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봉이 김선달같은 '모노크롬' 제이콥 카세이
'실버페인팅'으로 뜬 해외미술계 신예 스타
리안갤러리서 한국 첫 개인전 6월26일까지
'흰색 화면에+오크 프레임' 짠 최신작 전시
【서울=뉴시스】 Jacob Kassay_Untitled_JK559_2018_Acrylic on canvas, oak frame_125.4x126.4cm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동시대 모노크롬(monochrome)회화 작가들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같다.
그냥 있는 것과,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작품'이라며 팔아먹으니 말이다. 작가들 입장에서는 '아트(art)를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할수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트'라는게 무엇인가. '삶이 예술' 아닌가. 이미 일상이 예술이 된 세상속에서 '작품'으로 분류되면 고고해져 대중과 거리를 두는 아이러니를 발한다.
모노크롬 그림, 어렵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쉽다. 세계미술용어 사전에 따르면 다색화(polychrome)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단일한 색조를 명도와 채도에만 변화를 주어 그린 단색화다. 한가지 색만 쓰는 색채뿐만 아니라 내용, 주제, 선, 형태를 거부하고 전통적 미술 개념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특히 1960~1970년대에 이르러 하나의 주요한 추상회화 양식으로 자리잡았다.이들의 작품은 완벽하게 감정이 여과되었다는 호평을 받은 반면에 '지나친 결벽증에 의한 삭막한 공백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 단색화가들도 모노크롬의 영향을 받았다. 2000년에 정의된 단색화 이전엔 '모노크롬 화가'로 불렸다. 같은 단색이지만 서양의 모노크롬과 한국의 단색화가 다른 점은 작품에 녹아든 정신성, 몰아일체 수행으로 이뤄졌다는 차이가 있다.
모노크롬 그림은 "나도 하겠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캔버스에 한가지 색만 칠하거나, 칠도 없는 하얀 캔버스 자체를 날카롭게 베거나, 점 하나 찍고도 '대단한 추상화 작가'로 평가 받는다.
반면 '도대체 뭘까', '뭘 그린걸까'로 골치아프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래서 '추상회화'의 고개는 숙여지지 않고 있다. 특히 '미니멀한 모노크롬'은 여전히 동시대 미술을 쥐락펴락한다.
이런 측면에서 '봉이 김선달'같은 모노크롬 작가가 미국에서 날아왔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제이콥 카세이(34)다.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에서 흰색 모노크롬 회화 신작전을 10일부터 펼친다.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가 아트바젤등에서 눈여겨보다 5년전부터 섭외해 겨우 성사된 전시"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10일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여는 미국 작가 제이콥 카세이가 전시 디렉터 성신영씨와 함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젊은 작가지만 이미 '실버 페인팅'으로 해외 미술계에 떠오른 스타작가다. 2005년 미국 뉴욕대학교(파인아트)졸업후 2008년 뉴욕 유명 갤러리 303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2009년 뉴욕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 작품 매진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2010년 11월 아트 옥션에 처음으로 나와 30세 이하 미국 작가 경매가 최고를 기록했고, 전 세계 30세 이하 작가 경매가 TOP 10에서 1~6위와 9위를 싹쓸이 했다. 2015년 크리스티 11월 경매에서 50호 크기 2점이 추정가를 뛰어 넘은 한화 1억4624만원에 팔리면서 일약 '실버 페인팅' 작가로 몸값이 높아졌다. 특히 '억만장자 컬렉터' 피노 회장이 제이콥 카세이의 작품을 소장한게 알려지면서 '컬렉션 잇템'으로 떠올랐다.
작품은 아주 간단하다. 제이콥 카세이를 '핫한 작가'로 등극 시킨 '실버 페인팅'은 그야말로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 물'처럼 나왔다.
【서울=뉴시스】 제이콥 카세이의 스타로 만든 '실버 페인팅'
리안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공장에서 도색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도색을 하던중 반짝이는 '실버색'에 반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색상이라는 생각에 미니멀리즘의 실험을 시작했죠. 사진 작업도 해봤는데 사진은 인화하면 그대로 나오지만, 실버 페인팅은 컨트롤이 불가할 정도로 우연성이 가미된 작업입니다. 페인팅 흐르기에 따라 굳어지는 모습이 불규칙하게 나오는데서 착안해 미니멀리즘의 방향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본 것이죠."
