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고교 무상교육, 2026년부터 불가능…수시, 수능 후 정시와 시기 맞춰야"[인터뷰]
"수능 전 수시 지원, 고3 교육과정 엉망 돼"
"고교 '유상' 교육 거론한 교육청도…걱정 많아"
"학습진단치유센터→학습진단'회복'센터 고심"
"학교 비정규직 처우, 공무원과 준해서 가야"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1.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연소일기라는 영화가 있는데, 혹시 봤어요?"
'대학 서열화'의 문제를 꼬집던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갑자기 물었다. 이달 중순 개봉한 홍콩 영화 '연소일기'는 고등학교 교실에서 유서로 추정되는 편지로 시작한다. 영화는 변호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의 낮은 학업 성취를 놓고 온 가족이 학대에 가깝게 괴롭히는 이야기를 다룬다.
정 교육감은 "부모의 기대가 학생들의 지향과 충돌할 때, 다시 말하면 기성세대가 자기의 좌절된 욕망을 자식을 통해 대신 실현하려 할 때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는 것"이라며 "교육은 우리 아들, 우리 딸이 어떤 데 소질이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부모가 발견하고, 선생님과 힘을 합쳐 성장시키는 것이다. 공부로 '출세를 해야 한다'는 입신양명적 교육을 강요할 때 모든 불행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부는 행복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행복한 공부'의 시작과 끝은 공교육 정상화다. 그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 교육감은 "고등학교 3학년 교육과정은 엉망이 됐다"며 그 원인은 고3 여름부터 시작하는 수시 지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시와 정시 지원 시기를 비슷하게 묶어야지 이렇게는 교육과정이 엉망이 된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 교육감은 '고교 무상교육'은 중앙정부 지원이 끊긴다면 더는 지속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통합재정 안정화 기금도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며 "2025년에는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2026년부터는 불가능하다.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한 달, 그리고 10일. 정 교육감이 서울시 교육행정의 수장이 된 기간이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뉴시스가 지난 25일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정 교육감과의 일문일답.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1.25. [email protected]
-취임 한 달이 지났다. 교육감의 지난 한 달은 어땠나.
"정신없이 새로운 업무를 수행하며 보냈다. 국회 국정감사, 서울시의회 행정감사와 시정질문, 제100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까지 한 달 동안 소화했다. 무사히 한 달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큰 일정들이 끝나면서 이제 여유를 갖고 서울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구상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진짜 교육감 노릇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1호 결재 정책이었던 '서울학습진단치유센터 기본계획'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또 성과는 언제부터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 중인가.
"계획은 순항 중이다. 내년에 권역별 시범운영을 한 뒤 2027년에는 25개 자치구로 확대할 예정이다. 시의회에서도 환영하는 반응이다. 다만 예산을 책임지고 확보해 줘야 한다.
다만 이름이 바뀔 수도 있다. '치유'라는 표현이 거슬린다는 의견이 나와서 '회복(resilience)'이라는 표현을 쓰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서울학습진단회복센터'로 변경할지, 정식 명칭을 확정하는 논의를 할 예정이다.
학습 진단에 대한 학교 현장의 호응도 좋다. 작년에는 210개교, 4만5000여 명이 받았던 '서울 학생 문해력·수리력 진단검사'를 올해는 525개교, 9만4000여 명이 받았다. 교육청과 학교의 노력이 이어진다면 내후년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책의 시작과 끝은 예산인 것 같다. 고교 무상교육을 위한 정부 지원 예산이 일몰되는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의 대책은 무엇인가.
"교육부는 지방교육청이 이 예산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데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22년이었다면 그 말이 맞다. 그러나 교육청의 통합재정 안정화 기금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지역의 한 교육청의 경우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말까지 한다. 서울의 경우 2025년까지는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2026년부터는 불가능하다. 지금 걱정이 많다."
-만약 야당이 추진하는 '고교 무상교육 3년 연장'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
"어떤 교육청은 '고교 무상교육을 폐지하고 학부모로부터 돈을 걷겠다'고도 한다. 그렇게까지 가진 않길 바란다.
