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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합의금 필요해" 1000만원 안 갚은 50대 무죄…왜?[죄와벌]

등록 2024.01.2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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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법, 사기 혐의 50대 무죄 선고해

합의금 명목 돈 빌리고 갚지 않은 혐의

法 "빌린 이유 대로 돈 썼을 가능성 有"

"속이지 않아 사기 인과관계 성립 여러워"

[서울=뉴시스] 돈을 요구하는 상대방이 제시한 이유에 속지 않았다면 사기 혐의도 성립하지 않을까. 우리 법원은 기망 행위가 없을 경우 사기죄 혐의 구성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봤다.사진은 법원종합청사(사진=뉴시스DB)2024.01.28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돈을 요구하는 상대방이 제시한 이유에 속지 않았다면 사기 혐의도 성립하지 않을까. 우리 법원은 기망 행위가 없을 경우 사기죄 혐의 구성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봤다.사진은 법원종합청사(사진=뉴시스DB)2024.01.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한재혁 기자 = 돈을 요구하는 상대방이 제시한 이유에 속지 않았다면 사기 혐의도 성립하지 않을까. 우리 법원은 기망 행위가 없을 경우 사기죄 혐의 구성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봤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형사3단독 강진명 판사는 지난 10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월 한 조합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던 A씨는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공동시행사 운영자 B씨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A씨는 B씨에게 "추진위원회 조합원인 할머니가 손자를 키우는데 그 손자가 폭행을 해 합의금이 필요한데 돈을 빌려 달라"라며 1000만원을 요구했다.

A씨 부탁에 B씨는 단지 '합의금'이라는 용도만 거짓으로 지어냈을 뿐, 돈을 뜯어내기 위한 목적이라고 의심했다. A씨가 이 부탁을 하기 이전에도 다양한 이유로 돈을 받아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B씨는 다음 달인 11월 하순까지 이 금액을 변제하겠다는 내용의 차용증을 써주고 A씨의 은행 계좌로 1000만원을 송금했다.

B씨의 의심은 확신이 됐다. A씨는 끝내 1000만원을 갚지 않았고 사건은 결국 법정으로 넘어갔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B씨에게 돈을 빌리기 전 할머니에게 이미 합의금과 대출 연장 비용 등으로 500만원을 선지급했다"며 "1000만원 중 500만원은 선지급 비용에 충당했고, 나머지 500만원은 나중에 한 번에 1000만원을 변제해달라고 해 갚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항변했다.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강 판사는 "피고인(A씨)이 합의금 목적대로 금액을 사용했는지 여부가 혐의 성립을 결정할 요소"라며 "할머니에게 500만원을 선지급한 사실이 없다면 피고인은 피해자를 속인 것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이에 대한 증명 책임이 있는 검사는 이를 인정할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며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500만원을 피해자에게 고지한 용도대로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피해자인 B씨가 A씨에게 속지 않았다는 점도 무죄의 이유가 됐다. B씨가 A씨에게 속았다는 '기망행위가' 없었기 때문에 사기 혐의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B씨는 수사기관 조사를 받을 당시 "피고인이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돈을 그냥 달라고 했다"며 "솔직히 말하면 1000만원은 차용금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아울러 "당시 피고인으로부터 변제받을 생각이 없었다"며 "차용증은 피고인에 대하여 1000만원을 지급한 사실에 관한 증빙서류일 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강 판사는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해 착오에 빠뜨리고 그 처분행위를 유발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앞서 본 피고인 및 피해자 간 차용증, 금융거래내역만으로는 피고인의 기망 사실이나 기망행위와 처분행위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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