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저격 무색…학원 '족집게 문제' 외려 불티
모 학원 사설 모의고사, '족집게 문제' 입소문에 불티
교육부, 올 수능부터 '족집게 문제' 없도록 검증 강화
외부 문제들 살펴 수능 출제 반영…이의 신청도 받아
이번엔 과연 없을까…교육부 "경각심 갖고 출제할 것"
[서울=뉴시스] 지난 9월1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에 의대 입시 관련 홍보물이 붙어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뉴시스DB). 2024.11.12.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잡겠다면서 학원 강사의 사설 모의고사를 상대로 공세를 펴 왔지만, 정작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두고 유명 학원의 사설 모의고사를 찾는 수요는 더 커진 모습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잡지 못할 수요를 어설프게 손 댔다가 광고만 해 준 꼴이라는 말이 나온다. 출제본부는 올해 수능부터 '사설 학원의 족집게 문제'가 없도록 검증하겠다고 밝혔는데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나온다.
12일 네이버 카페 '수만휘' 등 유명 입시 커뮤니티와 당근마켓·번개장터 등 중고거래 플랫폼을 보면 유명 A 학원 등이 낸 사설 모의고사를 판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가격도 판매자마다 각각 다르다. 당근마켓 한 이용자는 전날 오후 A 학원 '수능 과학탐구 물리Ⅰ 서바이벌 모의고사' 27회, 28회 문제집을 2만원에 판매한다고 적었다.
이보다 1시간 전에 글을 올린 다른 이용자는 A 학원의 재종(재수 종합반) 자료라 소개하면서 '서바이벌 전국 모의고사 18회' 문제지를 1만원에 판다고 게시했다. 강남구 삼성동과 대치동에서 직거래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서울에 그치지 않는다. 당근마켓에 글을 적은 한 이용자는 지난 5일 세종 어진동 인근에서 'A 학원 수능 수학(미적분) 모의고사 8회분'을 2만2000원에 판다고 했다. 다른 판매 글을 보면, 지난 10일에 영어 모의고사를 한 회당 5000원에 4개 판매한다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문제를 구한다는 글도 수두룩하다. 수만휘에서는 지난 6일 '국어 수능 A 학원 파이널 모의고사 구합니다'는 글도 연속적으로 게시돼 있다. 문제를 푼 뒤 정답이 맞는지, 풀이법이 어떻게 되는지 묻는 글도 다수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지방의 일선 중소규모 입시 학원에서도 'A 학원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광고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A 학원 측은 "상생 측면에서 접근성이 먼 지역, 학원 위주로 과목당 많게는 1000~2000부 정도를 판매했다"며 "중소규모 학원 정도에 한해 진행하고 있으며 매출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A 학원은 '족집게 문제'를 바탕으로 최근 대치동에서 급성장한 학원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A 학원 모기업의 연결 감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매출액은 3605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상승했다. 2022년 대비 지난해 매출액이 45% 높아진 바 있다.
이 학원은 정부의 '사교육 카르텔' 단속 대상에도 올랐다. 지난해 6월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 데 이어 같은 해 10월 경찰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수능 출제 경험이 있는 현직 교사 등이 학원에게서 금품을 받고 문제를 판매(청탁금지법 위반)한 혐의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았다.
[세종=뉴시스]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 3월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한 뒤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오 원장은 당시 2023학년도 수능에서 사설 모의고사와 동일 지문을 출제하고 해당 문항의 이의신청을 부당하게 처리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DB). 2024.11.12. [email protected]
정부가 사설 모의고사를 생산하는 과정에 있어서 불법이 의심되는 행위를 정조준 했으나 시장이 위축되기는 커녕 과거보다 더 성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한 입시 전문가는 "사교육 카르텔 이야기 나오면서 A 학원이 명실상부하게 1등이 됐다"며 "수능 만점자가 나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광고 효과를 누렸다"고 말했다.
그는 수험생들이 사설 모의고사를 찾아 푸는 이유에 대해 "문제 질이 일단 좋다. EBS 교재를 변형해서 문제를 내기 때문에 수능과 거의 비슷한 양상을 띈다"며 "아이들 입장에서 난도 등 여러 가지가 좋아서 안 풀 수 없다"고 했다.
다른 대형 학원 대표는 "킬러문항 배제 기조가 적용되면서 수능에 '매력적인 오답'과 같은 유형이 늘어났다"며 "수험생들이 새로운 문제 유형에 적응을 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유형에 대한 예측 불확실성도 커져 버렸다"고 말했다.
교육 당국과 수능 출제본부는 사설 모의고사의 수요를 늘린 '족집게 문제'라는 세간의 평가라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성과가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교육부는 올해 6월 모의평가부터 사교육 연관성도 문항에 대한 이의심사 대상으로 들여다 보기로 했다. 출제위원들은 합숙에 들어간 후에도 나온 사설 모의고사를 모두 살펴보고 겹치는 문제가 나오지 않도록 출제하겠다고 했다. 지난 3월 '수능 출제 공정성 강화 방안'의 골자였다.
그러나 다른 한 입시 전문가는 "사교육을 줄이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이런 현상(사설 모의고사를 사고파는 수요)은 경쟁이 있는 한 잡을 수 없다"며 "이번 수능에도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문제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을 사흘 앞둔 지난11일 세종시 한 인쇄공장에서 수능시험 문답지가 전국 시험지구로 배부되고 있다. (공동취재) 2024.11.12. [email protected]
이 관계자는 올해 수능에서는 이른바 '족집게 문제'라는 의심을 받는 문항이 나오지 않을지 묻자 "출제위원들이 경각심을 갖고 출제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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