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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육사,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

등록 2024.07.21 09: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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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육사,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사진=푸른역사 제공) 2024.07.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육사,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사진=푸른역사 제공) 2024.07.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조수원 기자 = 책 '이육사,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는 언론인으로서의 삶과 무장투쟁에 이르기까지 40년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이육사의 생애를 풀어냈다.

책에는 이육사가 '육사' 외의 필명으로도 활동했다는 사실도 다뤘다.

이육사는 시뿐만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시사평론에 힘을 기울여 장제스 정책 비판과 중국 농촌의 몰락, 국제무역주의 등 세계정세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비평을 남겼다. 이때 시사평론에서 '이활'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또한 이육사는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김원봉이 운영하는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에 입교해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을 맡고 있는 저자 김희곤은 "이육사의 삶을 소개한 많은 글은 행적에 대한 정확한 자료 없이 전해지는 이야기를 정리하는 수준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며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나 독립운동사라는 새로운 시각과 자료 조사 및 검증 과정을 통해 이육사의 삶에 접근했다"고 전한다.

"육사는 교장 김원봉과의 만남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원봉은 육사에게 "그대와 같은 수재를 조선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유감"이라고 하면서 러허(熱河) 방면에 가서 활동하든지 아니면 핑궈장(馮國章)의 군대에 입대하기를 권했다. 그렇지만 육사는 귀국 방침을 고집하였다. 이에 김원봉은 두 가지 사명을 그에게 주었다. 하나는 국내의 노동자ㆍ농민에 대해 혁명의식을 고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기생 모집 파견이었다."(192~193쪽)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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