나는 일몰제에 비판적인 사람이다. 예산을 점차 삭감해 나가는 건 괜찮지만 그 큰 돈을 갑자기 끊어버리면 대안이 없다. 교육예산은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상해야 한다. 일몰 전 연착을 위한 예산이 논의된 적이 없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12월6일로 예고됐다. 지금 이들과 어떻게 소통 중인가.
"충남교육감이 전체 교육감의 위임을 받아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연대)와 협상 중이다. 나는 대표 교섭에 따를 예정이다.
다만 내년도 공무원 임금은 3.0% 인상하게 됐다. 예년에 비해 조금 많아졌다. 비정규직의 경우에도 이에 준해서 가야지, 너무 현격한 차이가 있다면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 좋지 않다고 본다. 나는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은 '빵·우유를 먹는 학생들'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급식 노동자들의 빈자리 때문이다.
"급식 노동자 처우 개선 문제도 현안의 일부다. 처우가 나쁘거나, 환경 때문일 때도 있다. 서초·강남·송파의 급식 노동자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다른 지역과 달리 서초·강남·송파의 급식 노동자는 다른 구에 거주하는 분들이 많다. 출퇴근이 문제가 되는 거다. 그래서 이 지역의 급식 노동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민했는데, 쉽지 않다. 참 어려운 문제다."
-정 교육감의 후보 시절 포스터에는 '서울대'가 유독 강조됐다. 이 때문에 학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완전히 잘못된 보도다. 나는 입시로 인한 과잉 경쟁 문제를 끊임없이 말했다. 서울대 졸업과 교수 경력을 적은 건 그게 내 경력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우리 학생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과도한 경쟁 교육이 노출되는 현 상황이 우리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것이다. 어제 홍콩 영화 '연소일기'를 봤다. 아버지가 아들에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교육관을 심으며 벌어지는 비극이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욕망을 자식을 통해 실현하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근본적으로 자식의 교육은 우리 아들, 우리 딸이 어떤 데에 소질이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부모는 이를 북돋아서 선생님과 힘을 합치는 방향이어야 한다. 공부하는 과정이 행복하고, 공부한 결과 또한 행복하게 해야 한다. 자식을 열심히 공부시켜서 '출세를 시키겠다'는 입신양명적 교육관을 강요할 때 모든 불행이 발생한다."
-후보 당시 '역사 교육'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 달 간 현장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를 보니 뭐가 문제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 같나.
"교육감 선거가 9월에 진행됐다. 당시는 8·15 광복절로부터 별로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3개월이 지난 현재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역사 논쟁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정부 역시 '뉴라이트'가 이롭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지난 9월 정세와 11월의 정세는 많이 달라졌다.
다만 체험을 강화한 역사 교육을 강조하고 싶다. 역사적 사실을 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체험하는 것이다. 한중일 동아시아 역사 캠프를 만들어 학생들이 미래 지향적인 토론을 하고, 어떻게 하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할지 플랫폼을 만들면 좋겠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당장 3월이면 시작된다. 구독료 예산은 어느 정도 규모로 예상하나.
"교육부에서 교부금으로 256억원을 지정해 내려왔다. 하지만 구독료 예산을 예측할 단계는 아니다. 아직 AI교과서 업체가 선정되지 않았고, 예산도 그 이후에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교육청 예산에 AI 디지털교과서 예산을 책정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진보 교육감이 입장이 후퇴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려도 많고, 내년 3월에 교육부의 계획대로 할 수 있는지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교육감이 된 후 처음으로 학생들이 수능을 치르는 걸 지켜봤다. 어떤 기분이었나.
"수능 날 수험생들에 '수능 대박'이라고 하면서 정말 응원했다. 하지만 이제 전국에서 동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르는 그런 수능 제도는 개선할 때가 됐다.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수능과 무관하게 대학을 가는 비율이 70~80%다. 그런데 왜 모든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동시에 수능 시험을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또 하나 문제는 수능 전 대학 입시가 시작되는 거다. 수능 전 수시를 지원하고, 수능 후 정시 모집이 이뤄진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3학년 교육과정이 엉망이 됐다. 수시 지원 시기를 정시 지원 시기와 비슷하게 묶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일정을 펼쳐 놓으면 1년 내내 교육과정이 엉망이 된다. 교실 현장에서는 3학년 2학기 교육 과정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근식 교육감이 꿈꾸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정근식 교육감이 들어와서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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