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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 대한민국 가수 수명 늘렸다"…추모 계속(종합)

등록 2024.07.16 12: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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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부산서 태현철로 데뷔

오랜 무명생활 겪다 1980년대 중반부터 주목

'봉선화 연정' '싫다 싫어'로 'KBS 가요대상"

태진아·송대관·설운도와 트로트 4대 천황으로

[서울=뉴시스] 현철. (사진 = 뉴시스 DB) 2024.07.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현철. (사진 = 뉴시스 DB) 2024.07.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5일 82세를 일기로 별세한 1980~90년대 트로트 제왕 현철(강상우)에 대한 가요계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16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항상 얼굴이 스마일이셔잖아요. 무명의 고생한 시절 그림자를 찾아볼 수가 없어요. 항상 따듯하게 모든 사람을 대하셨던 선배님"이라고 울먹였다.

재작년에 현철 자택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이 회장은 "그 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괜찮으셨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가수 박구윤은 이날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저희 아버지께 늘 하시던 말씀이 '구윤이 나 주라, 내가 키울게'라며 늘 저를 예뻐하시고 업고 키워주신 가요계의 큰 별, 현철 큰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셨다"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서울=뉴시스] 현철. (사진 = 뉴시스 DB) 2024.07.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현철. (사진 = 뉴시스 DB) 2024.07.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어린 시절 현철과 함께 찍은 사진도 올린 박구윤은 "오랜 시간 투병 끝에 작고하셨기에 많이 힘드셨을 거라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큰아버지 가시는 길 다 같이 기도해 주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덧붙였다.

박구윤은 현철의 대표곡 '봉선화 연정'을 작곡한 작곡가 박현진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현철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작년 12월 방송된 TV조선 음악 예능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서 현철을 큰아버지처럼 모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수 김수찬도 소셜 미디어에 고인의 사진을 올리며 "선생님 그곳에서는 평안하시라. 신인 때 잘 챙겨주셨는데… 함께 한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곧 뵈러 가겠다"고 추모했다.
[서울=뉴시스] 현철과 벌떼들 음반.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4.07.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현철과 벌떼들 음반.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4.07.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는 현철에 대해 매우 서민적이고 누구에게나 친근함을 주는 '오랜 친구' 같은 가수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철 씨는 만년까지 노래를 떠나지 않았던 분이다. 우리 가요계에 크게 기여한 것 중 하나는, 대한민국 가수들의 수명을 늘렸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또 "실제로 그 이전까지는 60세에 가까운 나이에 전성기를 누린 분이 많지 않았던 풍토였다. 현철 씨가 그 나이에 왕성하게 활동하며 '사대천왕'으로까지 불렸던 건 실로 대단한 업적이다. 그런 점이 후배들에게 귀감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존엔 현철이 1969년 '무정한 그대'로 데뷔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박 평론가에 따르면, 현철은 1966년 고향인 부산에서 태현철이라는 활동명으로 첫 음반을 발표했다. 1967년, 1968년에도 신곡을 냈으나 주목 받지 못하며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다.
[서울=뉴시스] 현철 음반.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4.07.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현철 음반.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4.07.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다 1979년 작곡가 박성훈가 둘이서 '벌떼들'이란 이름으로 '아이 워스 메이드 포 댄싱(I Was Made For Dancing)'을 번안한 '다함께 춤을'을 발표했다.

이후 '현철과 벌떼들'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며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사랑은 나비인가봐' 등을 냈다. 이 곡들이 히트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과 여성 코러스들을 영입해 활동을 이어가면서 부산의 나이트클럽 일대를 주름잡았다.

40대 중반부터 솔로 활동을 본격화했다. 1986년 발표한 '내 마음 별과 같이'가 이듬해 히트했다. 1988년 발표한 '봉선화 연정'이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톱 가수 반열에 올랐다. 1989년 KBS '가요대상' 대상을 품에 안은 데 이어 이듬해인 1990년에도 '싫다 싫어'의 히트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서울=뉴시스] 현철. (사진 = 뉴시스 DB) 2024.07.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현철. (사진 = 뉴시스 DB) 2024.07.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평소 성격이 느긋하고 집념이 강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 늦깎이 스타로서 주목 받는데 큰 몫을 차지했다고 박성서 평론가는 봤다.

박 평론가는 특히 "현철씨가 활동하던 80년대와 90년대에는 트로트 가요가 '성인가요'라는 이름으로 별도 구분되던 시기였다"면서 "그런 풍토에서도 트로트 가요의 명맥을 이어오는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1980~1990년대 트로트 부흥 시대를 함께 이끈 태진아, 송대관, 설운도와 묶여 '트로트 4대 천황'으로 불리기도 했다. 

부인 송애경 씨와 1남1녀를 유족으로 남겼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18일 오전 8시20분.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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