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순위 조작 '프로듀스'가 남긴 것…선명해진 '공정성'
대표적 '팬슈머(fansumer) 사례'로 진화
내달 '아이즈원' 해체..프듀도 종지부
'피해 연습생 보상 어떻게 되나' 주목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에서 생방송 투표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안준영 PD가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9.11.05. [email protected]
11일 대법원은 업무방해 및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엠넷의 '프로듀스' 시리즈 안준영 PD와 김용범 총괄 프로듀서(CP)의 상고심에서 각각 징역 2년과 1년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인 피해자들을 기망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는 사기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고, 시청자들의 중복 투표로 인한 일부 사기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한다"고 전했다.
엠넷은 같은 날 안 PD와 김 CP에 대해 "형이 확정됐으니, 이제 인사위원회가 열리고 이후 인사위원회 결과에 따라 인사 조치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사위 결과는 여러 부문이 감안될 것으로 보여 아직 예단하기는 힘들다.
'프듀 조작' 논란, 오디션 왕국 먹칠
특히 영세한 기획사들에 속한 '흙수저'들에게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아울러 시청자는 '프로듀스 101' 속에서 성장하는 연습생에게 감정 이입을 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이 성장하고 순위가 올라가는 것에 감동과 쾌감도 느꼈다.
엠넷은 '프듀' 시리즈와 이전의 '슈퍼스타K' 시리즈에서 이런 공감대가 극에 달할 수 있는 '절박함'을 잘 뽑아냈다.
하지만 이런 절박한 드라마에 제작진이 개입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 뒤 모든 것이 무너졌다.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아이돌 팬덤을 넘어 사회·정치권까지 번졌다. 계급화가 공고해진 사회에서 그나마 희망의 통로를 보여줬던 프로그램마저 사실상 가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실 '프로듀스' 시스템은 태생부터 엠넷과 가요기획사가 밀착돼 있는 구조였다.
대형 기획사처럼 막강한 힘은 갖고 있지 못하지만, 나름의 생존 법칙을 터특한 중대형 기획사에게 엠넷은 자신들을 알리는 주요 플랫폼이다.
엠넷 입장에서는 이미 자체적인 시스템으로 신인을 톱으로 키울 수 있는 대형 기획사와 달리 중대형 기획사가 다루기 쉽다. 자신들이 신인을 키운다는 자부심과 이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더해졌을 것이다.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엑스원(X1) 새그룹 지지 팬 연합이 2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NM센터 앞에서 열린 CJ ENM 규탄과 엑스원 새그룹 결성 요구 시위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01.22. [email protected]
실제로 '프듀' 시리즈가 거듭할수록 특정 기획사의 연습생이 주목을 받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엠넷과 특정 기획사가 유착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번 '프로듀스 논란'을 둘러싼 논란이 아이돌 팬문화의 대표적인 '팬슈머(fansumer) 사례'가 됐다고 보고 있다.
상품이나 브랜드의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소비자를 일컫는 용어다. 자신이 키워낸 상품이나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동시에 비판, 간섭 등도 서슴지 않는다.
'프로듀스' 조작 의혹이 불거진 이후 불공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적극적 '소비자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조작 의혹 정점에 있었던 시즌 4의 '엑스원' 팬덤은 엑스원 해체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자신들의 투표를 통해 결성된 그룹에 대해 적극적 의견을 내는 것이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는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팬들과 그룹, 제작사의 상호보완적 관계는 더 복잡하다.
중견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언론과 함께 이들이 권력의 감시자로 승격되면서, 향후 프로그램의 공정성 확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달 '아이즈원' 해체로, '프듀' 종지부…피해보상 논의 본격화될 듯
'프듀' 시즌 3를 통해 결성된 아이즈원은 총 2년6개월 활동을 예정했다. 지난해 초 '프로듀스' 시리즈가 조작 의혹에 휩싸이기 시작했을 때도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 등 활동을 강행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한국와 일본에서 골고루 인기를 누렸다. 걸그룹으로는 이례적으로 앨범 판매량도 수십만장을 기록하는 등 팬덤을 형성해왔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연장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불거졌다.
하지만 업계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아이즈원이 활동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내놓고 있다. 아이즈원 멤버가 될 가능성이 확실했으나, 제작진의 조작을 통해 피해를 본 이가은과 한초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의견이다. 이런 점 등이 향후 아이즈원 활동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 아이즈원. 2020.12.04. (사진 =오프더레코드, 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 [email protected]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으로 탈락한 이들에 대한 피해 보상은 전례가 없던 일인 만큼, 그 방법을 도출해내는데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가요계는 피해 연습생들이 어떤 식이라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엠넷을 운영하는 CJ ENM이 '프듀' 시리즈 조작 논란 이후 약속한 '음악계 지원' 펀드 활용 방안도 주시해야 할 사안이다.
엠넷이 '프듀' 조작 의혹으로 발목이 잡힌 동안 '오디션 프로그램 왕국' 타이틀은 다른 방송사들이 나눠 가져갔다. TV조선의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JTBC '싱어게인' 등이 예다.
그런데 아직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MBC, JTBC, KBS 등이 새로운 포맷을 시도했으나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K팝 아이돌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만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엠넷이 섣불리 포기할 수 없다. 작년 엠넷이 선보인 '아이랜드'도 TV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엠넷은 한국, 중국, 일본의 아이돌 지망생들이 경합하는 새로운 오디션 '걸스 플래닛 999(Girls Planet 999)'를 올해 안에 선보인다.
아이돌 제작사 관계자는 "엠넷이 '프로듀스' 시리즈로 큰 홍역을 치른 만큼, 공정성에 명운을 걸지 않겠냐"면서 "그에 앞서 조작에 연루된 제작진에 대한 확실한 징계와 피해를 본 연습생에 대한 확실한 피해보상이 먼저다. 그래야 새로운 오디션에 대한 명분이 생기고 제작사·팬들의 지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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