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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러뷰 맘' 22년간 남겨둔 딸 일기…명절이라 더 쓰라린 실종 가정

등록 2024.09.13 08:55:27수정 2024.09.13 08: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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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실종여고생 조수민양 야자 마치고 행방불명

아들 찾아 삼만리, 아흔 넘은 부모 "살아만 있길"

전남 경찰 접수 20년 이상 장기실종 아동 69명

[광주=뉴시스] 2002년 만 16세의 나이로 전남 순천에서 실종된 여고생 조수민양의 과거와 현재 추정사진. (사진=독자제공) 2024.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2002년 만 16세의 나이로 전남 순천에서 실종된 여고생 조수민양의 과거와 현재 추정사진. (사진=독자제공) 2024.09.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자식인데 어떻게 잊나요, 가슴에 묻고 살 뿐이죠."

명절.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는 반가운 날이지만 어떤이에게는 그리움을 견뎌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핏줄의 생사조차 모른 채 수십년째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온 이들이 있다. 장기실종 아동 가정이다.

'2002년 9월 13일' 정미령(70·여)씨의 시간은 정확히 22년 전에 멈춰있다.

오후 10시 전남 순천여자고등학교 1학년이던 정씨의 딸 조수민양은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뒤 자취를 감췄다. 하교 뒤 책을 돌려주기 위해 친구와 만나기로 했지만 친구는 조양을 만나지 못했다.

정씨는 귀가하지 않은 딸이 걱정돼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은 조양의 실종을 범죄 연루보다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 경찰은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조양의 휴대전화 기지국 값에 기반한 위치와 시간을 알려줬다.

당시 학교 근처에는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정씨는 경찰이 적어준 딸의 마지막 행적, '13일 오후 10시40분, 보성 벌교 장자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장소는 조양과 가족이 가본 적도 없는 낯선 곳이었다.

정씨는 이튿날부터 보성 버스터미널, 벌교 마을,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여고생 실종이 이슈화하자 경찰에서도 뒤늦게 수색에 나섰지만 이미 상당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는 조양을 찾기 위해 실종자를 찾는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지만 딸을 봤다는 제보는 없었다. 혹여나 딸이 자신을 찾을까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고, 17년간 이사도 하지 않았다.
[광주=뉴시스] 2002년 만 16세의 나이로 전남 순천에서 실종된 여고생 조수민양이 실종 1년 전 쓴 일기장. 일기장에는 '사랑해요 엄마님'이라고 적혀있다. (사진=독자제공) 2024.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2002년 만 16세의 나이로 전남 순천에서 실종된 여고생 조수민양이 실종 1년 전 쓴 일기장. 일기장에는 '사랑해요 엄마님'이라고 적혀있다. (사진=독자제공) 2024.09.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정씨는 23년 전 'I love you mother'(엄마 사랑해요)'글이 적힌 딸의 일기장을 버리지 못한 채 수십년째 간직하고 있다. 딸이 아끼던 필기구와 옷, 책, 교복도 그대로다.

명절이면 '조수민' 석자는 금기어가 됐다. 묻어둔 기억이 떠올라 상처가 될까 가족 누구하나 "보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는 실종 2년 뒤 걸려온 부재 중 전화를 제 때 받지 못한 게 여전히 한이 된다고 했다. 혹여나 딸이 건 전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정씨는 "딸의 생사도 모르고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잔인하다"며 "내 자식이니까 잊을 수가 없고, 너무나도 보고 싶다"고 울먹였다.
[광주=뉴시스] 1983년 광주 서구 광천동에서 17세의 나이로 실종된 홍성훈군. (사진=독자제공) 2024.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1983년 광주 서구 광천동에서 17세의 나이로 실종된 홍성훈군. (사진=독자제공) 2024.09.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홍을래(66·여)씨도 40여년 전 실종된 동생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1983년 12월 22일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예비고사 채점을 마친 홍성훈군은 "잠시 외출하고 오겠다"며 광주 서구 광천동 집을 나선 뒤 41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홍군의 부모는 학업 스트레스를 준 '내 탓'이라는 죄책감을 안고 평생을 살았다.

부모는 아들을 찾기 위해 전국 수용 시설을 찾아 헤맸다. "닮은 사람을 본 것 같다"는 제보에 의지해 전남과 서울을 오가고 전단지 수 천장을 돌렸지만 동생은 찾을 수 없었다.

실종자 찾기 전문가로 불리는 경찰과 관련 교수들도 만났지만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아흔을 넘긴 연로한 부모님도 그리운 아들을 가슴에만 묻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홍군의 어머니는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라며 그리움을 달랬다.

이들은 실종자에 대한 지속적인 수사와 심리 지원 강화를 강조했다. 

홍씨는 "장기 실종아동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불화,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장기적인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씨는 "실종된 지 십수년이 지난 장기아동 실종자 가정의 경우 돌아가신 부모에 이어 형제·자매들이 가족을 찾고 있다"며 "그러나 실종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관의 보직 이동으로 담당자가 바뀌면서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실종자 수사 장기 전담제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광주·전남경찰청이 집계한 실종아동 발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실종아동은 전남 694건, 광주 1459건이다. 이중 광주에서 실종된 3명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에 접수된 20년 이상 실종된 아동수는 광주 0명, 전남 69명에 이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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