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집값'…한은의 선택은[요동치는 글로벌 시장①]
연준 9월 인하 시사…BOJ 금리 인상 단행
물가 둔화에 환율 우려 덜며 인하 환경 마련
집값 급등세에 10월 혹은 내년 인하 전망
[워싱턴=AP/뉴시스]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8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31일(현지시각)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4.08.01.
[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글로벌 주요국들이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시동을 걸면서 우리나라도 조만간 금리를 내릴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사와 일본의 긴축 전환이 고환율 우려를 낮추는 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4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하며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선결 요건으로 내세웠던 조건들이 하나둘씩 해소되면서다.
하지만 수도권 집값 급등이라는 변수가 등장하며 한은의 금리 인하 결정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금융통화위원들은 정부의 거시건전성 대책과 집값 추이를 살펴 금리를 결정하겠다고 시사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희미해졌다고 평가하면서 이르면 10월 늦으면 내년이나 돼야 금리를 낮출 것으로 본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7월 FOMC(공개시장운영위원회)는 기준금리를 5.25~5.5%로 결정했다. 지난해 9월부터 8회 연속 동결이다. 다만 파월 의장이 간담회를 통해 "경제가 기준금리를 낮추기에 적절한 지점에 근접하고 있다"고 언급하면 시장의 9월 금리 인하 기대는 높아졌다.
해외 IB인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9월 인하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면서 " 9월과 12월에 각각 25bp 인하하고, 내년에도 인하를 이어가 2025년 말에는 3.5~3.75%가 될 것"이라고 봤다. 씨티(Citi)는 "9월 인하를 시작으로 최종금리가 3.25~3.50%에 이를 때까지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행(BOJ)은 지난달 31일 단기 정책금리를 0.00~0.10%에서 0.25%로 인상했다. 이에 따라 일본 단기금리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 금리가 0.3% 전후였던 지난 2008년 12월 이후 15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서울=뉴시스] 31일(현지시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5.25~5.50%로 유지했다. 지난해 9월부터 8회 연속 동결이다. 우리나라 기준금리(3.5%)와의 격차도 2.0%포인트로 유지됐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email protected]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피벗으로 원·달러 레벨이 낮아지며 대외 금리 인하 환경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이달 초 1400원을 넘보던 환율은 연준과 BOJ의 통화정책 회의를 거치며 전날 1370원 초반까지 내려왔다. 연준과 BOJ의 통화정책 강도에 따라 연말 1300원대 초반 전망도 나온다.
한은의 금리를 제약하던 물가도 둔화세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대비 2.6% 올라 4개월 연속 2%대를 기록했다. 6월보다 소폭 올랐지만 향후 물가 상승률은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하며 2%대 초반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높다.
한은의 금리 인하를 방해하던 국내외 요인들이 줄줄이 제거되면서 인하 주장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6월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국민의힘 송언석 위원은 이달초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준의 금리 인하 기정사실화에 우리가 미국보다 먼저 내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결과만 보면 한은도 내수 부진을 살리기 위해 미국의 금리 인하에 맞춰 금리를 낮추면 간단하다. 하지만 문제는 집값 자극 우려 등 국내 사정에 금리 인하에 나서기는 만만치 않은 환경이라는 점이다. 금리 인하가 집값을 자극하면 한은은 집값 급등에 기름을 부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7월 다섯째 주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전주대비 0.07% 올라 지난주(0.06%)보다 상승 폭이 확대됐다. 서울은 19주 연속 상승했다. 이 결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주택담보대출은 7조6000억원에 달했다. 월별 기준 2014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7.11. [email protected]
결국, 한은은 연준에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움직이기보다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효과를 지켜본 후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7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위원 다수는 정책 대출을 포함한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 추진 상황'을 감안해 금리를 결정하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금리 인하 결정에 앞서 집값에 대한 정부의 보다 정교한 대책을 요구한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는 이달 중으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기로 했고, 주담대에 스트레스금리 50%를 적용하는 스트레스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는 9월 시행된다.
시중은행도 압박하고 있다. 금융당국 주문에 주담대 금리는 줄줄이 오르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는 지난 1일 3.03~5.71%로 금리 하단은 지난달 25일 2.91%에서 일주일 만에 0.12%포인트 올랐다. 변동금리는 4.03~6.55%로 금리 하단은 4%대로 상승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향후 물가 둔화세가 예상되고, 고환율 우려도 낮아졌다"면서도 "다만 집값과 가계부채를 고려한다고 하면 8월 인하보다는 10월 혹은 11월에서 내년 초까지 인하 시점이 밀릴 수도 있다"고 봤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은 우리 경제에 대해 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할 만큼 어렵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집값 상승과 환율 불안, 물가 불안 요소 등이 작용하며 한은이 10월 혹은 11월에 금리를 낮출 것으로 보지만, 상황이 안좋으면 내년으로 넘길 수도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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