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비수기에도 서울 아파트값 '껑충'
매물 잠김→수급불균형 심화→신고가 경신 악순환 반복
서울 아파트값 평균 11억 돌파…중위값도 9억4000만원
"만성적인 매물 부족 해결 없이 집값 안정 기대 어려워"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전국 집값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번 달 상승 폭을 확대하면서 14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KB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 자료에 따르면 8월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1.50% 올랐다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지난달 1.46%에서 1.88%로 올라 2006년 12월(3.21%)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사진은 30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에 아파트와 주택들이 보이고 있다. 2021.08.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통상 부동산 비수기인 여름철(7~8월)에도 서울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불안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공급 쇼크' 수준이라고 자평했던 2·4 대책 발표 후 주춤했던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세로 전환한 뒤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지 9년 6개월 만에 11억930만원을 기록했다. 또 중위가격은 9억4000만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9억원을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값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비사업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강남권 초고가 단지들이 이끌고, 외곽지역 중저가 단지들이 밀어 올리는 형국이다.
세금과 대출 등을 총망라한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거래가 급감했으나, 일부 단지에서 신고가를 경신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등 '거래 절벽 속 상승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집값이 상승하고, 반대로 감소하면 하락 신호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부가 쏟아낸 규제 대책으로 아파트 거래량이 줄었으나, 집값은 오히려 상승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사실상 모든 부동산 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에도 신고가를 경신하는 단지들이 잇따르고 있다. 매물 부족에 따른 거래 절벽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데도, 재건축 기대감이 커지면서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재건축 단지의 과열을 차단하기 위해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규제를 강화했으나, 별다른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의 아파트값은 0.2%대 상승률을 기록하며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첫째 주(30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값은 0.21% 올라 전주(0.22%)보다 오름폭이 소폭 줄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울에선 노원구가 0.31% 올라 22주 연속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노원구는 월계동 주요 재건축과 상계동 위주로, 도봉구(0.24%)는 창동 재건축과 쌍문동 위주로 상승했다. 또 용산구(0.21%)는 재건축 및 리모델링 등 기대감 있거나 원효로·용문동 일대 저평가 인식 있는 단지 위주로 올랐다.
강남지역에선 강남구(0.28%)는 대치·개포동 인기단지 위주로, 송파구(0.28%)는 신천·잠실동 재건축 위주로, 서초구(0.22%)는 방배·반포동 주요 단지 위주로, 강동구(0.19%)는 명일·고덕동 위주로 상승했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규제완화 기대감 있는 재건축과 인기단지 위주로 상승했으나, 시중은행 대출중단 및 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일부 관망세 보이며 상승폭이 소폭 축소됐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사전청약 확대, 가계대출 제한, 기준금리 인상, 신규택지 발표 등 주택시장 과열을 잡기 위해 정부가 온갖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파트값은 오히려 상승 폭을 키우고 있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실제 신고가를 경신하는 단지들이 잇따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4차(전용면적 117.9㎡)는 지난 5월13일 41억7500만원에 거래됐다. 두 달 전 최고가인 40억3000만원보다 1억4500만원이 상승했다. 또 현대아파트1차(전용면적 196.21㎡)는 지난 4월15일 63억원에 거래됐다. 한 달 전 실거래가 51억5000만원보다 10억원 이상 올랐다.
집주인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는 '매도자(공급자) 우위의 시장'에서 정부의 규제 대책으로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기존 시세보다 높은 호가를 부르면서 신고가 경신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주택시장에선 수급불균형이 심해진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겹치면서 집값 상승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시가 지난달 19일 그동안 주요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적용한 15층 층수 제한을 폐지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또 주택 수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정부 정책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부동산시장에 불안 심리도 한 몫하고 있다. 대책 발표될 때마다 집값이 일시적인 안정세를 보이다 다시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규제에 내성이 생겼고, 규제가 강할수록 집값이 급등했다는 '학습효과'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수심리도 강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이번 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 지수(8월 30일 기준)는 106.5로 전주(105.6)보다 상승했다. 이 지수가 기준치인 100이면 수요와 공급이 같은 수준이고, 200에 가까우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하반기에 신규 공급 물량이 줄어든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입주 예정인 서울 아파트는 1만3023가구다. 이는 2019년 하반기(2만3989가구), 2020년 하반기(2만2786가구)와 비교하면 1만 가구 이상 감소한 물량이다.
전문가들은 만성적인 주택 수급 불균형으로 서울 아파트값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만성적인 주택 수급 불균형이 이어지고,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세보다 높은 호가에 매물을 내놓아도 추격 매수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금리를 인상했으나, 집값 잡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수급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을 체감할 때까지 최소 5년 이상 걸리고, 매물 잠김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 집값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며 "매물 부족에 따른 거래 절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재건축 규제와 대출 등 세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겹치면서 집값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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