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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불 끄려 무인파괴방수차·질식소화포 확충?…전문가들 "글쎄"

등록 2024.08.23 07:00:00수정 2024.08.23 07: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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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전기차 화재 대응 위해 특수 소방장비 도입 확대"

질식소화덮개·이동식 소화수조·방사장치 등도 확충

전문가들 "특수설비 도입보다 기존 장비 관리 더 중요"

[인천=뉴시스] 김동영 기자 = 경찰과 소방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지난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난 차량을 감식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08.02. photo@newsis.com

[인천=뉴시스] 김동영 기자 = 경찰과 소방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지난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난 차량을 감식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08.02.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당정이 전기차 화재 진압을 위해 무인파괴방수차를 비롯한 특수 소방장비 도입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전기차 화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장비를 늘리는 것보다 기존 소화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관리 점검을 철저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3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전기차 화재 대응책으로 내년 무인파괴방수차 등 특수 소방장비 도입을 확대할 방침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20일 열린 '2025년도 예산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해 무인파괴방수차를 추가 도입하고,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도 확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무인파괴방수차'는 무선 조종기를 사용해서 건물 외벽이나 천장을 뚫은 뒤, 소화약제나 다량의 물을 주수하는 장비이다.

소방 노즐 끝단에는 스테인레스 강철 소재로 제작된 '파괴기'가 달리는데, 최대 4㎜의 철판과 16㎝의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파괴기를 이용해서 건물 외벽이나 천장을 뚫은 뒤, 소방 노즐을 내부에 진입시켜 물이나 소화약제를 뿌려 화재를 진압하는 식이다.

조종기를 이용해서 원격으로 최대 80m 거리에서도 차량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소방대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장에도 근접 배치해서 불을 끌 수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에 불이 나면 물을 지속적으로 주입해야 하는데, 무인파괴방수차가 차량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물을 분사해서 화재를 초기 진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올해 1월1일 기준 전국에 보유 중인 무인파괴방수차는 총 31대로, 1대당 도입 예산은 약 13억원이다.

질식소화덮개와 이동식 조립수조, 방사장치 등 전기차에서 난 불을 끄기 위한 소방장비들도 확충할 예정이다.

'질식소화덮개'는 불에 타는 차량에 불연성(불에 타지 않는) 재질의 천을 덮어 산소 공급을 차단하고 연기 발생을 억제하는 장비로 현재 722개를 보유 중이다.

'이동식 소화수조'는 불이 난 차량 주변에 소화수조를 설치해서 물을 채운 뒤 열폭주 상태의 배터리를 냉각시켜 화재를 진압하는 장비이며, '방사장치'는 전기차에 불이 났을 때 차량 하부에 소화 용수를 뿌려 불 확산을 늦추는 보조 장치 역할을 한다. 소화수조와 방사장치 각각 202개, 1505개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인천, 세종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아파트 단지 내 질식소화 덮개를 비롯한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 보급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서산=뉴시스] 김덕진 기자=지난 16일 서산소방서가 늘고 있는 전기자동차 화재의 신속 대응을 위해 소방서 앞 마당에서 워터포켓을 활용한 훈련 및 시연회를 갖고 있다. 이날 소방서는 전기차 화재 특성에 맞춰 하부주수관창(차 바닥 배터리에 직접 물을 분사하는 장치)과 질식소화포를 활용한 1차 화재진압을 선보인 후 워터포켓을 활용해 열폭주 상태의 배터리를 냉각시키는 2차 화재진압훈련을 펼쳤다. (사진=서산소방서 제공) 2024.06.18.

[서산=뉴시스] 김덕진 기자=지난 16일 서산소방서가 늘고 있는 전기자동차 화재의 신속 대응을 위해 소방서 앞 마당에서 워터포켓을 활용한 훈련 및 시연회를 갖고 있다. 이날 소방서는 전기차 화재 특성에 맞춰 하부주수관창(차 바닥 배터리에 직접 물을 분사하는 장치)과 질식소화포를 활용한 1차 화재진압을 선보인 후 워터포켓을 활용해 열폭주 상태의 배터리를 냉각시키는 2차 화재진압훈련을 펼쳤다. (사진=서산소방서 제공) 2024.06.18.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기차 화재 대응책으로 각종 특수 장비들을 확대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장비들이 실제 전기차 화재 현장에서는 크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인파괴방수차의 경우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장에 기계가 대신 벽을 뚫고 물을 주수해 불을 끌 수 있지만, 이런 장비의 사용법을 소방대원들이 제대로 익히려면 적잖은 자원과 시간이 투입된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같이 열폭주 현상을 일으키며 삽시간에 불이 번질 수 있는 화재는 '빠른 초기 진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완전히 숙련된 상태가 아니고서는 소방대원이 원격 조종으로 화점을 정확하고도 빠르게 찾아내 불을 끄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필요할 것 같아' 의욕적으로 도입을 늘렸다가, 실제로 현장에서는 효율이 떨어져 창고에 방치된 장비들이 넘쳐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형 사다리차'다. 대형 사다리차는 당초 고층 건축물 화재 진압에 필요다하고 판단해 정부가 도입했지만, 일정 층수 이상에서 발생한 화재에는 쓰일 수 없고 장비의 부피와 크기도 커서 비좁은 골목에 자리를 잡는 데만 시간을 허비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샀다가 쓰지 않는 소화장비들이 지금도 숱하게 많다"며 "내구연한이 지나면 새로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어 장비 도움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세종] 전기차 화재 대응 훈련 모습.2024.08.22.(사진=조치원소방서) *재판매 및 DB 금지

[뉴시스=세종] 전기차 화재 대응 훈련 모습.2024.08.22.(사진=조치원소방서)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지자체에서 질식소화덮개와 이동식 소화수조, 금속화재 소화기 등을 전기차 주차장마다 비치하는 것도 '무용지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들 장비는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에 사용하는 장비인데, 일반 시민이 전문 장비로 직접 전기차에 난 불을 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자칫 인명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방대원들이 사용할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주차장에 비치할 필요가 크지 않다.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대가 출동하면서 화재 진압에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오면 되기 때문이다. 소방대원들이 사용하는 전문 장비를 굳이 주차장마다 비치하는 것이 자원 낭비로 여겨질 수 있는 셈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질식소화포는 전기차 아주 가까이에서 덮어야 되는데, 온도가 1000도까지 올라가는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사용했다가는 오히려 대피의 골든 타임을 놓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별한 설비를 도입하기보다, 스프링클러와 같이 기존에 설치된 소화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관리 점검을 철저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교수는 "당연히 작동돼야 하는 스프링클러들이 잘 작동되고 관리되게끔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며 "여기에 더해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빠른 대피와 신고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무인파괴방수차 운용자를 위한 특별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도입된 지 14년이 지난 만큼 충분한 교육 노하우와 훈련법 등이 축적됐다는 입장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차량이 도입되면 운용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또 완전 신기술에 해당하는 장비는 아니기 때문에, 교육할 수 있는 노하우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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