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유출 지능화되는데'…검수완박 통과하면 수사 어쩌나
수원지검, 첨단기업 보호 위해 전국 유일 중점 검찰청 지정, 전문수사팀 운영
3∼5개 검사실 수사팀 구성해 5∼6개월씩 수사...특허청 자문관 2명도 파견
기술유출사건 대부분 대형 로펌 선임해 방어권 행사...수사부터 기소까지 연계돼야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핵심 법안인 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28일 0시에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종료됐다. 이후 국회는 오는 30일 새 임시국회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의 표결을 위한 본회의를 열 계획이다. 사진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2022.04.28. [email protected]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전국 검찰청 가운데 유일하게 첨단산업보호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된 수원지검이 관련 분야의 전문수사를 위해 설치한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제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제적으로 기술유출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 속에서 전문수사인력 활용성을 축소시킬 수 있는 검수완박 법안 발의가 ‘엇박자 행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지난 2017년 12월 수원지검을 첨단산업보호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하고, 이듬해인 2018년 3월 수원지검에 ‘첨단산업보호 수사단’ 설치·운영에 들어갔다.
2019년 2월에는 ‘산업기술범죄수사부’로 새롭게 개편해 각종 기술유출 사건 등을 수사해왔다. 지난해 1월 1일부터는 서울중앙지검의 방위사업범죄 수사기능을 이관받아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로 부서 명칭을 바꿔 관련 범죄 등을 직접 수사하고 있다.
이러한 전문수사 부서가 수원지검에 생긴 것은 관할인 경기남부권에 세계적인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밀집해 있는 영향이 크다. 수원지검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술유출·영업비밀침해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사 전문성 등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검찰 차원에서 단행된 조처다.
수원지검 관내에는 삼성전자(수원·기흥·화성·평택)와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화성), SK하이닉스(이천), 판교 테크노밸리(성남) 등이 조성돼 있으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원에는 약 415㎡ 규모로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도 들어온다. SK하이닉스가 120조 원을 투자해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총 4개소의 반도체 생산 공장(Fab)을 건설할 예정이다.
문제는 검수완박 법안 통과되면 이러한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사건 등 소위 ‘혐의 입증이 까다로운 사건’ 수사와 공소 유지가 더욱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소집해 검찰청법 개정안 표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는 6대 범죄(부패·경제·선거·공직자·방위산업·대형참사)에서 부패와 경제범죄로 축소된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검수완박' 관련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상정된 제 395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첫 주자로 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4.27. [email protected]
이 중 기술유출범죄는 경제범죄에 속하기 때문에 해당 법안이 통과돼도 당장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제한되지 않는다. 하지만 향후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에 따라 해당 업무가 넘어가면 검찰 수사가 어떤 형태로든 제한될 소지가 높다. 방산비리와 기술유출범죄 등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건의 경우 수사와 기소를 연계해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수사와 기소를 따로 떼어내면 범죄 포착과 수사 진행이 어렵다는 게 검찰의 의견이다.
특히 방산비리는 전·현직 군인들 간 폐쇄적 연고관계를 매개로 주로 발생하는 데다 국가가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직접적인 수사가 수반돼야 한다고 검찰은 설명한다. 군사법원 재판권이 있는 군인은 군검찰이, 공범인 민간인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각각 담당해 함께 공조수사도 진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현재 수원지검에는 군검사 3명을 포함해 총 8명이 파견근무 중이다.
기술유출수사 역시 전문적이고 난해한 기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물론 법률 규정의 모호성 등으로 인해 혐의 입증이 어렵고, 공소유지가 쉽지 않아 전문수사 부서가 필요한 대표적 분야로 구분된다. 이러한 사정 탓에 기술유출사건은 전국 검찰청 접수사건의 약 80%가 불기소되고 있다. 그나마 기소되는 사건도 약 20%가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일반 사건의 무죄율은 약 1% 내외다.
대검찰청의 ‘2021년 기술유출범죄 처리현황’을 보면 전체 처리건수 230건(595명) 가운데 61.5%인 366명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구약식(26명), 기소유예(20명) 처분도 7.7%를 차지했다.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182명(30.6%)에 불과했다. 2020년에는 495건(1033명) 가운데 76.5%인 787명이 ‘무혐의’를 받았다. 구약식(33명), 기소유예(29명)도 6.0%를 보였다. 재판에 넘어간 인원은 179명(17.3%)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검수완박 법안 통과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기소검사는 수사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기술자료를 포함한 수만 쪽 분량의 기록을 살펴보고 혐의 유무 판단과 법리 검토까지 해야 한다. 결국 불가피하게 수사 지연이 이뤄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기술이 유출된 기업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검수완박 법안 통과 전인데도 2018년∼2019년 수원지검이 기소한 기술유출사건 가운데는 현재도 항소심이 계속 진행 중인 경우도 있다.
게다가 전문 분야의 사건은 보통 피의자들이 대형 로펌의 전문 변호사들을 선임한다. 이 때문에 기소 이후 공소유지도 다른 사건보다 어려운 편이다. 첨단산업보호 중점 검찰청인 수원지검은 기술유출사건의 전문성 확보와 신속한 수사를 위해 특허청 특허자문관 2명을 파견받아 수사 및 공소유지에 도움을 받고 있다.
또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 내 3∼5개 검사실이 수사팀을 구성해 5∼6개월씩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유지도 수사검사가 직접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업비밀 취득 및 부정사용 여부 확인, 영업비밀 특정, 영업비밀 경제성, 손해액 산정, 부정한 목적의 입증 등 사실관계를 비롯해 법률가로서 판단을 내리는 등 추가 검토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게 가능해진다.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수원검찰청사 전경. 2022.04.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 이춘(48·사법연수원 33기) 부장검사는 지난 29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 부장검사는 게시글에서 “기소검사가 기록만을 검토하고 결정하는 일이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며 “저도 10년 이상 관련 분야 수사경험이 있고, 공인전문검사인데도 사건을 배당받으면 어렵게 느껴지고, 최종 처분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고민하고 있다. 주요 핵심기술 해외유출 사건과 같은 전문분야 사건은 수사와 기소를 연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2013년부터 검사의 전문 분야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공인전문검사 제도를 운영해왔다. 현재까지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자랑하는 검사에게 수여하는 공인전문검사 1급인 '블랙벨트'에는 7명, 2급 블루벨트에는 242명의 검사들이 선정된 바 있다.
상황이 이렇자 그동안 양성한 전문수사부서를 자칫 약화시킬 수 있는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기술유출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국제적 흐름과 배치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은 최근 첨단기술 유출 연구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법 제정에 나서고 있다. 대만도 지난 2월 국가핵심관건기술 경제간첩죄를 신설하는 등 강화했다.
우리나라 역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면 기존 징역 15년 이하 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 수위를 높였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도 영업비밀 해외유출 시 기존 10년 이하 징역에서 15년 이하 징역으로 올렸다.
검찰 관계자는 “기술유출 등 전문분야 사건에서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분리하게 되면 수사지연, 책임소재 불분명 등 효율적인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그동안 전문화를 위해 쌓은 수사역량과 유관기관과의 협조 등을 증발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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