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展 [박진희의 사진으로 보는 문화]
국립현대미술관‑구겐하임미술관 공동기획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정강자의 <키스미>(1967). ‘신전동인’의 주요 회원인 정강자는 1967년 '한국청년작가 연립전'에서 '키스미'를 전시했다. 위아래 치아가 다 드러나 보이는 입술을 거대한 석고로 만들고 밝게 채색한 대형 입체 작품이다. 치아 위에는 선글라스를 쓴 여성의 머리, 가정용 고무장갑, 유리 플라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정강자는 과장된 신체 부위를 통해 남성의 성적 시선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주체로서의 성적 욕망’에 대한 강령을 선포하려고 시도한다. 그 당시 활동한 소수의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인 정강자는 “우리는 사회,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있고, 그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쏠려 있다”며 “‘문제적’인 여성으로 치부되는 것이 너무 만연해 이러한 비난을 가시화하려고 노력했다”라고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설명했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공동기획으로 주최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은 근대화, 산업화의 국가 재건 시대에 청년 작가 중심의 전위적 작품 활동을 한 국내 작가들의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당시 국제 사회는 68혁명, 반전 평화운동, 페미니즘 등으로 인식의 전환기를 맞았으며, 한국은 6.25전쟁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한 산업의 압축 성장으로 사회는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경제 개발의 물질적 풍요와 정치·사회적 억압 등의 사회 변화는 일상에서 ‘나’를 중심으로 예술의 의미를 모색해 온 청년 작가들에게 모순된 토대로 작용했다.
예술과 사회의 소통을 주장, 보수화된 기성세대의 형식주의에 반발하며 그룹 또는 개인으로 기존의 회화, 조각의 영역을 벗어나 오브제와 입체미술, 해프닝, 이벤트와 영화, 비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들을 전위적 ‘실험미술’의 이름으로 포괄하며 역동적인 사회 현상을 조망한 이들의 전위적 실험 작품과 자료를 소개한다.
‘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강국진의 〈시각I,II〉(1968). 강국진은 1960–70년대에는 행위와 설치, 1980–90년대에는 판화와 회화 작업에 주력하며 일평생 다양한 미술 매체를 실험했다. 강국진은 1960년대 후반에는 네온사인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시각I,II〉(1968)처럼 산업 재료를 활용한 작품으로 새로운 시대감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태현의 <명1〉(1967(2001 재제작)). '제2회 무동인전'에서 이태현은 '명(命)'이라는 제목의 연작 다섯 점을 선보였다. 작품 제목 '명'은 명령(命令)과 사명(使命)을 동시에 뜻한다. 작가는 국가의 강력한 명령에 의한 통제, 그리고 경제 성장을 위한 국민들의 달뜬 사명이 뒤섞여 역동적이었던 1960년대 상황을 '명' 연작에 반영하였다. '명1'은 실제 군사 훈련에서 사용되는 화생방 방독면과 군 배낭 장비를 오브제로 활용한 작품이다. 이는 연달아 일어나는 시위를 억압한 군사정권의 명령과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경험하는 군 복무라는 국가에의 사명을 암시한다. 1964년부터 정부는 베트남에 군을 파병하여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나가고 있었으며, 작품이 제작되던 해 한국 내에는 6.8 부정 선거에 대한 대학생들의 규탄 시위 등으로 시민과 군부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었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의 상황 속에서 정부의 폭압에 반(反)하는 한 개인이었으며, 동시에 국가의 명을 받아 그에 동조해야 하는 군인이었다. 작품에 군사 장비로 드러난 전쟁 같은 일상과 일상의 전쟁은 개인과 사회를 휘두르는 이 강력한 명령의 발화자가 누구인지 질문하고 있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한강변의 타살〉(1968). 이 작품은 1968년 국전의 심사 비리가 터진 해에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이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 의식을 표출하기 위해 1968년 10월 17일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 아래 강변에서 열린 퍼포먼스의 기록이다. 