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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협상가' 틸러슨…외교에서도 통할까

등록 2016.12.12 10:35:51수정 2016.12.28 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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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국무장관 후보로 세계최대 석유회사 엑손 모빌의 렉스 틸러슨 회장 겸 최고경영자를 고려 중이라고 10일(현지시간) 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사진은 틸러슨이 지난 2015년 3월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연설하던 당시의 모습. 2016.12.11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국무장관 후보로 세계최대 석유회사 엑손 모빌의 렉스 틸러슨 회장 겸 최고경영자를 고려 중이라고 10일(현지시간) 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사진은 틸러슨이 지난 2015년 3월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연설하던 당시의 모습. 2016.12.11

【서울=뉴시스】오애리 기자 = 미국 차기 국무장관 후보 1순위로 거론되는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물론 러시아와의 밀착관계이지만, 그것 말고도 틸러슨의 경력에서 따져봐야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엑손모빌에서 41년간 몸담아오면서 수많은 거래를 성사시켰던 데다가 에너지 업계의 특성 상 러시아, 리비아, 이라크, 이란, 베네수엘라 등 미국과 적대적이거나 불편한 국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해왔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틸러슨이 사업가로서 노련하고도 뚝심있는 협상력과 경영능력을 나타내왔다는 점이다.

 좋은 예가 2007년 무아마르 카타피 당시 리비아 독재자와의 거래이다.파이낸셜타임스(FT)의 1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리비아 유전개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틸러슨은 2007년 2월 리비아로 직접 날아가 카다피를 전통 텐트 안에서 만났다. 그리고 결국 그해 11월 틸러슨은 리비아 심해 유전 개발 계약을 성사시켜 카다피의 서명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리비아가 핵무기 포기를 선언한지 4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미국은 물론 세계 최대의 석유메이저 사인 엑손모빌의 리비아 진출은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다.

 FT에 따르면, 이 계약은 단순한 사업 차원을 넘어서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가 '정상화'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 틸러슨이 리비아를 다녀간 이듬해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이 리비아를 방문, 약 반세기내 리비아를 찾은 최고위 미 정부 관료의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틸러슨은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타협을 모르는 고집스런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2007년 우고 차베스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오리노코 유전 벨트에 대한 국영화를 확대하는 조치를 취해 엑손모빌 등 현지에 진출해있던 세계 각국 메이저사들과 충돌했다. 다른 회사들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해 현지에서의 사업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틸러슨은 타협을 거부하고 정면대결을 택했다. 즉, 베네수엘라 정부로 하여금 엑손모빌 자산을 몰수하도록 만든 다음, 이 사안을 재판정으로 가져가 배상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틸러슨과 러시아의 밀접한 관계는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틸러슨은 부사장으로서 러시아 사업을 담당했었다. 이때 그는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친분을 쌓았다. 이고르 세친 현 로스네프트 사장과도 절친 관계로 알려져 있다.지난 2006년 틸러슨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데에는 러시아 정계 최고위 인사들과의 이같은 깊은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틸러슨은 지난 2011년 러시아와의 거래를 성사시켜 주목을 받았다. 엑손모빌이 러시아 북극해 자원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OAO 로스네프트의 엑손모빌 투자를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푸틴 대통령이 소치에서 직접 발표했을 정도로 러시아 정부가 공을 들였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3년, 푸틴 대통령은 틸러슨에게 '우정 훈장'을 수여했다. '우정 훈장'은 러시아 정부가 외국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위 훈장이다.

 틸러슨은 현재 엑손모빌 주식 1억5100만 달러(약 1749억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인준 청문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지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대러 제재를 단행하면서 엑손 모빌의 북극해 자원개발 참여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동결된 상태이다. 만약 트럼프 차기 정부가 러시아 제재를 해제할 경우, 틸러슨의 엑손 모빌 주식 가격은 당연히 폭등하게 된다. 국무장관이 외교정책으로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틸러슨이 국무장관에 지명받게 되면,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주식을 처분 또는 백지신탁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와 유난히 가까운 관계가 틸러슨이 국무장관이 됐을 경우 미국 국익에 해가 될 것인가 여부는 미지수이다.FT는 틸러슨이 세련된 외교관은 아니지만 효과적인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왔으며, 전 세계 산유국들과 엑손모빌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그같은 능력이 과연 복잡한 외교무대에서도 통할지는 물론 아직 알 수없는 일이다. 틸러슨의 러시아 정치인들과의 돈독한 관계는 인준청문회의 핵심이 될 것이 확실시되며, 틸러슨의 국무장관 임명의 발목을 잡는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다만, 싱크탱크 '에너지충격을 위한 BCG센터'의 책임자인 로빈 웨스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틸러슨이 푸틴의 주머니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틸러슨은 엑손모빌이 러시아에서 많은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푸틴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 관련 저서 '상: 석유와 돈, 권력을 위한 서사적 탐구(The Prize: the Epic Quest for Oil, Money, and Power)'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가 대니얼 예긴 역시 웨스트와 비슷한 견해이다. 그는 11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틸러슨과 러시아의 관계를 "비즈니스 관계"로 규정하면서, 엑손모빌 전체 사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틸러슨이 국무장관이 되면 미국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틸러슨은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처럼,임무가 있으며 그것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틸러슨과 관련해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기후변화 문제이다. 국무장관은 기후변화 관련 국제협정의 실무책임자이다. 존 케리 현 국무장관은 지난 해 12월 파리 기후협정 체결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었다.

 대선 유세과정에서 기후변화의 인간 책임론을 '사기'로 비판했던 트럼프와 달리, 틸러슨은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간의 상관관계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엑손 모빌은 기후변화와 화석연료의 연관성을 부인해왔지만, 2006년 틸러슨이 회장 및 CEO에 취임한 이후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계의 연구성과를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회사의 입장이 전환했다고 WP는 지적했다. 엑손 모빌은 지난 해 파리 기후협정이 체결된 직후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엑손모빌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입증 자료를 확보하고도 공개하지 않고 은폐했다는 설과 관련해 틸러슨은 의회 청문회에서 집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틸러슨은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열렬한 자유무역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이는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트럼프와는 반대이다. 또 어린시절부터 몸담아온 보이스카우트의 최고 영예인 '이글 스카우트' 대원이자 전미 연맹 최고 책임자로서 사상 첫 동성애자 입단허용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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