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인테리어 공사 중 터진 수도꼭지…건물주 배상 얼마나
중고책 판매업자, 식당으로 쓰이던 건물 입주
특이 배관구조 모른채 인테리어 공사 진행 뒤
물 흘러 책 수천권 침수…1심 "건물주 배상책임"
2억1903만원 청구했지만 60만원 배상 선고
[서울=뉴시스] 위용성 기자 = 특이한 건물 수도배관 구조에 대해 제대로 모른 채 인테리어 공사를 벌이다 수도꼭지를 건드린 임차인이 침수피해를 입었다면 건물주에게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1심 법원은 건물주의 고지의무 위반이 인정된다면서도 극히 일부 금액만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경북 칠곡군에서 중고책 판매업을 하던 A씨는 2018년 6월께 건물주 B씨와 3년간 보증금 3000만원에 월 임대료 250만원을 내고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A씨가 입주하는 해당 건물 1층은 과거 식당으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A씨는 입주한 공간을 중고책 보관용 창고로 쓰려고 계약 당시 B씨에게 설치돼 있던 수도배관을 비롯, 기존 시설물을 모두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B씨는 1층 바닥에 설치된 수도배관 연결 부분을 철거한 뒤 시멘트로 막아 마감하고, 연결된 수도꼭지들을 잠금상태로 레버를 제거하거나 돌려놔 물이 새지 않도록 조치했다. A씨는 이를 확인한 후 입주했다.
문제는 이후 A씨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면서 생겼다. 벽면에 튀어나온 수도꼭지를 본 인테리어 업자가 이를 제거해버린 뒤 그 자리에 책장을 세워둔 것이다.
2개월이 지난 즈음, A씨가 건물 밖 설치된 지하수 모터를 가동했더니 수도꼭지가 있던 책장 뒤쪽 배관에서 지하수가 흘러나왔다. 중고책과 책장 등이 물에 잠겨버렸다.
A씨는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인 2019년 3월께 연체 임대료와 전기사용료 등을 공제한 임대차보증금을 돌려받고 건물에서 퇴거했는데, 이후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침수로 인해 책장 612개와 중고책 2만6581권을 폐기하면서 발생한 손실액, 여기에 피해복구를 위해 쓴 인건비와 이사비 등을 합쳐 총 2억1903만원과 이자를 B씨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건물 내 수도꼭지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건물 외부에 설치된 지하수 모터를 가동하면 지하수가 흘러나오게 되는 이례적인 구조인데도 이 건물 수도배관 구조에 대해 계약 전후로 고지해준 적이 없다고 했다. B씨의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해 하자가 있는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B씨는 A씨가 자신과 협의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수도꼭지 봉인을 해제하면서 발생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또 A씨가 사고 직후 자신에게 이를 알리지 않아 피해가 커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26일 법원에 따르면, 대구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판사 엄성환)는 B씨의 고지의무 위반이 인정된다며 지난달 18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수도꼭지를 포함한 건물의 배관구조에 대해 A씨가 예상하기 어려웠으며, 이런 내용을 알았더라면 B씨에게 추가 공사를 요청하거나 적어도 인테리어 업자에게 수도꼭지를 제거하지 말라고 당부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동산 거래에 있어 거래 상대방이 일정한 사정에 관한 고지를 받았더라면 그 거래는 하지 않았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사전에 상대방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다"며 "A씨는 중고책을 보관할 창고로 사용할 목적으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는데, 중고책 특성상 습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물 내 수도배관 구조나 이용상태는 계약 체결 여부나 계약 조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요구한 손해배상에 비해 극히 일부인 60만원만 배상하라고 판결해 원고 입장에서는 사실상 패소했다.
실제로 훼손된 책장은 3개, 중고책은 2000~3000권 가량만 인정된다는 판단에서다. 인건비나 이사비용, 기타 업무손실비용 등도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