이들은 제2한강교 밑에서 각자 스스로가 들어갈 무덤으로서의 구덩이를 판 후, 색 비닐 천을 몸에 감고 목만 내놓은 채 그곳에 묻혀, 관객들에게 물세례를 받았다. 이는 타살을 의미하는 행위였다. 무덤에서 나온 그들은 비닐 천 위에 흰 페인트로 그들을 타살한 기성세대를 고발하는 글을 썼다. 문화 사기꾼(사이비 작가), 문화 기피자(관념론자), 문화 부정 축재자(사이비 대가), 문화 보따리장수(정치 작가), 문화 곡예사(시대 편승자)라고 쓴 다음, 그것을 읽으면서 태우는 화형식을 치르고, 매장하였다. 이는 제도권 문화와 기성 미술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해프닝을 통해 표현한 것으로, 화형과 매장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를 상징화하였다. 비록 정치, 사회적 발언은 아니었지만 기존에 있었던 해프닝들보다 사회성이 더 짙어진 특성을 보였다. 바람 부는 차가운 한강의 모래사장에서 비닐을 불태우며 “죽이고 싶다. 모두!”라고 외쳤던 이들은 실험적 해프닝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에 대한 자각을 촉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제공=황양자)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도심 속, 1/24초의 의미’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기존 가치와 관습에 대한 부정의 정신을 견지한 김구림 작가는 회화와 판화, 조각, 설치미술을 비롯하여, 퍼포먼스, 대지미술, 비디오 아트, 메일 아트에 이르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지속해왔으며, 실험연극, 실험영화, 음악, 무용에도 종횡무진 개입해왔다.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에 참여하여 개념과 과정을 강조하는 전위적인 미술 활동을 펼쳐나갔으며, 1970년에는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인과 지식인들로 구성된 전위예술집단인 제4집단을 결성하여 미술, 연극, 영화, 패션, 음악 등을 종합한 총체예술을 추구했다. '1/24초의 의미' 는 제4집단을 결성하기 한 해 전에 만든 실험 영상작품이다. 1초에 24컷이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이 작품은 흑백과 컬러가 혼재되어 있고 달리는 차 안에서 본 삼일고가도로, 세운상가, 고층빌딩, 육교, 옥외광고판, 방직공장 등 근대화된 도시의 모습을 빠르게 편집하여 담고 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한 도시인의 권태로운 일상적 행위의 장면들(하품, 흡연 등)이 영상 중간 중간 등장한다. 이렇게 불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인 전개 과정으로 파괴와 잔인함, 지루함과 일상을 느리게 혹은 매우 빠른 속도로 중첩시켜 재생하는 이 영상은 급속히 산업화돼가는 한국 현대사회의 단면들을 인상적으로 포획한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구림이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을 감쌌던 '현상에서 흔적으로'(1969/왼쪽)를 재해석해 새롭게 제작한 드로잉 '구겐하임을 위한 현상에서 흔적으로'(2021).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전위의 깃발아래 –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건용의 <신체항 71-2014>, 이승택<종이나무> 등 아방가르드 협회 작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장.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송번수의 〈공습경보 I, II, III, IV, V〉(1974). 송번수는 실크스크린 기법의 일종인 세리그래프(serigraph)라는 판화 기법을 활용하여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1970년대 작가는 판화 기법을 기반으로 하여 매체의 경계를 넘는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였다. 이 시기 송번수는 국내 사회·정치적 상황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공습경보'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사면체의 다이아몬드형 패널 안에는 마스크를 쓴 인물이 등장하며, 그 모습에는 어둠 속에 번지는 섬광과 같은 불빛이 빨강, 노랑, 파랑으로 비추어 있다. ‘공습경보’는 적의 항공기가 공격할 준비가 되었을 때 위험이 임박함을 알리는 호출 신호이다. 노란색은 ‘경계경보’, 파란색은 ‘공습경보’, 초록색은 ‘경보해제’를 의미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1970년대 한국이 실제 북한의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 오염, 질병, 사회적 억압 등 다양한 잠재적 위험을 가진 상태이며, 이것이 공습경보 상태와 유사하다고 일컬었다. 2023.05.28. [email protected]
