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 해소" "미래 임금 낮출 수도"…확대된 통상임금, 환영·걱정 공존
대법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
근로기준법에 정의 규정 없어
노 "임금체계 모호함 해소돼"
사 "인건비 6조7천억 증가해"
행정지침·근로기준법 바뀔까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이 2020년 11월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에 상고한지 4년9개월이 지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하고 있다. 2020.11.23. [email protected]
노동계는 복잡성과 혼란을 바로잡았다며 환영했으나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과 또다른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2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양대노총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에 따르면 노동계에선 해당 판결을 반기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환영하는 노동계…경영계는 인건비 우려
그동안 통상임금의 요건으로 여겨진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중 고정성 기준을 폐기해 11년 만에 판례를 바꾼 것이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육아휴직급여, 퇴직금 등을 산정할 때 기초가 된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면 근로자는 보다 안정적 급여를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계는 해당 판결로 임금체계의 모호함과 복잡성이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통상임금은 그 정의조차 현행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 또 대다수의 국내 기업들이 복잡한 수당 체계를 운영하고 있어 늘상 노사 갈등의 발화제가 됐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생산직 수당 종류만 1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육아휴직 등으로 자리를 비운 근로자는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상여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판결 직후 양대노총은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실질적으로는 고정적 상여임금임에도 재직 중 등의 이유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아 많은 혼란이 있었다"며 "통상임금에 대한 복잡성과 혼란을 가져온 현실을 바로잡는 바람직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를 향해 대법원 판례 변경을 반영해 즉시 행정지침을 변경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은 고정성 요건을 폐기해 해석상 논란을 종식시킨 판결을 환영한다며 통상임금 관련 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판결의 소송대리인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변호사는 "노동자의 임금권리가 확대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0월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 사건 관련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0.23. [email protected]
다만 경영계의 반응은 달랐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인건비 증가로 인한 부담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발표한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시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시 연간 6조7889억원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추가로 지급해야 할 금액의 47.7%가 일부 대기업 근로자에게만 귀속돼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제시됐다.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병인 '이중구조'의 심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통상임금 범위가 넓어지며 혜택을 받게 될 근로자의 임금 증가율도 29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0.6%에 그쳤다. 반면 30~299인 사업장은 3.4%, 300인 이상 사업장은 4.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가 바라본 판결 영향은
해당 판결이 노사관계, 임금체계 등에 미칠 영향을 두고 전문가들은 각각 다른 분석을 제시했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간 통상임금 소송의 핵심은 상여금이었다"며 "고정성이라는 기준이 애매모호해 문구 하나 차이로 엇갈리는 불합리함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여러가지 기준들이 난무했던 임금체계가 이제 간소화되며 법적 다툼으로 갈 여지가 줄어들었다"며 "노사 합의를 통해 분쟁이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반면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은 '냉각효과'를 우려했다.
권 원장은 "법원이 경영적 의사결정과 노사의 자주적 협상, 협약을 자꾸 뒤집게 되면 노사 간 협상 의지를 냉각시켜 단체교섭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기업은 추가비용을 상품에 전가하거나 미래 근로자들의 임금수준을 낮게 하거나 협력업체에 전가하는 등 예기치 않은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정부, 국회, 법원의 대응과 관련해선 김 교수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까지도 (통상임금 관련 완만한 합의가) 정책적으로 유도될 수 있게 정부의 방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권 원장은 "법원은 노사 합의 결과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전문가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판결 취지를 분석해 지침 수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란 입장이다.
국회에서도 해당 판결이 법 개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회 환노위 야당 간사인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의 개념을 법률로 명시해 해석상의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입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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