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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 뺏긴 2살 아이 열손가락…희망 돌려준 '무료수술'

등록 2024.08.27 10:26:00수정 2024.08.27 12: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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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도헌 윤대원이사장 자서전 '마이티닥터' 발간

한강성심병원 1호 해외초청 수술환자 일상회복

화상환자 내달 몽골환자 포함 8개국 60명 수술

국내 최초 민간 자선병원 열어 영세민 무료진료

취약계층 위해 출자 정부 긴급생계비 지원 초석

[서울=뉴시스] 한강성심병원에서 수술 받기 전 까를로의 모습. (사진= 한림대의료원 제공) 2024.08.2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한강성심병원에서 수술 받기 전 까를로의 모습. (사진= 한림대의료원 제공) 2024.08.2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 두 살 무렵 소년은 숯을 굽는 불더미 위에 넘어져 양손에 화상을 입었다. 양손이 굳어 손가락을 펼 수 없게 돼 연필을 쥐는 것조차 버거웠다. 결국 초등학교 1학년이 지나 학업을 멈췄다. 하지만 머지않아 운명의 신이 소년을 향해 미소 지었다. 13살 되던 해 무료 화상 진료를 위해 필리핀을 찾은 국내 의료진의 눈에 띈 것이다. 소년은 2009년 11월 한강성심병원에서 무료 손가락 재건 수술을 받아 손가락 5개를 복원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꿈꿨던 목사가 되기 위해 현재 신학대 입학을 준비 중이다.

이 사연은 한림대의료원 산하 한강성심병원 '제1호' 해외 초청 수술 환자인 '까를로'의 이야기다. 까를로가 굳어진 손가락을 펴 목회자를 꿈꿀 수 있게 되기까진 '국내 화상 치료의 메카' 한강성심병원의 국경을 넘는 사랑의 인술(仁術)이 있었다. 그 구심점엔 '무한한 인간애'를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고 약자를 위해 헌신했던 故 도헌 윤대원 학교법인일송학원 이사장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한강성심병원과 까를로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성심병원은 2009년 11월 의료봉사단을 꾸려 필리핀 민다나오섬 카가얀데오로를 찾아 3박4일 동안 30여 명의 화상 환자를 무료로 치료했다. 와중에 수술이 시급한 어린이 화상 환자 2명이 눈에 밟혀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에 도움을 요청했고, 재단은 다른 기관의 후원까지 이끌어내 긴급 초청 수술을 시행했다.

한국에서 무료 수술 대상자로 선정된 까를로는 2009년 11월 말 입국해 한강성심병원에서 손가락 재건 수술을 받았고, 5개의 손가락을 성공적으로 복원해 한 달 가량 후 귀국길에 올랐다. 황세희 한강성심병원 사회사업팀 사회복지사(한림화상재단 사무과장)은 지난해 필리핀을 방문해 까를로를 만났고 일상에서 손가락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한림화상재단이 예정대로 내달 몽골 환자를 초청해 수술하게 되면 해외 8개국 화상 환자 총 60명을 국내로 초청해 수술하게 된다. 한강성심병원이 1986년 국내 첫 화상 전문 치료기관인 화상치료센터를 연 이래 연간 100억원대 적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화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꾸준한 투자와 관심을 아끼지 않은 윤 이사장의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윤 이사장은 최근 펴낸 자서전 '마이티 닥터'를 통해 "병원의 수지타산이 안 맞아 모두가 기피하는 화상 치료에 과감히 투자한 것은 오로지 불우한 화상 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사명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또 "화상은 치료가 매우 까다롭고 오래 걸리며 치료비도 엄청나 (환자들이)치료나 재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면서 "생지옥 같은 화상 치료를 누군가는 해야만 했고,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화상은 주로 산업 현장과 저소득층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중환자실 치료부터 재활, 통원 치료까지 장기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장애의 한 유형으로 인정받지 못해 환자들이 치료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상 환자가 받는 흉터 수술은 미용 성형으로 분류되다 보니 의료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 수 천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치료비 부담으로 적절한 시기 치료를 받지 못하면 회복 속도는 그만큼 느릴 수밖에 없다.

윤 이사장은 2008년 한림화상재단을 출범시켜 취약계층 화상 환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왔다. 또 2013년 국내 최초로 한강성심병원 제5별관 3층에 화상병원학교를 만들어 치료비 후원은 물론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소아 환자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서울=뉴시스]국내 의료 발전에 기여하고 정직과 인간애를 기반으로 사회 복지와 의술 보급에 힘썼던 도헌 윤대원 학교법인일송학원 이사장. (사진= 한림대의료원 제공) 2024.08.2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국내 의료 발전에 기여하고 정직과 인간애를 기반으로 사회 복지와 의술 보급에 힘썼던 도헌 윤대원 학교법인일송학원 이사장. (사진= 한림대의료원 제공) 2024.08.27. [email protected].

