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외교관·일본통·북한유학파…역대 주한 中대사 북한보다 낮은 국장급
마오쩌둥 통역사 초대 장팅옌, 이임 후에도 한반도 업무
우다웨이·청융화·추궈훙, 주한 중국 대사 '일본통' 3인방'
북중, 당대당 관계 중시…당 대외연락부 출신 줄줄이 대사로
[서울=뉴시스] 역대 주한 중국대사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주중 한국 대사는 유력 정치인, 교수, 관료 등 다양한 반면 주한 중국대사는 9명(다이빙 포함)모두 직업 외교관들이다.
분야별로는 북한에서 유학했거나 조선어(한국어)를 전공한 한반도 전문가, 일본통 그밖에 이른바 국제통이다.
싱하이밍 전 대사 후임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다이빙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국제통으로 분류될 수 있다.
북한의 차관급 보다 낮은 국장급 대사
무엇보다 북한에 부임한 18명의 대사는 통상 부부장(차관급)으로 국장급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이빙 내정자는 국장급과 차관보급 사이에 해당한다는 외교 소식통의 의견도 보도됐다.
마오쩌둥의 김일성 면담 통역사 초대 장팅옌 등 한반도 전문가 4명
수교 협상 때는 권병현 당시 본부대사의 파트너였다. 김일성이 방중해 마오쩌둥을 만날 때 통역을 했다.
퇴임 후에도 한중우호협회 부회장을 맡아 말 그대로 지속적으로 한중우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 회고록 ‘한국대사로 나가(出使韓國·2004년)’도 썼다.
북한 김일성대 동기인 리빈과 닝푸쿠이, 그리고 북한 사리원농업대를 나온 싱하이밍 등이 한반도 전문가로서 부임한 대사들이다.
리빈은 45세의 젊은 나이에 부임해 ‘중국 황제의 소년 칙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유창한 한국어와 친화력으로 재임시 많은 한국 지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 것으로 유명하다. 수교 이후 한중 관계가 우호적이었던 시기적 특징과도 관련이 있다.
그런 리 전 대사가 귀국 후 업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구속되는 등 곡절을 겪었다.
그는 후에 산둥성 웨이하이시에서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업무를 돕는 등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닝푸푸이 대사도 한중 수교 때 협상 실무자로 참석했다. 재임 시절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식 서울 구간에서 중국 유학생 폭력 사건이 발생해 곤욕을 치렀다.
이임 후에도 한반도사무특별부대표를 맡아 6자회담 중국측 차석 대표로 활동했다.
공직을 마친 뒤에도 한중 관련 세미나 등에도 참석하는 등 꾸준히 양국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싱하이밍 대사는 정무과장 등 수 차례 주한 대사관에서 근무한 한국통을 자부했다.
하지만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은 중국 패배에 베팅하지 말라”는 부적적할 발언이나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발언과 언론 기고 등으로 한국 정부에서 기피 인물이 되어 후임도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서둘러 한국을 떠났다.
일본통 우다웨이, 청융화, 추궈훙
우다웨이와 청융화는 이임 후 일본 대사로 갔으나 추궈훙은 정년을 마치고 귀국했다.
우다웨이 대사는 북핵 6자회담 중국측 수석 대표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대사 이임 후에도 외교부 부부장, 한반도사무특별대표 등을 맡으면서 북핵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여했다.
그는 “나는 말갈족 출신이라 말을 돌려 못한다”고 한 것처럼 종종 거친 입담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추궈훙 대사 시절 한중은 이른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으로 한중 관계가 수교 이래 최악으로 추락한 시기였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한한령(限韓令)으로 대응했다.
논란속에서도 5년 10개월의 최장수 주한 대사를 지냈고, 한국 정부는 이임 후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다. 차하얼학회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장씬선 대사는 주한 대사 중 가장 최고위급으로 알려졌다. 재임 중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사태가 벌어지자 북한의 입장을 대변 두둔하는 발언으로 외교부의 초치를 당하기도 했다.
주 평양 중국 대사는 대외연락부 출신 많아
북중 관계는 국가간 관계보다 당과 당 관계가 우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평양 주재 중국 대사는 왕 대사까지 19명. 초대 대사 니즈량은 인민해방군 장성 출신으로 6·25 전쟁 발발 직후인 그해 8월 부임해 1952년 9월까지 재임했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재임한 10대 정이 대사 때 한국과 중국 사이에 수교가 이뤄져 북한에서 냉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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