'“거꾸로” 전통'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승택의 〈무제(새싹)〉(1963). 이승택의 ‘비조각’에 대한 급진적 실험은 현대에 대한 찬양을 피하고 민속과 토착적인 것을 껴안았다. 이승택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신념을 강조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역사적 유물들을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언급해 왔다. 1961년 시작한 '옹기' 연작은 공예, 구체적으로는 한국 가정에서 전통적으로 음식을 보관하고 발효시키거나 담을 때 사용했던 유약을 바른 토기 그릇(또는 오지)에 기반했다. 당시 대량생산품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장인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승택은 옹기라는 매체를 찾아냈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 기술을 연마했다. 실제로 그가 디자인한 그릇들이 서울 퇴계원 근처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크기나 형태 면에서 전통적이지 않은 이승택의 옹기들은 원래의 일상적 용도와 상관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기존의 조각들처럼 바닥에 놓이기도 하고 벽이나 천장에 걸리기도 했다. '무제(새싹)'는 1963년에 처음 제작되었고 이승택의 중요한 대형 설치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작품은 세 세트(지지대가 있는 두 세트, 지지대가 없는 한 세트)로 구성되는데 각 세트는 여섯 점의 조각품들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크기로 독립적인 눈물 형태의 조각들은 전통 옹기의 적갈색 테라코타로 칠해졌고 불꽃 같은 문양이 들어갔다. 이 작품은 이승택이 이 작품들을 처음에 어떻게 ‘야외에서’(en plein air) 전시했는지 보여준다. 예술을 밖으로 가져온 이승택은 자신의 비조각들을 전시장의 물리적, 개념적, 상업적 굴레에서 해방시켰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나’와 논리의 세계: ST’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건용의 <손의 논리>(1975). 이건용은 이벤트 개념에 ‘논리’를 더한 자신의 행위를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로 명명하였다. 이는 ‘일상 행위’를 작가의 계획된 논리 아래 강박적으로 반복하게 하여, 본래 목적과 맥락에서 일탈시켜 그 자체를 새롭게 사고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손의 논리'는 작가의 논리적 계획을 통해 오직 두 손이 만들어 내는 행위와 형태를 통해 하나의 사건으로 전환되는 작품이다. 양손의 엄지손가락이 맞닿거나 손가락을 접고 펴는 가운데 손가락들은 엄지손가락끼리만 맞닿거나, 네 개의 손가락이 마주하는 형태로 보이게 된다. 이 이벤트는 두 손가락이 서로 접히는 방식에 의해 가까워지거나 멀어진다는 명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지각을 의도한 작가에 의해 엄지의 위치에 따라 변화하는 손가락들의 위계라는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즉, 획일적인 사고와 신체의 구속이 자행되던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남상균이 <질료(質料) I, II,>(1973), (2021, 2023 부분재제작). ST(Space&Time)에서 활동했던 남상균은 새로운 창작을 위한 '부정'에 대하여 고민했다. 그는 유신정권 시대에 정치적으로 '부정'할 대상이 있지만, 미술에서는 '부정'해야 할 전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작가로서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때부터 '예술의 사회에 대한 역활'과 '예술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질료 I', '질료 II'는 바로 1970년대의 사회적 긴장감과 미술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서 암울한 시대를 불태우고 싶다는 분노 속에서 창작된 작품이다. 그는 어떤 대상이 불타고 나서 남은 모습을 작품으로 남기고자 일상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담배와 성냥개비를 질료로 선택했다. 작품을 위해 청년들이 즐겨찾던 음악감상실을 돌아다니며 재떨이에 버린 담배꽁초를 모았다. 또 성냥을 몇통씩 사서 불태웠다. 