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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모자라 '발 동동'…서울 달동네 백사마을의 겨울[현장]

등록 2024.12.25 06:00:00수정 2024.12.25 09: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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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앞두고 대부분 공가…남은 주민 혹한기에 분투

연탄 모자라 아껴 때워…지자체 연탄쿠폰 지원도 끊겨

중계본동 가구 8할 이상은 연탄 수급 민간지원에 의존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의 한 가구 앞에 쌓여있는 연탄. 2024.12.24. create@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의 한 가구 앞에 쌓여있는 연탄. 2024.12.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24일 오후 찾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버스 정류장 종점에서 내려 대단지 고층 아파트를 뒤로 하고 15분 정도 비탈길을 오르자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인적이 사라진 산기슭 마을에는 폐허가 된 집들이 가까스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문마다 노란색 '공가(空家)' 안내문이 붙어 외부인을 경계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빈 집과 비닐하우스는 여기저기 힘없이 무너져 내린 채 남아있었다.

허물어진 집들 사이 가지런히 쌓인 흰 연탄재만이 아직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대변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도시가스와 지역난방은 언덕 아래 아파트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얗게 다 타버린 연탄 사이 손바닥만 한 핫팩이 버려진 대문을 두드리자 한 60대 남성이 나왔다. 박모(69)씨 어깨너머로 두 평 남짓한 공간을 모두 차지한 낡은 요꼬(니트 편직) 기계와 선풍기형 전열 기구가 보였다.

박씨는 직물제품 수출이 한창이던 1980년대 전후 니트 편직 기계를 들여와 이곳에서 가내공업을 시작했다. 거주지가 아닌 공장으로 등록된 탓에 박씨는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연탄 쿠폰'도 받지 못하고 지내왔다.

박씨는 "여유 있는 사람이나 보일러로 바꾸지, 예전에 연탄은행에서 받은 400장으로 아직까지 (난방을) 때고 있다"며 "겨울을 나려면 1000장은 있어야 한다. 연탄을 아끼려고 임시로 히터를 해놨지만 하나도 따뜻하지 않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24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초입. 2024.12.24. create@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24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초입. 2024.12.24. [email protected]



박씨에게 겨울철 날짜를 세는 단위는 '장(張)'이다. 장당 900원짜리 연탄을 몇 장이나 땠느냐로 하루하루를 기억하는 셈이다.

영하권 추위에 연탄 '9장'을 땐 날은 9장으로 남는다. '9장'으로 기억된 날들이 길어질수록, 고스란히 난방비로 되돌아온다.

아껴둔 연탄을 가리키던 그는 "초겨울 이상기후로 니트도 많이 못 팔았는데 한 달에 난방비와 공장세로만 40~50만원을 앉아서 까먹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967년 용산과 청계천, 영등포, 안암동 일대 판자촌에 살던 도시 빈민들은 개발을 이유로 강제로 이곳에 이주됐다. 그렇게 시작된 백사마을은 내년 재개발과 재건축을 앞두고 주민 대다수가 떠나 소멸 직전에 놓여있다. 남아있는 가구는 30~40여 곳에 불과하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재개발로) 이주가 올해 말까지 다 완료가 돼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남아있는 거주자에게) 실질적으로 연탄쿠폰이 지급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에서 받은 '연탄 사용가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노원구 중계본동 가구 106가구 가운데 연탄을 사용하지만 연탄쿠폰 대신 민간지원에 의존하는 가구는 80%가 넘는 86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씨는 "저 위 교회에서 후원으로 조금씩 (연탄을) 나눠주는데 우리는 아직 조금 남아서 급한 사람들부터 주라고 했다. 급한 사람부터 때야지 내 욕심만 채우고 받을 순 없지 않겠느냐"며 웃어 보이고는 서둘러 전열기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가 지평선을 향해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박씨 가구에서만 인기척이 느껴질 뿐이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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