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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지원 요청했는데 ”예산 소진" 거절…고독사 못 막았다

등록 2025.03.21 16:35:27수정 2025.03.21 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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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성 A씨, 신사동 빌라 반지하서 숨진채 발견

주민센터, '긴급복지' 요청에 예산 소진·미배정 이유로 불가

전문가 "예산 추경·복지관 연계 등 적극적인 대응 했어야"

[서울=뉴시스]지난 19일 숨진 채 발견된 50대 남성 A씨가 거주하던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빌라 반지하 바깥에 설치된 도시가스 미터기에 '도시가스 요금 체납으로 인해 2월 공급을 중단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는 모습. 2025.03.21

[서울=뉴시스]지난 19일 숨진 채 발견된 50대 남성 A씨가 거주하던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빌라 반지하 바깥에 설치된 도시가스 미터기에 '도시가스 요금 체납으로 인해 2월 공급을 중단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는 모습. 2025.03.21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강류나 인턴 = #. 서울 강남구 신사동 빌라 반지하에서 거주하던 50대 남성 A씨는 무직 상태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전기세, 수도세, 가스요금 등 주택 관리비도 수개월 내지 못했다. 이에 A씨는 동주민센터에 긴급복지지원을 두 차례 요청했지만 "관련 사업 예산이 소진됐다"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후 2개월이 지나 A씨는 숨진 채 발견됐고, 경찰은 사망한 지 상당 시간이 흐른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고독사 예방관리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한 동주민센터가 '예산 소진'을 이유로 긴급복지제도 등 관련 지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19일 오후 3시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근처 한 빌라 반지하에서 5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발견 당시 A씨가 내야 하는 3~4개월가량 월세와 공과금이 연체돼 있었다. 이를 두고 경찰은 사망 이후 꽤 시일이 경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주 부검을 진행해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고 유족에게 시신을 인계할 계정"이라고 밝혔다.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빌라 반지하는 가로수길에서 200m 가량 떨어져 있다. 이날 오전 기자가 찾은 A씨 집 우편함에는 각종 고지서와 공공요금 체납 고지서가 등 우편물 10여개가 쌓여 있었다. A씨 집 안에는 소주 1병과 옷가지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싱크대 위에는 누룽지 봉지와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놓여져 있었다.



A씨 집 바깥에 설치된 도시가스 미터기에는 '도시가스 요금 체납으로 인해 2월 공급을 중단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었다.

이 빌라에 거주하는 주민 B씨는 "A씨가 살던 호실에 남자가 산다는 건 느낌으로 알았는데 최근에 본 적은 없다. 우리는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쌓인 고지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라며 "주인 말로는 A씨한테 이사 가라고 했는데 이사도 안 가고 쓰러졌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A씨는 사망 당시 6개월 넘게 무직이었다고 전해졌다. 관할구청인 강남구청은 지난해 7월 A씨를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상'으로 선정하고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상으로 선정이 되었으니 상담을 받아달라’는 안내 우편을 보냈다. 이어 8월엔 A씨 자택을 직접 방문했으나 부재 중이었다.

이어 A씨는 지난해 12월 30일 관할 동주민센터에 전화해 "안내를 늦게 봤다"라며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동주민센터 측은 "연말이라 예산을 소진한 상태다. 내년 되면 다시 예산이 들어오니까 지원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이후 올해 1월15일 A씨는 다시 동주민센터를 다시 찾았고, 동주민센터 측은 "아직 예산이 들어오지 않았다. 보통 20일 쯤에는 예산이 내려오니, 그때 쯤이면 지원이 가능할 거 같다"고 했다. A씨는 이후 동주민센터에 다시 가지 않았고,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19일 숨진 채 발견됐다.

A씨가 요청한 긴급복지 지원 사업은 실직, 질병 등으로 갑작스럽게 생계가 곤란해진 가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국가(50%), 시(25%), 구(25%)가 매칭하는 예산으로 운영된다. 서울 강남구는 지난해 긴급복지 사업에 예산 총 27억 3786만원을 집행해 위기가구 2963가구를 지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강남구청 측은 A씨가 지원을 요청한 12월30일과 1월15일은 통상 예산이 소진되고 결산, 배정되는 시기로 지원이 불가했다고 해명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연말이면 예산을 되도록 소진을 한다. 예산 배정도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소요된다"라며 "예산이 안 내려왔는데 자의대로 집행할 수 없다. 행정적인 사정이 있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동주민센터는 예산이 배정된 이후에도 A씨에 연락을 취하거나 복지관 연계 등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업 예산이 소진됐었고 A씨가 다시 방문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었고 다른 지원 업무를 계속하다보니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긴급복지지원의 경우 예산 소진을 이유로 지원을 못하는 사례는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재언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취약가구는 특히 겨울에 가장 위험하다. 예산을 충분히 배정했어야 한다"라며 "말그대로 긴급 지원인데, 예산이 소진됐더라도 예비비를 쓰거나 다른 단체를 통해 자원 연계도 있고, 지역 내 복지관을 연계만 해줘도 식사 제공 등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제정된 ‘고독사 예방법’에 따르면 국민은 고독사 위험에 노출되거나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국가 및 지자체는 고독사 위험자를 고독사 위험으로부터 적극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에 지난해 7월부터 전국 모든 지자체가 '고독사 예방 시범사업'을 시작하는 등 정부·지자체가 고독사 예방 사업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활용하거나 자체 기획조사 등을 통해 고독사 위험자를 발굴하고, 필요한 예방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작년 투입되는 예산은 총 46억6000만원 정도로 국비가 절반에 광역 30%, 기초 20% 등으로 구성됐다.

이와 관련해 유재언 교수는 "우리나라 고독사 예방이 최근에서야 제도적으로 틀은 갖춰졌으나 사업 안내지침이 공무원들에 내재화되지 않는 등 행정의 말단까지 퍼져있지 못하다"라며" 이에 대한 사업 교육과, 사업에 대한 모니터링과 평가가 지속 이뤄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국민의힘 조용술 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11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기초생활보장제를 비롯한 복지 시스템을 개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보호망의 빈틈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라며 "이 비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민의힘은 여야정협의체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 편성을 반드시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scho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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