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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방탄복까지"…의료인 폭행 막을 대책 없나?

등록 2019.01.02 13: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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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폭행처벌강화법 매년 발의…국회서 낮잠

의료진 폭력 처벌 강화 '청원 동의' 3만명 넘어

"오죽하면 방탄복까지"…의료인 폭행 막을 대책 없나?

【서울=뉴시스】강세훈 기자 = 서울 강북삼성병원 임세원(47)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외래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사건을 계기로 응급실 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에서 의료진 폭행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의료인 폭행 처벌 강화법이 의원 입법 등을 통해 발의됐지만, 매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따라서 의료계 안팎에선 호신용 장비를 스스로 준비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28일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불과 사흘이 지나지 않아 참변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응급실 폭행 사건에 대한 처벌 강화만으로는 의료인 안전을 보호하는 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의료인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폭행은 수시로 이뤄졌고 살인사건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에도 경기도의 한 병원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6차례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해 의료계가 충격에 빠진 바 있다.

의사협회는 지난 1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의료계는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위험에 노출돼 있는 의료진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해 왔지만 번번이 좌절돼 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 폭행 사건에 대한 처벌 강화법이 통과 됐을 뿐 의료인 전반에 대한 폭행 처벌 강화법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해에만 의료인을 폭행·협박해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징역형 이상의 처분을 내리는 내용의 김광수 의원 법안, 의료인 폭행 처벌의 내용에 주취자 가중처벌을 추가하는 내용의 기동민 의원 법안 등 7개 법안이 발의됐다.

올해는 의료인 폭행 처벌 강화법이 본격적으로 심의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실제로 법안이 통과될 지는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의료진 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공감을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시작된 이 청원에는 사흘만인 2일 정오 현재 3만2000명이 넘는 사람이 동의했다.
 
하지만 처벌 강화가 사고를 막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의료인들은 입을 모은다. 급기야 의료계에서는 자체적으로 가스총이나 호신용 스프레이, 방탄조끼를 구매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A씨는 "호신용 스프레이 하나만 있었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사망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당장은 의사 스스로 자체 무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정신과의 경우엔 성격상 한 공간에 의사와 환자 둘 외에 보안인력을 대동하고 진료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한 정신의학과 의사 B씨도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며 "당장 진료책상 서랍에 호신용 도구를 비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병원 내 금속 탐지기 도입, 경찰 인력 배치 등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의사 C 씨는 "흉기는 아예 소지를 못하도록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는 방법이 그나마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개인 병원 같은 경우는 이 마저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정신질환자 모두를 잠재적 공격자로 치부해선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D씨는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정신질환이 없는 환자 보다 평균적으로 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 전체를 문제 삼는 것은 또 다른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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