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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어딜 가겠나"…철거 코앞 '미아리 텍사스' 못 떠나는 여성들[현장]

등록 2024.10.11 06:00:00수정 2024.10.11 14: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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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미아리 텍사스'

"30년 간 일했는데 나이 들어 이제 갈 곳 없어"

여성계 "주거이전, 생계비 등 자활 지원 필요"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사진은 10일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의 모습. 2024.10.10. creat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사진은 10일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의 모습. 2024.10.1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지난 10일 낮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한 골목. 신축 대형주상복합 건물을 끼고돌자 한켠에 '미성년자 출입 금지 구역' 안내판이 붙은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커튼형 가림막이 쳐진 좁은 골목 입구로 들어서자 붉은색 스프레이로 '공가(空家)'라고 적힌 빈 건물들과 빛바랜 천막이 줄지어 있었다.

빛을 가린 슬레이트 지붕 탓에 골목은 대낮임에도 어두컴컴했고, 사람들이 떠난 빈집마다 낙엽과 집기류가 널브러져 있었다. 햇빛이 스며든 붉은색 간이 천막에 매달린 거미만이 가끔씩 지나가는 행인을 맞이했다.

이곳은 속칭 '미아리 텍사스'라 불리는 신월곡제1구역의 성매매 집결지다. 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였던 이곳은 2004년 성매매 특별법 발효와 집중 단속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결국 지난해 11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성북구청은 이주 완료 시점을 내년 연말로 잡고 이주를 마친 일부 지역을 시작으로 부분 철거를 진행할 예정이다. 부분 철거는 내년 봄께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철거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한 성매매 업소들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폐허가 된 집들 사이 불 켜진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 뒤로 중년 여성 3~4명이 행인의 동태를 살폈다. 성매매 업소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기자가 다가가자 손을 내저었다.

검은색 테이프로 가려놓은 건물 문을 두드리자 50대 여성이 나왔다.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에 살고 있던 이 여성은 "30년 간 여기서 일 했는데 나이가 있어서 이제 갈 곳이 없다"며 "돈이 없어 못 나가는 사람이 태반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숙식하며 일을 해온 성매매 종사자들은 세입자도 주민도 아니기 때문에 재개발 과정에서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다.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사진은 10일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의 모습. 2024.10.10. creat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사진은 10일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의 모습. 2024.10.1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재 하월곡동 성매매 여성들은 성북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생존권 보장과 이주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미아리 텍사스 곳곳에는 '재개발보다 우리의 이주계획을 우선하라', '상인들 삶의 터전 막무가내 쫓아내는 조합은 각성하라' 등이 적힌 현수막이 흔들리고 있었다.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재개발 추진 전 5000명에 달했던 이곳에 남은 인원은 대략 400~500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성매매 업소 종사자들만 13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현재 남아있는 종사자 수는 종암경찰서에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 남아있던 한 60대 업주는 "재개발 추진 얘기가 나온 뒤 사람들은 이곳이 사라진 줄 알고 있다"며 "그 때문에 아이들(성매매 여성 지칭)이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보상 수준이 사글셋방 한 칸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터무니없다"며 "하루 이틀 있었던 것이 아닌 10~20년씩 있었던 여성들이라 어느 정도 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북구청 측은 아직 성매매 종사 여성들에 대한 보상안 논의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이들의 생계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상태는 아닌 협의 단계"라며 "다만 단체를 통해 상담과 재교육 등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북구청은 지난 2017년에 제정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매매 예방 및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를 근거로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 집결지에서 벗어나 더는 성매매를 하지 않을 경우, 일정 기간 이들에게 생계비와 주거 이전 비용·직업훈련·교육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다만 여성인권센터 '보다'는 "성북구는 조례에 따라 성매매 여성들의 주거비와 생계비 등 자활 지원에 나서야 하지만, 아직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조례가) 집행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인권센터 '보다'는 보다는 미아리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활·독립 지원 사업 등을 해왔다.

여성계는 지자체 차원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새 출발을 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여성들이 또 다른 성매매 업소로 이동하지 않도록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하영 '보다' 소장은 "(집결지가) 철거되면 당장 업소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현재 지원되는 법률·의료·교육 지원비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며 " 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제도가 있어야 여성들이 탈성매매 용기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곳의 여성들에게 지속적인 도움 제공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들 대다수가 10대부터 오랜 기간 집결지 생활을 한 탓에 사회에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이곳의 여성들은 대부분 가정폭력이나 가정 형편 문제로 10대 이던 20~30년 전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다"면서 "이곳을 떠나 기술을 배우려면 배우는 시간도 필요하고, 오랜 시간 성매매로 인한 몸과 마음의 회복·치유 기간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다른 일을 하더라도 시간이나 지원이 필요하다"며 "가장 필요한 지원은 주거이전비와 긴급생계비"라고 짚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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