그의 화상 치료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선친인 故 윤덕선 학교법인 일송학원 설립자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다. 선친은 '땅에 묻혀서 주춧돌이 되자'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건물을 지탱해주는 주춧돌 역할을 자처했다.

윤 이사장은 환자를 살리는 ‘인술’을 바탕으로 의료사회복지 증진에 집중했다. 1975년 2월 문을 연 성심자선병원 부원장 시절부터 취약계층을 위해 무료 진료를 펼쳤고 경영인이 되어서도 한림대의료원과 복지관 차원에서 꾸준히 무료 진료를 시행했다.

그는 "성심자선병원은 순회 무료 진료에서 미처 진료하지 못한 영세민을 위한 무료 병원으로, 극빈 환자들에게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이 돼 주었다"면서 "한강성심병원과 복지관 등에서 무료로 치료받는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위한 별도 치료 공간이 필요해짐에 따라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간 자선병원이었다"고 평가했다.

인간애가 남달랐던 윤 이사장은 1991년 한국노인보건의료센터 개관을 시작으로 성심복지관(현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안양복지관,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화성시 나래울종합사회복지관, 동탄노인복지관 등 6개의 복지관을 운영·성장시켜 의료사회복지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간염의 발병부터 간암 진단, 간 이식을 받기까지 10년 이상 병마와 싸우며 견뎌낸 시간이 평생 인간애를 실천하는 자양분이 됐다. 그는 "돌아보면 의사로서 가장 치열했던 시절,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병마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기에 오히려 나는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특히 윤 이사장은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할 당시 취약계층인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민을 위해 2000만 원을 출자해 SOS 긴급재난지원제도를 실시했다. 당시 출자했던 금액은 종잣돈이 돼 ‘SOS 기금회’가 설립됐고, 2006년 긴급복지지원법 제정을 통한 정부의 긴급생계비 지원 제도 시행의 디딤돌이 됐다.

윤 이사장은 “그 성과는 대단히 컸고 결과 또한 아주 흡족했다"면서 "신림종합복지관에서 시작된 SOS 긴급재난지원금은 수년 후 전국적으로 수 십억 단위의 SOS 긴급재난지원제도로 발전했다”고 돌아봤다.

[서울=뉴시스]왼쪽 사진은 까를로가 수술 후 2011년 찍은 사진.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카를로의 모습. (사진= 한림대의료원 제공) 2024.08.2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왼쪽 사진은 까를로가 수술 후 2011년 찍은 사진.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카를로의 모습. (사진= 한림대의료원 제공) 2024.08.27. [email protected]

평생에 걸쳐 인간애를 실천한 것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병원을 짓고 환자가 많은 곳에 병원이 찾아가야 한다'는 선친의 신념을 계승한 것이다. 그는 "아버지께서 떠나신 후 산적한 과제 앞에서 나의 다짐은 한 가지였다"면서 "'무한한 인간애를 중심으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 언제나 사람을 위하는, 사람을 향하는 마음을 굳건히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멀리 오래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윤 이사장은 선친에 이어 1989년 2대 이사장에 취임한 후 이 다짐을 되새기며 35년 간 한림대의료원, 한림대, 한림성심대,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6개 복지관을 성장시켰다. 로버트 켈리 미국 뉴욕프레스비테리언병원 명예원장은 “윤대원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훌륭하고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며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대담한 비전으로 이끌어 모두가 그의 혁신에 동참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윤 이사장은 평생 한국의 의료와 대학 교육 발전, 국내외 사회봉사에 헌신한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받을 예정이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1등급 훈장이다. 앞서 1996년 선친도 같은 훈장을 받았다. 훈장이 추서되면 그는 2대째 무궁화장을 받는 영예를 안게 된다.

‘마이티 닥터’의 부제는 '후대의 모든 마이티 닥터를 고대하고 응원하며'. 팔십 평생 한국 의료의 길을 열고 방향을 제시한 선배 의사는 후배 의사에게 이렇게 격려했다.

"진짜 의사의 삶을 제대로 보여줬는가.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의사 선배로서 의미 있는 길을 걸어왔는가. 평생의 도전과 응전의 순간을 정리한 것은 그동안 못다 한 역할을 대신하고자 함이다. 이런 어려운 시절을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겨냈노라고,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당시 그렇게 최선을 다했었다고. 그러니 이제 자네들은 세계를 향해 마음껏 꿈을 펼쳐보라."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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