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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 7조' 비판 림태주 "너의 글은 삿되었다"…비공개 전환

등록 2020.08.31 11:56:47수정 2020.08.31 12: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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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 전문

[서울=뉴시스] 림태주 시인 페이스북 캡처.

[서울=뉴시스] 림태주 시인 페이스북 캡처.


[서울=뉴시스]  시인 림태주씨가 31일 ‘진인(塵人) 조은산’의 ‘시무(時務) 7조’에 대한 반박글을 페이스북에 써 주목받고 있다.

상소문 형태로 청와대 국민청원 ‘시무7조 상소’에 대해 ‘하교’의 형식으로 비판하는 글이다.

림 씨는 '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된 장문의 글에서 "너의 문장은 화려하였으나 부실하였고, 충의를 흉내 내었으나 삿되었다(보기에 하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나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너는 헌법을 들먹였고 탕평을 들먹였고 임금의 수신을 논하였다. 그것들을 논함에 내세운 너의 전거는 백성의 욕망이었고, 명분보다 실리였고, 감성보다 이성이었고, 4대강 치수의 가시성에 빗댄 재난지원금의 실효성이었다”며 “언뜻 그럴듯했으나 호도하고 있었고, 유창했으나 혹세무민하고 있었다”면서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고자 했으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상처내는 글이 되었을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너는 정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선왕들의 시대에 문벌귀족과 권문세가들이 왕권을 쥐락펴락 위세를 떨칠 때에는 일치된 하나의 의견이 있었을 뿐”이라며 “아직도 흑과 백만 있는 세상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림씨는 “세상에는 온갖 조작된 풍문이 떠돈다. 나의 자리는 매일 욕을 먹는 자리다.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작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학문을 깨우치고 식견을 가진 너희 같은 지식인들이 그 가짜에 너무 쉽게 휩쓸리고 놀아나는 꼴이다”고 글을 맺었다.

이 반박글에 ‘시무 7조’를 쓴 조은산씨가 림씨의 글을 재반박하면서 온라인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조씨는 "2000만 백성 짓밟는 게 정의냐"며 "도처에 도사린 너의 말들이 애틋한데 그럼에도 너의 글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안에 것은 흉하다"고 답했다.

지난 28일 올린 림태주의 시무 7조 비판글은 페이스북에서 볼수 없다.

림 씨는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를 올려 "'이글을 읽는 분들께'라는 덧붙임 글에서 "하교 글(진인 조은산 씨의 시무 7조를 비판한 글)은 내린게 아니라 친구보기로 돌려 놓았습니다. 이유는 아시겠지요. 낯선 계정에서 몰려와 하도 막말과 쌍욕으로 도배를 해서 방치하기 어려웠습니다"라고 자신의 반박글을 내린데 대해 설명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민청원 '시무 7조 상소문'은 31일 오전 30만명을 돌파했다.

'어머니의 편지’라는 글로 유명한 림태주 시인은 2018년 산문집 ‘관계의 물리학’, ‘그토록 붉은 사랑’과 ‘이 미친 그리움’을 펴낸바 있다. 2014년 출간한 산문집 ‘이 미친 그리움’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추천사를 싣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림태주 시인 페이스북 캡처

[서울=뉴시스] 림태주 시인 페이스북 캡처


◇다음은 림태주 시인이 ;시무7조 상소문' 반박글을 내리고 31일 다시 올린 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 전문

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

깊은 태풍이 할퀴고 지나갔고, 지나간 자리에 젖은 세간들이 바깥으로 몰려 나왔습니다. 흙탕물을 씻어내고 눅눅한 물기를 말려도 예전 같지는 않겠지요.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햇볕을 쬐러 밖으로 나온 살림이 안쓰럽듯이, 사람의 몸 밖으로 나온 문장도 길을 잃고 향기를 잃었을 때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고자 했으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상처내는 글이 되었을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선생처럼 나 또한 생계가 막중한 범부라 세세한 정치에 관심을 두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무관심은 주권자로서의 무책임이라 늘 귀를 열어두고 있지만, 정치권도 민심도 극심한 대립과 분열로 치닫는 모습에 암담함을 느낍니다. 선생도 같은 심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소문의 형식을 빌려 그런 글을 썼으리라 짐작합니다.

격서 형식의 글에는 어쩔 수 없이 쓴 이의 이상이 담기게 마련입니다. 나는 정치의 품격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일개 범부가 꿈꾸는 이상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만은 정치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 정치의 사무가 민생과 민의라는 근본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민의도 품격 있게 표출되고 논의되기를 바랐습니다.

내 이름을 적시한 선생의 글을 읽고 몹시 기뻤습니다. 사실 선생의 상소문이 그저 허름하고 잡스러운 글이었다면, 나는 ‘하교’ 따위의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소문 형식 자체가 해학과 풍자가 담긴 새로움을 지녔고, 내용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됩니다. 선생 글의 형식에 대구를 맞추느라 임금의 말투를 흉내 내었고, 교시하는 듯한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선생의 글이 그러했듯이 내 글도 무분별한 악성댓글에 시달렸습니다. 그 무분별에 대한 경계의 말을 선생의 독자들에게 남겨주어서 좋았습니다. 좌든 우든 상식과 교양의 바탕에서 견해를 나누고, 품위를 잃지 않는 논쟁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봅니다. 보이는 만큼 이해하고 보는 만큼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자리에 선 사람의 시각과 말도 필요합니다. 세세하게 보고 말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멀찍이서 숲을 바라보며 말해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온전해진다고 나는 믿습니다. 코로나가 재확산 되면서 절감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저편의 사람이지만, 그가 안녕하고 무탈해야 내 건강과 안위가 보장된다는 역설입니다. 같이 살라는 코로나의 경고 앞에 겸허해집니다.

태풍이 오는 날, 숲에 들었습니다. 바람이 세찼고 상수리나무 군락이 일제히 흔들렸습니다. 그 속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밑동이 썩어 죽은 나무였습니다. 나무들이 좌우로 흔들면서 내는 소리가 무수한 삶의 물음처럼 들렸습니다. 뻣뻣해진 나무는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한 경직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부디 건강 하시기를 빕니다.

덧) 이 글을 읽는 분들께
하교 글은 내린 게 아니라 친구보기로 돌려 놓았습니다. 이유는 아시겠지요. 낯선 계정에서 몰려와 하도 막말과 쌍욕으로 도배를 해서 방치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도 안 보이게 된다면 그런 연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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