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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 한국전쟁 참여' 재일학도의용군 진실규명…"역사 반영해야"

등록 2024.11.20 08:00:00수정 2024.11.20 09: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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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학도의용군 한국전쟁 참전 직권조사 실시

기존 알려진 참전자 수 642명 외 추가 인원 확인

진실화해위원회 "역사기록에 반영하도록" 권고

[서울=뉴시스]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사무실에서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사무실에서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수정 기자 = 일본에 거주하던 학생들과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재일학도의용군'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기존 참전자 수에 더해 추가 인원도 파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제91차 위원회를 열고 '재일학도의용군 한국전쟁 참전'에 대해 진실규명으로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재일학도의용군 한국전쟁 참전에 대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진실규명사건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진실규명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진실규명대상자인 박운욱씨와 박병헌씨 등 일본에 거주하던 우익진영 학생 및 청년은 자발적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운욱씨는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회장이자 국내 유일 생존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들은 병역의무는 물론 조국의 부름도 없었지만, 오로지 전쟁의 포화에 휩싸인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서의 학업과 직장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설명했다.

재일학도의용군은 제1진에서 제5진 등 다섯 차례에 나뉘어 출전했고, 제5진을 제외한 재일학도의용군들은 군번도 주어지지 않은 채 미군 또는 국군에 배속됐다.

이중 일부는 국군으로 편입돼 간부시험에 합격해 장교로 복무하거나, 하사관·일반 사병 등으로 전투에 참전했다. 미군 부대에 배속돼 1950년 말 일본 현지에서 제대한 재일학도의용군 일부는 재지원해 국군에 편입,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한국에서 제대 명령을 받은 재일학도의용군은 관계 당국의 협조를 받아 1952년 2월까지 260여명이 일본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1952년 4월부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일본이 주권국가로 독립하게 되자 일본 정부는 재일학도의용군의 일본 귀환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1953년 7월 휴전협정 이후 각 부대에서 제대한 240여명의 재일학도의용군은 일본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한국에 정착했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는 한국전쟁 참전 활동을 총정리한 '재일학도의용군 6·25전쟁 참전사'에 참전자 수를 642명으로 밝혔으나,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642명 외에 추가 인원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재일학도의용군의 한국전쟁 참전이 진실로 규명되고 참전자 수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642명 이상으로 확인됐으므로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관계 기관에 참전 인원과 활약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일학도의용군이 실천한 조국 수호와 나라사랑 정신을 역사교과서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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