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지원금 빌미로 무리한 요구"…삼성·SK, 美 반도체지원법 '딜레마'

등록 2023.03.02 11:09:06수정 2023.03.02 11:21:46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워싱턴=AP/뉴시스]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2021.04.13.

[워싱턴=AP/뉴시스]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2021.04.13.


[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미국 정부가 최근 공개한 반도체지원법 세부 지원안을 놓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 정부에 기업 재정 여력과 현금 흐름 등 내부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공개하지 않는 예민한 정보를 미국 정부에 제공하는 것이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반도체지원법상 인센티브 프로그램 중 반도체 제조시설에 대한 재정 지원 세부 지원안을 공고했다.

지난해 8월 발효된 미 반도체지원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 인센티브를 포함한 527억 달러(약 69조원)의 재정지원과 투자세액공제 25%를 담은 법안이다. 이에 따르면 시설 투자 인센티브 중 제조시설 지원 대상은 미국에서 최첨단·현세대·성숙노드 반도체의 전체 공정이나, 패키징 등 후공정 제조시설의 건축·확장·현대화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이다.

문제는 미 정부가 투자를 원하는 기업에게 예상 현금 흐름, 수익률, 고용 계획, 미래 투자 계획 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국가안보 차원에서 미국 내 상업생산시설에서 제조된 안전한 최첨단 로직 반도체에 대한 접근권도 갖게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인텔, 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들과 경쟁 중인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공개하지 않는 민감한 정보를 미국 정부에 넘길 경우 자칫 우려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는 공정 정보가 핵심"이라며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한 상황에서 인텔, 마이크론 등에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미국이 원하는 내부 정보가 어느 선까지인지 아직 정확하지 않지만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요구할 수 있어 부담스럽다"며 "단순히 미국 정부 내에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업체들을 키우는 데 활용될 수도 있어 그 부분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초과 이익 공유도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미 상무부는 1억5000만 달러(약 1962억원) 이상을 지원받는 기업은 예상했던 사업 이익을 초과할 경우 미국 정부와 초과분 일부를 공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초과 수익을 어떤 기준으로 산정할 지 미정이지만 그 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면 황당하다"며 "자유시장 경제 개념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 등 우려 국가에 10년간 투자를 금지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감안하면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50%를 중국에서 만든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정부와 가드레일 세부규정과 관련해 한국 기업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 중인데 경우에 따라 미 보조금 없이 사업을 하거나 중국 공장 철수 같은 극단적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국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SNS를 통해 "미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을 받으려면 재무 상태와 실적 전망치, 영업 기밀인 생산장비 및 원료명 등을 내야 하는 것은 물론 군사용 반도체 제공 협력, 보육 서비스 제공, 인력개발, 지역사회 공헌 등도 필수 조건으로 담았다"며 "이건 보조금 지원정책이 아니라 족쇄 수준의 규제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이어 "초과이익을 공유하라는 것은 법인세 외에 준조세까지 내는 이중과세에 해당하고, 기업의 회계장부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도 지나친 경영 간섭이 될 수 있다"며 "첨단기술을 두고 경쟁하는 반도체 기업에 핵심 영업기밀, 보안시설의 문을 열어달라는 것도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