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재야에 은둔한 ‘한국영화사’의 고수
[서울=뉴시스] 한국영화사 (사진=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 제공) 2023.03.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작년 이맘때였다. 원로 영화평론가인 김종원 선생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1964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영화사’ 저서를 출간한 영화사 연구자 노만(魯晩) 선생을 실로 40여년만에 다시 만났다는 것이다. 김종원 선생은 본인보다 연장자인 노만 선생이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면서, 구순의 나이에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신 노만 선생의 근황을 전했다.
한국영화사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노만이라는 이름은 영화사가의 한 사람으로 익숙하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 어느 문헌에서도 그 이름을 볼 수 없었기에 마치 역사 속 인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원 선생과 노만 선생의 상봉은 비현실적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김종원 선생과 노만 선생은 1960년 창립된 영화비평가협회의 발기인이다. 5·16 이후 모든 단체들이 해산됐고 1965년 영화평론가협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조직되는데, 그때도 두 분은 함께 했다. 뿐만 아니라 김종원 선생은 총무를, 노만 선생은 기획을 맡아 당시 대표였던 이영일 선생과 함께 협회를 이끌었다.
1970년대 후반 노만 선생은 돌연 활동을 멈추고 영화계에서 종적을 감췄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 사이에서 그 이름은 잊혀졌다. 노만 선생이 쓴 ‘한국영화사’ 역시 영화사 연구의 중요 선행연구물로 언급은 되지만, 실제 그 원본은 찾아보기 힘든 환상의 책으로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영화잡지 ‘국제영화’에 1962년 5월호부터 10여회 동안 연재한 글 ‘한국영화사’를 중심으로 ‘사상계’ 1962년 5월호에 실린 ‘저항 속에 싹터온 한국영화’를 추가해 1964년 발간한, 일종의 교재였다.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간한 것이 아닌 충무로에 있던 한국영화배우학교에서 철필로 쓴 글을 등사로 인쇄해 제본했다. 그런 까닭에 도서관 같은 곳에 보관돼 있지 않은, 남아 있는 수량이 거의 없는 책이다.
이 책이 발간된 것은 한국영화산업의 팽창과도 맞물려 있다. 1960년대 한국영화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영화산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커졌고, 통신학원 형태의 배우 학원들이 여럿 만들어졌다. 이들 학원은 전국의 배우 지망생들에게 영화배우가 지녀야 할 영화지식을 담은 책을 만들어 우송했으며, 지망생들은 그 책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했다. 궁금한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학원을 방문해 질문하거나, 전화나 우편을 통해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 학생들이 받아보던 교재 중 하나가 바로 노만의 ‘한국영화사’였다. 그러기에 최초의 한국영화사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발간 당시 원본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귀한 책이 됐다.
노만 선생과 김종원 선생은 40여년만의 상봉 이후 월 1회의 정기모임을 만들어 지금도 꾸준히 만나고 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성사됐다. 우선 지난해 한국영상자료원이 노만 선생의 구술사를 채록해 기록으로 남겼다. 또 김종원 선생께서 애장하고 있던 ‘한국영화사’ 책을 바탕으로, 올 2월 ‘한국영화사’가 정식 출간됐다. 원본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오래전 제본한 책만 영화사 연구자들 사이에 알려졌을 뿐인 이 책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게 됐다. 참으로 다행이다.
얼마 전 내가 운영하고 있는 책방 3층을 김종원 선생님의 이름을 따 ‘김종원영화도서관’이라는 작은 도서관으로 등록했다. 이를 기념해 현재 2층 전시 공간에 ‘김종원영화도서관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종원 선생이 애장하던 자료들도 전시대 하나를 채우고 있다. 이 중 노만 선생의 ‘한국영화사’ 1964년판도 있다. 노만 선생의 책이 새롭게 출간된 시점에 그 초판이 함께 공개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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