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대백은 광화문 같은 곳"…77년 역사 이젠 아듀~
대백 본점 마지막 영업일, 시민들 "여기가 어떤 곳인데"
저마다의 추억 떠올리며 '향토백화점'과 아쉬운 이별
[대구=뉴시스]이무열 기자 = 전국 유일의 향토백화점인 대구백화점 본점이 7월 1일부터 잠정 휴업에 들어가는 가운데 30일 오전 시민들이 백화점 앞을 지나고 있다. 2021.06.30. [email protected]
중구에 사는 40대 여성 B씨는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간 대백에서 트램펄린을 산 경험을 잊지 못한다. 백화점에서 사는 것도 기뻤지만 개인용 트램펄린은 당시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B씨는 출산을 앞두고 육아용품들을 대백에서 샀다.
50대 후반 C(북구)씨는 절친과의 학창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삐삐(무선호출기)조차 없던 시절 친구와 화해하기 위해 만나기로 했지만 '대백 남문에서 보자'던 약속마저 어긋나 오해만 쌓였고 결국 둘은 크게 다퉜다. 정문과 남문을 헷갈려한 사소한 에피소드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안주거리다.
[대구=뉴시스]이무열 기자 = 전국 유일의 향토백화점인 대구백화점 본점이 7월 1일부터 잠정 휴업에 들어가는 가운데 30일 오전 시민들이 마지막 모습을 담기 위해 백화점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2021.06.30. [email protected]
일제강점기 말 1944년 대구상회로 문을 연 후 77년 만이다. 대구의 도심 동성로의 현 위치에는 1969년부터 자리했다. 이후 50여년 간 대구의 대표 '만남의 장소'로 시민들과 함께 했다.
대구 시민들에게 '대백'은 백화점 이상의 의미다. 대구백화점 로마자 표기도 'DEBEC'이다. 대백마트, 대백건설 등 하나의 브랜드로 역할해왔다. 낡고 노후된 건물 자체가 대구 근대역사물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
수성구와 인접한 중구 대봉동의 프라자점과 달리 동성로 본점은 도심의 중심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동성로 여러 갈래로 난 길을 걷다보면 대백 앞 광장이 펼쳐진다. 도심 한 가운데 있어 만남과 축제 장소뿐 아니라 각종 집회의 장인 서울 '광화문 광장'역할을 하고 있다.
유동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매번 선거를 앞두고는 유세장소로 후보들 간 자리 경쟁도 치열하다. 대구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대백 앞 광장 선거유세를 거쳤다. 시민들은 대백 정문 계단에 서서 이를 묵묵히 지켜봤다. 로마시대의 포로 로마노를 언뜻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오랜 향토 백화점이 여러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영업 종료에 아쉬움이 잇따른다. 대백 고객서비스센터에는 "문을 정말 닫는 것이냐. 여기가 어떤 곳인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전화가 이어진다고 했다.
[대구=뉴시스]이지연 기자 = 대구백화점 본점 영업종료를 하루 앞 둔 29일 오후 일부 매장은 물품들이 이미 정리돼 있다. 2021.06.30. [email protected]
백화점 특성상 브랜드 철수가 아닌 경우 물품을 빼내 텅 빈 매장은 보기 힘들다. 이를 지켜본 시민들도 저마다 '아쉽다',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1층에서 액세서리점을 운영한 업주 D씨는 모든 상품들을 정리해 뒀다. 간간이 찾아오는 단골손님들과 소회를 나눌 뿐이다. 명품 의류매장을 운영한 E씨는 분주히 움직이며 옷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몇 년 간 이어진 경기 불황으로 장사를 아예 접을 계획이라고 했다.
대구백화점 본점은 고객 감사 의미를 담아 한 달간 고별전 행사를 진행했다. 1층 한 켠에는 '77년 발자취' 본점 역사를 담은 전시회도 열어 시민들의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작별의 아쉬움에 시민들의 발길이 한 달간 끝없이 이어졌다.
2층에서 10년 넘게 신발가게를 운영해 온 F씨는 "고별전 기간 반짝 매출은 올랐지만 가격을 내려 판매한 탓에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했다. 영업 종료 이후에는 프라자점에서 계속 매장을 운영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대구=뉴시스]이지연 기자 = 영업종료를 하루 앞둔 29일 대구백화점 1층에서 고별전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1.06.30. [email protected]
최장훈 대구백화점 홍보팀장은 "대구시민들에게 대백은 늘 그 자리에 있는, 떠나 있어도 찾아볼 수 있었던 '어머니'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많은 시민들이 직접 전화로 아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향토기업으로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프라자점에 더욱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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