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대통령실 파고든 美도·감청 정황…美기밀문건 파장 일파만파(종합2보)
김성한 前안보실장-이문희 前외교비서관 대화
우크라 살상 무기 지원 美 압박에 고심 역력
이스라엘·영·중 등도 '시긴트'…"파이브아이즈의 악몽"
[프놈펜=뉴시스] 지난해 11월13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문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기밀 문서다. '1급 기밀' 문서도 포함돼 있으며 문서 다수는 미국 정보기관끼리만 공유(Secret/NoForn)하라고 적시하고 있다. 2월 말~3월 초 유출됐고 최근 사진 문서 형태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유출된 문건의 전체 범위는 불분명하지만 확인된 것만 100여 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자체 확인한 50여 쪽의 문서엔 국가안전보장국(NSA),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국가정찰국(NRO) 등 거의 모든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 활동이 담겼다고 밝혔다.
NYT는 지난 6일 펜타곤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한 데 이어 추가 내용을 후속 보도하고 있다.
'70년 동맹'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 정황
NYT는 "이 기밀 문건은 미국이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를 염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신호 정보(signals intelligence·시긴트)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유출된 문서들은 미국이 이미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비밀 유지 능력에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긴트는 전자장비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의미한다. 미 정부기관이 정보를 불법 도·감청했음을 시사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 전 비서관은 김 전 실장에게 "한국이 미국의 탄약 (지원) 요청에 응했을 때 미국이 최종 사용자(end user)가 되지 않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 원수들 간에 통화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 "(전쟁 국가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정책을 위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정책을 바꾸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건의했다.
이 전 실장은 또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이 3월2일까지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을 약속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이 시점이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한국) 국민들은 이 두 가지(국빈 방문과 포탄 지원)가 거래로 이뤄졌다고 생각할 것"을 우려했다. 윤 대통령의 이달 26일 미국 방문 일정은 지난 7일 발표됐다.
김 전 실장은 대신 "미국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빨리 공급하는 것"이라며 폴란드에 155㎜ 포탄 33만 발을 수출할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문건엔 나와 있다. 폴란드를 통한 '우회 제공'을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 전 비서관은 폴란드가 '최종 사용자'로 불리는 것에 동의하고 우크라이나로 탄약을 보내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폴란드가 무엇을 할 것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NYT는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 "한국은 외국에 판매한 무기나 무기 부품을 한국의 승인 없이 제3국에 재판매하거나 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NYT는 이 문건 내용에 대해 "지난해 말 한국이 미국의 (탄약) 비축량을 보충하는 것을 돕기 위해 포탄을 판매하기로 동의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한국은 최종 사용자가 미군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내부적으론 윤 대통령의 최고 보좌관들이 그것(탄약)이 우크라이나로 가게 될 것을 우려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관련된 문서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지원해 달라는 미국의 압력과 전쟁 국가에 살상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공식적인 정책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은 러시아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미국과 협력할 것이란 입장이었다"면서 "유출된 문서들은 한국을 더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이 한국 외교안보 수뇌부를 염탐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국민들에겐 나쁜 소식"이라며 "사람들은 '70년 간 동맹을 유지했는데 아직도 우리를 염탐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파이브 아이즈의 악몽'…이스라엘·영국 등 동맹국도 '시긴트' 수집
3월1일자 문서에선 이스라엘 첩보 기관 '모사드'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이른바 '사법개혁안' 반대 시위를 지지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역시 '시긴트'를 통해 수집한 정보다.
모사드 지도부는 "모사드 직원들과 이스라엘 시민들이 정부에 몇 가지 명시적인 요구를 포함, 사법개혁에 항의하는 것을 옹호했다"고 나와 있다.
극우 성향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2월 재집권한 뒤 사법부를 무력화하는 "사법 정비"를 추진했다. 그는 사기와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돼 있다. 야권과 시민들은 '정치적 쿠데타'라고 항의하며 3개월째 시위와 파업을 이어갔다. 일부 관료와 군인들까지 가세했고 최대 동맹 바이든 대통령도 우려를 표했다. 강경 대처하던 네타냐후 총리는 결국 입법 절차를 연기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출된 문서와 관련 8일 이를 부인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에서 "모사드와 그 고위 관리들은 직원들에게 정부와 정치적 시위, 어떤 정치적 활동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도록 독려하지 않았고, 시위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모사드는 건국 이래 국가에 봉사하는데 전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NYT는 모사드의 일부 직원들은 개인 시민으로서 시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하고 승인을 받았다고 전했다. 5명의 전직 수장을 포함한 직원 수백명은 사법개혁안에 반대하는 성명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정치 평론가들은 미국의 정보 평가가 '격려'와 '허용' 개념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의 아들 야이르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미 국무부 내부의 적대적인 요소가 이번 시위의 배후에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미 국무부는 개입을 부인하고 있다.
이 외에도 중국과 중동 등에 대한 민감한 정보도 함께 유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이 문서엔 한국과 이스라엘, 영국 등 동맹국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내부 문제에 대한 정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문건) 유출은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100여개에 달하는 이번 문건 유출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한 고위 정보 당국자는 미국 주도로 결성된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악몽"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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