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단한다' 포고령에 더 꼬인 의정갈등…정치투쟁화 조짐
비상계엄 해제됐지만 의료계 충격파로 '술렁'
의대교수·의사회 등 "계엄령 규탄 하야 촉구"
비상계엄령 사태 의정갈등 국면 영향 미칠듯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한 4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2024.12.04. [email protected]
4일 의료계에 따르면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는 최근의 여·의·정 협의체 가동 중단, 여야의 경북 지역 국립의대 신설 지지 표명 등과 맞물려 의대 증원을 두고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 국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윤 대통령이 전시·사변·국가비상사태·공공 안녕질서 유지 등 법적 요건을 하나도 충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상계엄 선포를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의대교수는 "국회에서 감사원장, 검사 등을 대상으로 탄핵소추안 의결을 시도하고 야당이 단독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삭감했다는 것이 사유인데,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앞서 여의정 협의체가 사실상 출범 3주 만에 좌초된 상황에서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의료계가 들끓는 기폭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협의체는 지난달 11일 전공의, 의대생,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이 빠진 채 반쪽 출범한 이후 내년도 의대 정원을 둘러싼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고 의정 갈등만 심화된 상태다.
내년도 의대 정원 조정을 요구해온 대한의학회와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지난 1일 협의체 4차 회의 참여 직후 정부·여당이 사태 해결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며 여·의·정 협의체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의료계 내부의 비난을 감수하고 유일한 의정 대화 창구였던 협의체에 세 차례나 참여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야의 경북 국립의대 신설 지지도 의정 갈등 심화의 주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의대를 신설하겠다는 것은 의료계에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내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는 지난 1일 경북 안동에서 이철우 경북지사와 가진 면담에서 "공공의료 측면에서 의료사각지대의 현실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경북과 전남 등 지역 의대 신설을 잘 챙겨보겠다"고 밝혔다. 앞서 협의체 참여를 촉구한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는 지난달 26일 국회 토론회에서 "경북 국립의대 신설을 반드시 해내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계기로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면서 의료계의 투쟁이 "독재타도와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계엄사령부(계엄사)가 전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밝힌 포고령(제1호)에는 사직 전공의 등 의료인의 복귀를 명령하는 항목이 포함됐다. 포고령에는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이진우(오른쪽) 대한의학회장과 이종태 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4차 전체회의가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12.01. [email protected]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윤석열은 국민에 대한 탄압을 당장 멈추고 하야하라"고 밝혔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지난 10개월 동안 의대 교수들은 허상에 불과한 의료 개혁을 고수하며 혈세를 낭비하면서도 국민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렸다"면서 "급기야 어제는 자유 대한민국을 전체주의, 독재시대로 회귀시키는 불법적 비상계엄 조치를 자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과 계엄사령관은 포고문에서 사직 전공의들이 아직도 파업 중인 것이라는 착각 속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처단하겠다는 전시 상황에서도 언급할 수 없는 망발을 내뱉으며 의료계를 반국가 세력으로 호도했다"면서 "윤석열 정권이 반국가 세력임을, 반헌법적, 반역자 세력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대교수들은 반국가 세력, 반역 세력인 윤석열과 그 정부, 그 호위 세력들에게 당당히 맞설 것임을 천명한다"면서 "윤석열과 대통령실 참모진, 교육부와 복지부 관련자들은 당장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전북특별자치도의사회도 긴급 성명서를 내고 "윤 대통령의 헌정 파괴적이고 반민주적인 비상계엄 선포 행위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파업 중인 의료인에 대한 근무 명령과 관련해 현재 파업 중인 사직 전공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서 언급된 '위반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에 분노하며, 윤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을 해제했더라도, 전공의를 처단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한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대통령은 의료 현장의 혼란을 야기한 책임을 인정하고, 대통령직을 사퇴하기 전에 의대 증원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며, 2025년도 의대 입시를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의협 차기 회장 후보들도 일제히 내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 중단 등 의료 사태 정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의협 전 회장)는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부로 레임덕은 데드덕이 됐다"고 비판했다. 레임덕은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데드덕은 사실상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주 대표는 또 "의료농단의 유일한 해법은 2025년 의대 신입생 모집 중단"이라고 촉구했다.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전국시도의사회장협의회장)은 입장문을 내고 "국민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헌정질서 파괴에 나선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 "비상계엄령 선포에 직접 관여한 책임자를 밝히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포고령에 전공의 사직 사태를 유발한 정부가 정작 전공의를 헌법을 위협하는 척결 대상으로 선정하고 처단한다고 적시했다"면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정부가 책임을 전공의에게 전가하는 후안무치를 지속하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의료농단을 중단하고 의료 정상화에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희경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어불성설의 계엄 선포로 의사들은 소위 의료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10개월째 당하고 있다"면서 "근거도, 국민적 합의도 없이 강행하는 의료개혁을 당장 멈추고 새출발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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