'자동차 도색 알바'를 뛰다 원래 있던 은색으로 만든 '실버 페인팅'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불투명한 거울을 연상시키는 카세이의 페인팅 작업은 오늘날 미니멀리즘의 현재 진행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전기 도금 기술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실버페인팅은 주변의 세상을 흐릿하게 반사하는 거울과도 같다. 색의 움직임은 그림의 표면을 흔들고 빛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실버 페인팅'은 조각인 동시에 회화로도 불린다. 비춰진 자신을 보고 그 다음 자신이 서 있는공간을 보게 하며 상호작용하는 작품은 2차원의 회화이면서도 공간과 상호작용을 하여 3차원성을 갖는 특징을 보인다.
“저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작품을 하고 싶어 페인팅을 선택했습니다. 생각한대로 곧이 곧대로 작업하는 것은 거부합니다. 저를 흥미롭게 하는 부분은 내가 그 장소를 처음에 찾게 됐던 이유와 나의 관심을 사로 잡았던 반응에 대한 의문 제기입니다”.
【서울=뉴시스】 Jacob Kassay_Untitled_JK560_2018_Acrylic on canvas, oak frame_125.4x138.1cm
이번 한국 전시에서는 유명한 '실버 페인팅'은 볼수 없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인 만큼 최신작을 내놓았다. 리안갤러리 공간에 맞춘 '한국 맞춤형' 작품을 선보인다.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의 흰색 모노크롬 회화지만, 차이가 있다. 오크 나무로 프레임을 짜 다양한 형태로 선보인다. 직사각형을 기본형으로 템플릿 자를 연상시키듯 한쪽 혹은 양쪽 가장자리 선이 오목하거나 볼록한 형태다.
성신영 전시 디렉터는 "카세이의 작품은 단순히 회화라는 하나의 예술적 범주의 차원을 넘어서 회화와 조각의 탈 영역적 양식의 조형적 실험"이라고 했다.
회화의 가장자리 틀을 다루는 방식때문이다. 현대 회화사에서 그림의 엄격한 사각형 틀에서 벗어나 벽 공간으로의 확장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가 시도했지만 카세이의 작품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캔버스는 윤기 없는 완벽한 흰색 모노크롬으로 처리한 반면 오크 목재를 프레임을 사용하여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장자리로 이끌리게 한다.
성신영 디렉터는 "프랭크 스텔라가 시도했던 회화는 공간의 벽, 공간으로의 확장으로 이해되지만, 카세이가 도입한 오크 프레임은 회화 평면 공간을 벽 공간과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으로 만든다"면서 "여기에서 카세이 작품의 이중적 ‘모순’의 미학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흰색의 회화인데도 다양한 형태의 오크프레임이 두드러져 '미니멀리즘 조각' 같기도 하다. 일정 간격으로 전시장 벽면에 걸리자 작품과 작품 간의 연결고리를 생성시키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환영도 선사한다.
【서울=뉴시스】 리안갤러리에서 미국작가 제이콥 카세이의 신작전이 열리고 있다.
뭔지 모를듯한 카세이의 작품은 결국 전시장 벽면을 '오크 프레임'으로 드러냈다는 얘기다. 흰 전시장 벽을 캔버스에 다시 흰색으로 칠하고 그걸 구분짓기 위해 오크나무로 프레임을 짰다. 그러자, 벽과 벽이 분리되어 그림이 되고, 화면과 틀이 분리되면서 또 하나의 조각(오브제)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모노크롬 회화, 추상회화의 흐름을 잇는 작가인가?라고 묻자 그는 "거창한 사조나, 흐름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며 "그것보다는 물체 본연의 존재를 강조하는 '오브제 미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번 신작은 '평면을 벗어나려는 회화의 입체화' 시도다. 모노크롬화의 탈을 쓴 오브제 조각이다, 젊은 작가답게 공간에 박제된 그림이 아니라 공간과 감상자의 반응에 반응하는 영리한 작품이다.
무엇을 그렸는지 고민하고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 고정된 감각을 비틀어 지각 경험을 확장시킨 것에 불과하다.
물리적 형태 그 자체에 국한되어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를 환기시킨다는 점이 우월하다. 모노크롬 전통의 틀을 살짝 바꾼 아이디어가 재기발랄하다. 흰색에 프레임 하나 짰을뿐인데 고급스런 작품이 되는, 제이콥 카세이의 모노크롬 회화가 동시대 현대미술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유다. 이번 신작은 4000~5000만원선이다. 전시는 6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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