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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탈을 쓴 선동 ‘비선실세 순실이’

등록 2017.03.28 08: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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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20일 오후 서울 대학로 가든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비선실세 순실이' 제작발표회에서 최순실역의 박혜준(왼쪽)과 저승사자역에 신상용이 시연하고 있다. 2017.03.20.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을 무대로 옮겨 역사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연극이 ‘비선실세 순실이’다.

 전화벨 소리와 함께 막이 오른다. “각하” “임자, 한밤중에 무슨 일이야” “각하, 최태민이 온갖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영애양과 떼어놓지 않으면” “최태민이? 그럴 리가 없을텐데.” 잠시 후 총성 세 발이 울린다.

 ‘비밀의 방’ ‘최순실의 집’ ‘꿈속의 무대’ 순으로 전개된다. 무대·배우·관객, 연극의 3요소를 들먹이는 것은 그러나 무의미하다. 직설적이다 못해 노골적인 대사로 추락한 권력을 시종일관 부관참시한다.

 권력의 무능, 허세, 이중성을 풍자하는 탈놀이 마당극과 어떻게든 교집합을 찾으려다가 포기했다. 고함과 부추김 앞에 해학은 설 자리를 잃은 사치가 돼버렸다. ‘박근혜’ ‘최순실’ ‘고영태’ ‘장시호’ ‘정유라’ ‘안종범’ 등이 실명으로 난무한다.

 “풋, 차병원이 역시” “내도 그 백옥주사 함 놓자” “전화 한통으로 앉은 자리서 12억5000을 쳐묵나. 참말로 (황제 계모임) 악덕계주대이” “제가 아는 CF 영상감독이 한 사람 있는데 추천해도 될까요, 차은택이라고” “자기, 내일부터 의상도 제작해. 항상 현찰로 결제해줄게” “지가 아직도 공주인줄 알아. 바빠 죽겠는데 (청와대) 언니는 날 너무 귀찮게 해. 내가 없으면 일을 못해요” “내가 조만간에 (청와대) 할매하고 같이 식사자리 한 번 마련해 볼게” “엄마, 나 진짜 이대 갈 수 있어? 개좋아, 정유라가 이대 갑니다” “니 언니 (장)시호도 말 안 탔으면 대학도 못 나왔어. 고등학교 때 공부 꼴찌였는데 어떻게 연대 들어갔겠니” “너 대학 보내려고 승마협회 로비에 심판 매수해야지, 대학교 총장 구워삶아야지, 또 입학처장 로비해야지, 승마기록 조작해야지” “제1은 파란 집에 있고, 그 위에 최고는 이 최순실” “좋았어, 재단에서 5000억. 해운대에서 1조원 합해서 최소한 1조5000억은 메이드되는 사업이네” “그 돈이 내 돈이구. 할매가 파란 집에 앉아 있는 동안 이 나라를 송두리째 내 손안에 넣어버릴거야” “야! 너(장시호) 그게 얼마짜리 사업인줄 알아? 전 세계 태권도 인구가 1억이야. 그럼 (태권도복) 한벌당 8만원이면 얼만지 알아?” “선수들이 묵을 선수촌 아파트랑 편의시설들은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민간에 다시 되팔아서 이중으로 돈을 챙길 수 있거든”….

 이래도 성에 안 찼나 보다. 사적복수 또는 자력구제를 정당화한다. 단, 여기서부터는 상상 신이라는 점이 묘라면 묘다. 저승사자가 최순실류를 상대로 잔혹한 복수혈전을 벌인다. 최순득을 권총으로 사살하고, 최순실에게는 목줄을 건다.

 끌고 다니며 학대한다. “어이구 가만 보니까 너는 개로구나. 응 암캐야. 그것도 발정난 암캐. 오뉴월 개 패듯 패서 죽여야 그나마 분이 조금이라도 풀리겠다. 죽기 전에 마음껏 짖어라 암캐야.” 입도 찢는다. 찢긴 입으로 최순실이 울부짖는다. “난 형을 살아도 7년6개월인데, 앞으로 살아도 30년은 더 살 수 있는데 이렇게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어. 나 죽기 싫어요. 이 돈 한푼 써보지 못하고 죽기 싫어요. 한 달만 더 살게 해줘요.”

 저승사자는 무자비하다. 직권 남용죄, 강요죄, 강요미수죄, 사기미수죄, 증거인멸죄, 교사죄, 국민을 모독한 죄를 들먹이며 망나니 칼로 최순실을 죽인다.

 ‘촛불’을 든 배우 둘은 관객을 일으켜세운 뒤 따라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대통령은 사퇴하라”고. 마침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쳤다. 오늘부터 관객은 “박근혜를 구속하라”고 복창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제작자 강철웅(예술집단 참)은 “최순실이 아닌 박근혜 유린극”이라고 당당히 밝힌다. 차기작으로 ‘아! 김재규’를 공연하련다는 연출자이므로 놀랄 일도 아니다.

 ‘비선실세 순실이’는 이렇게 연극의 상식을 무시했다. 기존의 관극법으로 마주하기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마녀사냥을 하느라 숲을 보지 않았다. 점만 찍어댔다. 선과 면으로 이어지지 못한 나무들이다.

 균형도 외면했다. 저승사자가 고영태에게 하는 말에서 극은 정체를 드러낸다. “자네는 말이야, 앞으로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어 이름 석 자를 남기거라.”

 출연 박혜준·황준·이슬비·김서해·유성현·이진설·안지완·신상용·박황춘·김주황·천혜진·박덕준·이지희, 90분, 8세이상 관람가, 예술감독 박정곤, 서울 대학로 가든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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