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명 모두 무죄…제주 4·3 행불인 재심 '역사적 선고'(종합)
제주지법 형사2부 "이념 대립 속 개인이 희생" 무죄 선고
"오늘 선고로 피고인들과 유족들의 굴레 벗겨지길 소망"
유족 대표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 명판결 감사"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주 4·3 행방불명 수형인에 대한 재심 선고가 열린 16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제주 4·3유족회 등 무죄를 선고받은 청구인들이 만세를 연호하고 있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장찬수)는 재심 사건 선고공판에서 70여년 전 국가의 불법적인 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청구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2021.03.16. [email protected]
16일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장찬수)는 최근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4·3 일반·군사재판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을 진행, 청구인들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70여년 전 극심한 이념적 대립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돼 사라진 역사에 사법부가 사과한 것이다.
재심을 청구한 이들 수형인은 제주 4·3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과 1949년 사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군사·일반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육지 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수형인 대부분이 생존해 있지 않아 재작년과 지난해 유가족이 재심을 청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유가족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고려, 이례적으로 모두 같은날 선고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첫 선고에서 국방경비법 위반 및 내란실행 혐의로 불법 군사재판을 받은 고 박세원 외 13명의 유족의 신청한 재심사건에 대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방 직후 제주 4·3사건이라는 극심한 혼란기에 국가로서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시기 이념 대립 속에서 셀 수 없는 개인이 희생당했다"며 "피고인은 목숨마저 빼앗기고 그 자녀 등 유족은 연좌제 속에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제주=뉴시스] 1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형사2부(부장판사 장찬수) 심리로 제주 4·3 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이 신청한 재심 사건 선고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부는 72년 전 군법회의의 불법성을 인정, 청구인 측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2021.03.16. [email protected]
무죄가 선고되자 유족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4·3 역사의 기념비적인 날의 명재판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면서 "절을 올리는 것은 안 된다고 해 희생된 영혼을 대신해 목례를 올리겠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재판부는 직접 선고 결과를 듣기를 바라는 유족을 배려해 각 재심 청구 사건을 21개로 나눠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선고일인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20분까지 같은날 모든 재심 청구 사건에 대한 결론은 검찰의 구형과 함께 즉각적인 선고로 이어졌다.
제주 4·3 희생자유족회는 모든 재판이 마무리된 후 제주지법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명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린 장찬수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유족회는 "오늘 판결을 통해 불시에 행방불명된 부모형제의 빈자리로 정신적, 물질적 어려움과 함께 연좌제의 고통에서 살아온 유족들의 한이 다소나마 씻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유족회는 "군사재판을 통해 죄인의 낙인이 찍힌 희생자가 수형인명부상으로 2530명이다"며 "이 가운데 극히 일부가 오늘에서야 명예회복의 기틀을 마련했다.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제주=뉴시스] 16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형사2부(부장판사 장찬수) 심리로 제주 4·3 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이 신청한 재심 사건 선고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부는 72년 전 군법회의의 불법성을 인정, 청구인 측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청구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2021.03.16. [email protected]
앞서 법원은 70년 전 군사재판의 불법성을 인정, 2019년 1월 양근방(88)씨 등 4·3 생존 수형인 18명에 대해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이후 재작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반·군사 재판 수형인 362명에 대한 재심 청구가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일반재판' 수형인 김두황(93)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데 이어 김정추(90·여)씨 등 군사재판 수형인 7명도 죄를 벗었다. 지난달엔 행불 수형인 10명도 무죄를 받았다.
한편, 국회는 지난달 26일 본회의에서 '제주4.3특별법전부개정법률안(대안)'을 재석 의원 229인 중 찬성 199표, 반대 5표, 기권 25표로 의결했다.
개정안은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위자료 지급 ▲불법 재판 4.3 수형인에 대한 특별재심 추진 ▲추가 진상조사 등이 담겨 있다.
제주 4.3 배보상과 수형인 특별재심 등이 담긴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이날 국무회의까지 통과하는 등 희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과 수형인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재심 청구의 길이 열리게 됐다.
개정안은 4·3사건 수형인에 대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위원회'가 일괄해 유죄판결의 직권 재심 청구를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하면 법무부 장관이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했다.
군사재판 수형인은 일괄 직권재심이 이뤄지고 일반재판 수형인의 경우 개별 특별재심이 개시되는 것이다.
또 희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명시하고 '국가는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에 대해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을 강구하며, 필요한 기준을 마련한다'고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희생자의 피해보상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행하고, 용역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른 추가 입법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날 4.3 특별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공포 후 3개월이 지난 오는 6월부터 시행된다.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주 4·3 행방불명 수형인에 대한 재심 선고가 열린 16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제주 4·3유족회 등 무죄를 선고받은 청구인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장찬수)는 재심 사건 선고공판에서 70여년 전 국가의 불법적인 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청구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희생자 유족인 임춘화(75·가운데)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1.03.1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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