이렇게 모인 질료들은 투명 아크릴 액자통에 나누어 넣으며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각종 담배와 재가 썩이며 예상치 못한 형상과 분위기를 나타냈다. 이는 작가의 계획이나 의도가 아니라, 되어 가는 형태로써 기하학적 혹은 무정형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흐름을 보여준 것이다. 이로써 타버린 것들의 잔해는 일종은 실존감과 함께 당대의 허무함을 표현한 작품이 되었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성능경의 〈사과〉(1976.상단 사진)와 <여기>(1975). 성능경은 1970년대부터 신문, 사진, 행위의 요소를 결합해 일상성과 신체성을 탐구하며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특유의 개념미술을 추구해 왔다. 작가는 대학 졸업한 후 ST의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했으며, 1974년 '제3회 ST전'에서 '신문: 1974.6.1 이후'(1974)라는 이벤트를 실행했다. 이후 성능경은 '신문 읽기'(1976), '8면의 신문'(1977), '현장 1'(1979) 등 신문의 지시성을 해체하고 편집 권력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일련의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또 1975년 제2회 대구현대미술제에 출품한 '액자'(1975)와 '사진첩'(1975) 등의 사진 작품을 통해 동어반복의 토톨로지(tautology) 개념을 추구했다. 이듬해 성능경은 '위치'(1976), '사과'(1976) 등 행위의 과정에 주목한 사진 여러 장을 설치 작품으로 구성해 발표했다. 이는 사진 기록을 위해 연출된 작가의 신체 행위의 결과물 그 자체로 행위미술인 사진 작품이었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강소의 <무제 75031>(1975), (2016 재제작). 전시장에 닭을 묶어두고 바닥에 석고가루를 뿌려 제한된 환경에서 닭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닭은 주인에게 돌아가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 흔적들이 최종 작품이다. 이강소의 '무제 75031'는 덧없음, 변화 그리고 존재의 유동성에 대한 것이다. 매번 재설치를 해야하는 이 작업은 없어진다는 것, 멈춰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여기서 닭이 물리적으로 제한 받다가 마지막에 사라진 것은 박정희 유신 정권이 국민에게 강제로 실행했던 심각한 검열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천을 사포로 문질러 완성한 심문섭의 '현전(現前)'(1974-1975).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현기의 〈무제(TV돌탑)〉(1982). 박현기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과 다른 비디오아트 작가들을 1974년 처음 만났다. 국내 대부분의 가정에서 볼 수 있던 전지구적 상품, 텔레비전에 대한 계속적인 호기심은 사용자들이 비디오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었던 획기적 발명품 백-아베 신디사이저로 이어졌다. 1979년과 1982년 사이, 박현기는 그의 주요 비디오 연작 '무제(TV 돌탑)'를 만드는 데 이 신디사이저를 사용했다. 이 연작은 1979년 제15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발표되었으며, 비디오 부문에 초대된 것은 처음이었다. '무제(TV돌탑)'는 큰 돌 몇 개와 CRT모니터를 돌탑의 형태로 쌓은 것이다. 모니터상에서는 싱글 채널 비디오로 바닥에 흩어져 설치된 다른 돌처럼 움직이지 않는 돌이 재생되고 있었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돌들은 쌓는 과정에서 떨어진 것들로 최종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매 설치 때마다 특정 환경의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창작 장소의 돌을 사용했다. ‘돌탑’은 전통적으로 마을이나 절의 입구를 표시하고 액운을 막는 용도였다. 박현기는 한국 전쟁 중에 처음 돌탑을 보았다. 가족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신하던 중 같은 경로로 피신하던 다른 피난민들이 평화를 기도하며 남긴 돌탑이었다. 근대화 이전 대한민국의 주술 문화 관습을 되돌아보는 건축적 형태를 감상함으로써, '무제(TV 돌탑)'는 전후 시대의 테크노필리아와 근대화의 가속을 향한 당시 정부의 야심에 질문을 던졌다. 이를 통해 자연과 문화, 기술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 간의 현대적 체계를 흔들려 했다. 2023.05.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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