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IT] N번방 방지법 있어도 텔레그램 못 잡는 이유
n번방 사건 당시 '사적 대화방' 이유로 제재 대상 제외
방통위 "그룹 채팅·채널은 삭제 의무 부과 검토 중"
법 적용되도 텔레그램 국내 대리인 지정 안 해 처벌 어려워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앞에서 열린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의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여성 시민·대학생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08.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2021년 12월 10월. 국내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 유통을 막기 위한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됐습니다.
지난 2020년 'n번방'의 주범 중 한 명인 '박사' 조주빈 등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어 텔레그램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유하고 판매하면서 검거된 지 약 두 달 만에 이 법안은 입법 최종 문턱을 넘었습니다.
N번방 방지법은 국내 연 매출 10억원 이상, 일 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인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불법 촬영물을 관리·감독하고 조치할 책임을 부여하는 게 골자입니다.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국내 포털뿐 아니라 구글·메타·X 등 해외 인터넷 사업자도 법 적용을 받습니다. 뽐뿌·보배드림·디시인사이드 등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도 포함됐습니다.
이 법안의 제22조 5항은 '자신이 운영·관리하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불법 성적 촬영물 등이 유통되는 사정을 신고·삭제 요청 등을 통해 인식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해당 정보의 삭제·접속차단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 이용자 신고·삭제 요청 기능 마련 ▲ 불법촬영물 검색결과 송출제한 ▲ 기술 사용한 식별 및 게재 제한 ▲ 불법 촬영물 등 게재 시 삭제 조처할 수 있고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사전 안내 실시 ▲ 로그 기록 보관 등의 기술적·관리적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이에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잇달아 관련 조치들을 곧바로 이행했지만 정작 문제의 발단이 된 텔레그램은 제외돼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텔레그램은 폐쇄적인 개인간 사적대화방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N번방 방지법이 삭제 의무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일반에게 공개적으로 유통되는 정보'가 아니라는 것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판단이었습니다.
결국 법 시행 후 약 3년이 지난 현재에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음란물이 유통되는 경로로 전락했습니다.
최근 한 대학에서 여학생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물이 유포된 데 이어 비슷한 종류의 텔레그램 대화방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성인 여성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들이 범죄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인천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는데, 이 일당은 딥페이크를 통해 성인 여자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불법으로 합성한 뒤 참가자 1200명이 있는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공유한 혐의를 받습니다.
하지만 텔레그램 수사 진척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수사 협조에도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2일 경찰은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 딥페이크 성범죄 방조 혐의를 적용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는데, 텔레그램이 계정정보 등 수사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딥페이크 음란물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행정기관인 방통위는 최근 텔레그램이 운영하고 있는 공개 그룹과 채널이 n번방 방지법 제재 대상인 '일반에게 공개적으로 유통되는 정보'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법률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텔레그램의 공개 채널이 n번방 방지법 적용 대상이 되더라도, 국내에 법인이나 대리인을 두지 않아 이 법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개인정보 침해사고 등 국민 권리 보호를 위해 정보통신망법을 개정, 지난 2018년부터 국내 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했습니다. 국내 대리인 제도는 국내에 본사가 없는 글로벌 사업자 본사를 대리해 소비자 피해나 불만, 법적 문제 등에 대응하는 존재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전년도 전체 매출(국내외) 1조원 이상 ▲정보통신서비스 전년 매출 100억 원 이상 ▲전년말 기준 직전 3개월 간 개인정보 저장·관리 이용자수 일평균 100만명 이상 ▲개인정보 침해사건 발생 혹은 발생 가능성이 있어 방통위가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경우 등 한 가지라도 해당하면 대상기업이 됩니다.
이에 구글, 메타, 아마존, 애플 등 해외 기업들은 한국 법인을 국내 대리인으로 지정했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아직까지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등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MAU(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는 지난 6월 기준 315만명에 달해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화 대상기업 기준인 이용자수 일평균 100만명에 해당될 것으로 추정되지만, 파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심지어 서버가 있는 본사 위치나 연락처도 파악할 수 없습니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개발자가 2013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사 등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방통위는 "이용자 수나 매출액을 고려해 기준에 해당되는지 판단해야 하는데 해외 기업이 자발적으로 주지 않으면 파악할 길이 없고 본사 소재지 조차 파악이 안 된다"라며 곤욕스러워 합니다. 방통위는 2024년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 대리인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내 법인 우선지정 등 대리인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대리인의 역할을 확대한다는 방침입니다.
텔레그램과 함께 음란물 불법 유통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다크웹'도 성착취물 유통을 제재할 법안이 마땅치 않습니다. 반면 이용자는 지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대표적인 다크웹 접속 프로그램인 토르의 하루 평균 국내 이용자 수는 4만3757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처럼 '무법천지'인 텔레그램, 다크웹 내 성착취물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정부와 국제적인 기업 공조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브라질 내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들은 통신 규제 기관 '아나텔' 지시에 따라 엑스에 대한 사용자 접근 차단을 시작했습니다. 만약 VPN(가상사설망) 등 우회경로를 통해 X에 접속하는 브라질 개인이나 기업은 하루 5만 헤알(약 1192만원)을 벌금으로 물어야 합니다.
지난달 2일에는 아동 개인정보 불법 수집과 부모 동의 없는 13세 미만 이용자의 계정 개설을 허용한 혐의로 미 법무부가 틱톡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부 개입이 플랫폼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또 자칫 규제를 강화할 경우 결국 텔레그램을 잡는 데 실패해 다른 국내외 사업자들에게만 규제가 강화되는 역차별 우려도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딥페이크나 성착취물, 마약 범죄에 대해서 만큼은 규제와 수사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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