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약이 '면접특효약'으로 둔갑…취준생들 "절박해서"
고혈압치료제, 신경안정제 등 흔히 찾아
면접 특효약으로 입소문…자칫 부작용도
“한 번의 기회, 긴장하다 놓칠 수 없어"
뉴시스 취재 병원 12곳 다 '면접용' 처방
【서울=뉴시스】천민아 기자 = 고혈압치료제로 쓰이는 인데놀정. 최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면접특효약으로 유행하고 있다. 2018.07.06. (제공=약학정보원)
요즘 청년들은 면접 한 번에 울고 웃는다.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만큼 면접까지 가면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면접장에서 더 긴장하고 조마조마해져 망칠 위험도 크다.
이 때문에 취준생들 사이에서 혈압조절제, 신경안정제와 같은 전문의약품이 유행하고 있다. 예전부터 많이 복용되던 청심환과 달리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야 하지만 ‘대신 효과는 확실하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잘못 사용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음에도 절박한 취준생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데놀이다. 인데놀은 원래 고혈압이나 부정맥 등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쓰는 혈압 조절제다. 심장박동을 가라앉혀 차분하게 하는 효능이 면접 시 떨림을 줄여준다고 정평이 나 있다.
원래 무용 등 실무 입시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의약품이었는데 취업난이 심화하다 보니 이제 일반 취준생 사이에서도 알려졌다.
우울증, 공황장애 치료제로 쓰이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서울 마포구 소재 A내과의 한 의사는 “요즘에 학생들이 면접용으로 많이 처방받는다“며 “인데놀이나 신경안정제 알프람 등을 처방해 달라고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본래 용도와 달리 처방 받은 이런 전문의약품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데놀과 같은 고혈압치료제는 혈압을 떨어뜨려 마비증상이나 저혈압, 실신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신경안정제 역시 이명현상, 구토, 저혈압을 일으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약 복용시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서울대 안용민 신경정신과 교수는 “약을 복용하는 게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장기간 복용할 경우 의존성이 생기거나 혈압에 이상이 생기는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과 대신 내과로 가고,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처방전을 받으라는 ‘꼼수’가 암암리에 공유되기도 한다. 정신과 진료나 건강보험 기록이 남으면 취업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뉴시스가 직접 취재해 본 결과, 관련 질환이 없어도 해당 약품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기자가 “면접을 보려고 하는데 인데놀 처방받을 수 있느냐“고 서울 시내 대학 인근 내과 12곳에 무작위로 전화해 문의했더니 모두 처방이 가능했다.
취업을 위해 약까지 찾는 취준생들의 모습은 당면한 위기감과 미래의 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층의 절박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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