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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야카와 치에 "어떻게 사람을 생산성으로 판단하나"

등록 2024.02.06 0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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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수상작 영화 '플랜75' 연출·각본

근미래 일본 정부 75세 이상 안락사 주도

"사회적 약자 배제 분위기 우리 모두 늙어"

"혼자 사는 81세 어머니 참고해 각본 써"

"감정 최대한 배제 주제 의식 흐리기 싫어"

[서울=뉴시스] 하야카와 치에 감독.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하야카와 치에 감독.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플랜75'(2월7일 공개)는 도발적인 소재로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극 중 플랜75는 일본 정부 정책 중 하나로, 75세가 넘은 고령자에게 안락사를 제공한다. 이 정책의 대의(大義)는 이렇다.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국가 미래에 기여한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노인을 지원하는 데 드는 국가 재정 규모 역시 부담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마지막으로 나라에 기여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극적인 상황 설정이다. 그러나 출생률이 0.78명(2022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고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나라에서 사는 한국 관객에게 이 영화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플랜75'를 보고 고민에 빠지게 되는 건 일본 혹은 한국 관객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재작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황금카메라상 '특별 언급'됐다. 노인 문제,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 관한 논의는 더 이상 특정 나라에 국한한 얘기가 아니라는 게 전 세계 사람이 공유하는 생각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작품 연출과 각본을 맡은 하야카와 치에(早川千絵·48) 감독을 만났다. 하야카와 감독은 "생산성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봤다"며 "강렬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하야카와 치에 "어떻게 사람을 생산성으로 판단하나"


'플랜75'는 크게 보면 78세 여성 '미치'(바이쇼 치에코)에 관한 얘기. 독거 노인 미치는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하고 비슷한 처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갑작스럽게 삶에 큰 위기를 맞는다. 일자리를 잃고 사회 주변부로 더 멀리 밀려 나가게 된 것. TV·라디오 등에서 플랜75가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상황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압박에 시달리다가 바로 그 제도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와 함께 이 작품은 미치를 중심으로 플랜75에 얽힌 인간 군상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상한다.

하야카와 감독은 이 영화가 2016년에 발생한 '사가미하라(相模原) 사건'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20대 남성이 가와가나현 사가미하라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 장애인 19명을 죽이고 27명을 다치게 한 사건으로 전후 일본에서 벌어진 최악의 흉기 살인으로 여겨진다. 범인은 당시 '장애인은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안겼는데, '플랜75'의 플랜75는 마치 그 발언을 제도화해 놓은 것만 같다.

"물론 그 사건의 범행 대상은 장애인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것이죠. 그때 그의 발언은 빈곤층에도 적용될 수 있고, 노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린 모두 늙게 돼 있고, 노인이 된다는 점입니다. 노인에 관한 얘기를 하며 이 이야기를 나와 무관한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여길 거라고 봤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린 모두 늙습니다."
[인터뷰]하야카와 치에 "어떻게 사람을 생산성으로 판단하나"


'플랜75'는 일본에선 2년 전 공개됐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미 관객을 만났다. 한국에선 다소 늦게 개봉했다. 하야카와 감독은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 한국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며 "다만 미국과 유럽에서 반응은 일본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에는 노인의 일상이 세세하고 현실적으로 담겨 있다. '플랜75'가 그려낸 미치의 생활을 보면 아직 늙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그 속엔 짙은 외로움 같은 게 담겨 있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노인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있으며 그들의 일상을 압박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꼭 플랜75 같은 제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야카와 감독은 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미치와 같은 노인 여성 15명 정도를 만나 인터뷰 하며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 시나리오에 영향을 준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은 하야카와 감독의 어머니이다. "제 어머니는 81세이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전 어머니의 생활에 관해 잘 알고 있어서 많은 디테일을 어머니에게서 가져 왔죠. 우편물이 올 일이 없는데도 매일 우편함을 확인하는 것 같은 거요. 또 어머니가 이렇게 생활할 것 같다고 상상한 부분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인터뷰]하야카와 치에 "어떻게 사람을 생산성으로 판단하나"


노인이 나오고 죽음을 소재로 하다 보니 격한 감정이 쏟아질 것만 같지만, '플랜75'는 대체로 건조하다. 배경이 겨울인데다가 푸른 빛을 강조한 화면 연출 탓에 건조하다 못해 시린 느낌마저 준다. 감정을 드러내는 캐릭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절제돼 있다. 말론 설명하기보다는 분위기로 표현한다. 이 작품의 이런 정조(情調)에는 하야카와 감독의 현실 진단이 묻어난다. 그는 "자칫 하면 감상적인 멜로드라마가 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작품 주제를 흐리지 않기 위해 감상적인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고 대체로 냉철한 톤으로 그려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야카와 감독은 '플랜75'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던 이들을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이 영화를 본 젊은 관객들 중엔 평소엔 대화를 거의 하지 않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고 얘기한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한국도 일본과 상황이 매우 비슷하지 않나요. 한국 관객 역시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게 됐으면 합니다.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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