"불법 행위인데 정의 구현한다고 착각 안돼"

[서울=뉴시스] 윤난슬 기자 = 2004년 경남 밀양시에서 고등학생 44명이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한 유튜버의 신상 공개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2024.06.07.

[서울=뉴시스] 윤난슬 기자 = 2004년 경남 밀양시에서 고등학생 44명이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한 유튜버의 신상 공개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2024.06.07.


[서울=뉴시스]우지은 기자 = 2004년 경남 밀양시에서 고등학생 44명이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한 유튜버의 신상 공개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개인이 가해자들의 신상을 직접 공개하고 나서면서 '사적 제재'가 과연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전문가들은 8일 사적 제재보다 사법 체계를 보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은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밀양시 고등학생 44명이 울산시 여중생을 1년 동안 성폭행한 사건이다. 고등학생 44명 중 10명은 기소됐고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피해자와 합의한 나머지 14명은 공소권 상실 처리를 받았다.

그러다, 지난 1일 한 유튜버가 이 사건의 가해자 중 1명의 이름, 나이, 직장 등 신상을 공개했다. 해당 유튜버는 '밀양 성폭행 사건 주동자 OOO. 넌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나봐?'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린 뒤 또 다른 주동자, 사건 옹호자의 신상을 연이어 공개하고 있다.

개인이 가해자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특정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적 제재'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선 이해한다는 입장과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했다.

직장인 황은지(27)씨는 "법이나 제도가 나서서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으니 사건과 직접 연관돼 있지 않은 유튜버 등 개인이라도 나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지윤(23)씨는 "사적 제재는 법적 제재로 채울 수 없는 진정한 복수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고 망가진 피해자 일상을 똑같이 당해보라는 정의 구현이라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과열되다가 억울한 사람이 나올 수 있기에 정당성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디지털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모(24)씨는 "사적 제재가 정의 구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악용하는 유튜버가 많아질 거 같아 유튜버가 범인들 신상 공개하는 건 옹호하긴 힘들다"면서도 "어느 정도 법에 대해 잘 알고 공신력이 있는 전문가인 유튜버가 한다면 정의 구현이 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직장인 이연준(27)씨도 "개인이 사건의 정보를 완전히 아는 것도, 어떤 게 숨겨져 있는 건지는 모른다"며 "정의 구현이라는 좋은 목적이어도 피해자들은 원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밀양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5일 유튜버의 사적 제재가 "피해자의 일상 회복, 의사 존중과 거리가 멀다"며 "영상 삭제, 공지 수정 및 삭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유튜버도 이달 7일 "피해자 요청 있었다"며 결국 밀양 성폭력 가해자 관련 영상을 모두 내렸다.

전문가들은 사회에 팽배한 사법 불신에서 사적 제재가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적 제재가 나오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사법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사법 불신이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유튜버들이 사법 정의의 실현이라는 순수한 공익 차원도 있을 수 있지만 그와 더불어서 그에 수반되는 이익, 공명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사적 제재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한다는 점에서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오판에 의해 네일 숍 주인처럼 무고한 제3의 피해자가 생긴다는 것, 또 피해자에게 20년 전 악몽이 되살아난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우리 법과 사법제도가 국민의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양형 기준을 손봐서 양형을 높이든지 그것도 모자라면 국회에서 법을 새로 만들든지 보완하는 노력이 우선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도 "처벌에 대한 불만뿐만 아니라 형사사법 체계가 피해자 보호와 피해자 회복에 신경 쓰지 못하는 구조가 매우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사적으로 응징하는 불법 시장이 많이 형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흥신소와 같이 사적 제재를 가하는 사람들이 정의 구현 집단처럼 되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시장이 비싸지며 여기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 역시도 또 다른 불법 행위인데 정의 구현으로 착각하면서 불법 행위에 대해 죄책감이나 죄의식도 없게 돼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