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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44명중 34명 '불기소처분' 왜이렇게 많나 봤더니…

등록 2024.07.22 15:49:42수정 2024.07.22 21: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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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44명 전원 처벌받은 줄 알았는데…1명도 받지 않다니" 충격

검찰, 10명만 기소…경찰, 13명 고소의견 확인 안해 결국 '불기소'

검찰, '특수강간'→'간음'으로 죄명 낮춰 변경

"판사가 판결 안내려…재판 안한 것"

판결문 "피해자와 놀던 중" 수차례 반복해서 언급

지난 2004년 밀양 성폭행 사건 발생 이후 경찰에 체포된 가해자들 모습.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2004년 밀양 성폭행 사건 발생 이후 경찰에 체포된 가해자들 모습.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20년 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당시 가해자 44명 중 단 10명만 기소되고 34명은 불기소 처분을 받아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2004년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은 경남 밀양의 고등학생 44명이 울산의 여중생을 꾀어내 1년간 성폭행한 사건이다. 총 44명의 신원이 특정됐지만 이 중 34명은 불기소 처분됐고 단 10명만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그중 단 한 명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지난 20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박제된 죄와 삭제된 벌-2004 집단 성폭행 사건'이라는 부제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조명했다.

피해자 "44명 모두 처벌받은 줄 알았는데…1명도 받지 않다니" 충격

이날 방송에서 피해자 A씨와 사건 현장을 목격한 피해자 동생 B씨는 신원 보호를 위해 대역을 통해 인터뷰에 임했다. 당시 15세였던 피해자는 현재 30대 중반이 됐지만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A씨는 "수사 당시 진술했던 가해자 44명이 모두 처벌 받은 줄 알았는데, 최근 인터넷에 공개된 일부 사건기록을 자세히 읽어보고 나서야 단 한 명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며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지난 2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A씨(대역)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A씨는 가해자 44명이 모두 처벌을 받을 걸로 예상했다고 한다.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2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A씨(대역)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A씨는 가해자 44명이 모두 처벌을 받을 걸로 예상했다고 한다.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B씨는 "합의가 몇 명이 됐는지, '공소권 없음'은 왜 피해자의 진술이 없다고 그렇게 돼 있는지, 구속과 불구속 및 소년부 송치의 기준이 뭔지 궁금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44명의 가해자들 중 단 한 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 10명만 기소…경찰, 13명 고소의견 확인 안해 결국 '불기소'

당시 울산남부경찰서는 피해자의 확인과 가해자 진술 등으로 직접 범행에 가담한 이들과 망을 보는 등 조력한 이들 등 총 44명의 신원을 특정해 체포했다. 이후 44명 전원에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성폭행에 직접 가담한 가해자 10명을 재판에 넘겼고, 나머지 34명은 불기소 처분했다.

이들은 각각 ▲가정법원 소년부 송치(20명) ▲다른 사건으로 타청 송치(1명) ▲피해자 고소 없음(13명) 등의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고소 명단에 없던 13명은 주범들이 먼저 그들을 공범으로 진술하고 피해자도 그들의 사진을 일일이 확인한 뒤 '사건 현장에 있던 공범이 맞다'고 진술해 가해자로 특정됐다.
지난 2005년 1월 검찰이 작성한 불기소이유서(왼쪽)와 그해 4월 재판부가 작성한 판결문.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2005년 1월 검찰이 작성한 불기소이유서(왼쪽)와 그해 4월 재판부가 작성한 판결문.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A씨는 "조사를 받았을 때 (성폭행)한 사람은 다 기억나고, 망본 사람은 몇 명은 기억나는데 몇 명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더니 피의자들이 술술 다 말을 해줬다고 한다. 대조를 해보니 맞아서 다 얘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친고죄 규정이 적용,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성범죄는 친고죄였다. 친고죄란 범죄 피해자 등의 고소를 필요로 하는 범죄를 뜻한다.

피해자는 자신이 진술하면 처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경찰이 피해자에게 고소 의견을 따로 확인하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나온 것.

A씨는 "그때는 저희가 어렸고,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며 "저희는 저희 진술만 있으면 다 처벌을 받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피해자가 44명 전원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음을 감안하면, 피해자는 고소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이를 확인만 했어도 고소인의 고소 등이 없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이라는 황당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검찰, '특수강간'→'간음'으로 죄명 낮춰 변경

소년부로 송치된 20명은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수강간보다 비교적 가벼운 위력간음 혐의만 적용됐다. 이후 형사재판 없이 소년부로 보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B씨는 20명에게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가 적용된 것과 관련해 "왜 간음이라고 적혀 있지?"하고 의구심을 품었다고 전했다.

실제 불기소 이유서에는 가해자 혐의가 특수강간이 아니라 간음이라 적혀 있다.

특수강간과 간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고은 변호사는 "여러 명이 강간하면 '특수강간'이 된다. 그런데 검사는 가해자들이 썼던 행동들이 강간에서 얘기하는 폭행 협박에 이르지 않았고 그냥 그 아래 단계 위력(간음) 정도라고 봤다"고 지적했다.

흉기를 사용하지 않은 20명에게 위력 간음 혐의만 적용하는 바람에 형사재판을 거치지 않고 곧장 가정법원 소년부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주먹이나 위험한 물건으로 맞진 않았어도 문 밖에는 가해자 친구인 남자 고등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반항하고 도망갈 수 있었겠나"라면서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아니면 '2명 이상의 여러 명이 합동해서' 같이 강간하는 등이 특수강간이다. 이걸 구태여 위력 간음으로 검사가 단계를 낮추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가해자 1명은 이미 다른 성범죄로 창원 구치소에 수감돼 있어 창원 검찰청으로 이송돼서 불기소됐다. 결국 밀양 성폭행 사건으로는 어떤 형사처벌도 받지 않았다.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SBS 방송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판사가 판결 안내려…재판 안한 것"

기소된 10명도 소년부에 송치돼 일부 보호처분만 받은 걸로 알려졌다. 1년간 여러 차례 협박·폭행 강간한 주범 10명은 일부 혐의에 대해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뒤 소년부로 보내졌다. 결과적으로 44명 중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에 제작진은 답을 찾기 위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들을 직접 찾아갔지만 이들은 답변을 거부하거나 해당 사건을 언급만 해도 날선 반응을 보였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은 퇴직 후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다. 당시 수사 검사 중 한 명은 "20년 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고 또 다른 수사 검사 출신 변호사는 취재진을 피해 황급히 달아나기 바빴다.

판결문을 살펴본 신중권 변호사는 "판결을 안 한 것. 재판을 안 한 거다"라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소년부에 송치하기로 하여 판결한다는 내용은 '소년부 가서 심리를 받아라' 이런 이야기"라면서 "납득이 안 간다. 구속된 사람 7명, 불구속 3명이면 최소한 구속된 사람만이라도 실형이 나와야 하는 게 맞다. 불구속과 동일하게 모두 소년부 송치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판결문 "피해자와 놀던 중" 수차례 반복해서 언급

박지선 숙명여대 교수는 "공소사실에 '피해자들이 놀러 와', '피해자와 함께 놀다가' 등 '놀던 중'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놀던 중'에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박 교수는 "'찾아오지 않으면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전화를 해 피해자가 찾아오자'라고 적힌 다음 달 공소 내용에 '피해자가 밀양에 놀러와 함께'라는 표현이 나온다"면서 "이런 내용이 피해자가 이야기하는 피해 당시에 당사자가 느낀 공포나 어쩔 수 없이 밀양에 오게된 사정에 공소사실에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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