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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순교자 유해 200여년 만에 찾았다"…'능지처참' 흔적 그대로

등록 2021.09.01 16:39:33수정 2021.09.01 17: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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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권상연 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유해 발견

출토물 연대 순교한 1791년과 부합, 명문도 일치

유해에 능지처사 흔적 선명, 유전자도 가계와 일치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가운데)가 1일 전북 전주시 천주교 전주교구청에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유해 발견 관련 발표 및 교구장 교령 공포 기자회견'을 열고 교령 및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1.09.01.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가운데)가 1일 전북 전주시 천주교 전주교구청에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유해 발견 관련 발표 및 교구장 교령 공포 기자회견'을 열고 교령 및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1.09.01. [email protected]

[전주=뉴시스] 윤난슬 기자 = 전북 완주에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200여 년 만에 발견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일 오전 천주교 전주교구청 호남의사도 유항검관 4층 대강당에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유해 발견 및 교구장 교령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담화문을 통해 "유해 발견은 실로 놀라운 기념비적 사건"이라며 "순교자들의 피를 밑거름 삼아 성장해온 우리 교회가 순교역사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시는 분들의 유해를 비로소 찾았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저는 먼저, 이를 섭리하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와 찬미, 영광을 드린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기쁨을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 신부의 집념이 유해 발굴로 이어져…한국 최초 순교자 판명까지

이번 유해 발굴은 2018년 8월 초남이성지에 부임한 김성봉 프레드릭 신부가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는 초남이성지를 둘러보던 중 바우배기라는 곳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김성봉 신부는 유항검 복자 가족의 묘가 1914년 치명자산성지로 이장되기 전까지 원래 묘지터가 자리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김진소 신부에 이어 초남이성지의 초대 신부이자 바우배기 성지 개발을 시작한 김환철 신부를 찾아가 바우배기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바우배기 순교자 묘지 위치.(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바우배기 순교자 묘지 위치.(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두 신부의 증언을 바탕으로 김 신부는 언젠가는 이 일대에서 원래 묘지터를 찾을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자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매입 의사를 밝힌 뒤 용역 계약을 체결해 무덤을 개장하는 등 유해 발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후 지난 3월 11일 연고자가 나타난 1·2호기를 제외하고서 8기의 묘를 개장한 결과 5호기와 3호기 무덤에서 순교 복자들로 추정되는 유해와 함께 인적사항이 분명하게 표기된 '백자사발지석' 등을 발견했다.

◇'불필요한 의혹 없앤다'…유해 정밀감식 및 유물 연구 돌입

이처럼 유해와 인적사항 등이 담긴 유물이 발견됐으나 거쳐야 할 단계가 많이 남았다. 혹시 모를 불필요한 의혹이나 논란에 대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전주교구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교회가 정한 절차에 따라 순교자 유해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유물과 유해에 대한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이에 천주교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는 전 전북대학교 고고인류문화학과 윤덕향 교수, 전북대 의과대학 해부학 송창호 교수(유해 감식 책임자 지정) 등과 함께 유해감식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묘지의 조성연대와 출토물의 연대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순교한 1791년과 부합하고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사발지석의 명문 내용이 복자 윤지충·권상연의 인적사항과 각각 일치함을 확인했다.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왼쪽부터 3호 유해(복자 권상연 야고보)의 골반골·5호 유해(복자 윤지충 바오로) 다섯째 목뼈 예기 손상·8호 유해(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양쪽 위 팔뼈(상완골) 예기 손상 모습.(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왼쪽부터 3호 유해(복자 권상연 야고보)의 골반골·5호 유해(복자 윤지충 바오로) 다섯째 목뼈 예기 손상·8호 유해(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양쪽 위 팔뼈(상완골) 예기 손상 모습.(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아울러 성별 검사, 치아와 골화도를 통한 연령 검사 및 해부학적 조사를 통해 성별은 모두 남성으로, 연령은 순교할 당시의 나이와 부합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또 부계 확인검사(Y염색체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도 해남 윤씨와 안동 권씨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유해에 조선시대 형벌의 하나인 능지처사의 흔적이 선명했다고 전주교구는 전했다.

전주교구는 이러한 DNA 검사 및 고고학적 분석 결과, 교회의 역사적 문헌 등 여러 증거물을 제시한 끝에 지난달 18일 교회특별법원은 "교회법적 절차에 따라 모든 증거를 검토한 결과 3명의 유해가 확실하다"고 선고했다.
 
◇한국 최초 순교자 복자 윤지충·권상연은 누구?…신유박해 순교자 윤지헌도
 
윤지충 바오로는 1784년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실의'와 '칠극'을 접하고, 고종사촌인 정약용 형제의 가르침으로 천주교에 입교했다.
[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유해 발굴 작업 모습.(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유해 발굴 작업 모습.(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그는 1790년 베이징 구베아 주교가 조선 교회에 제사금지령을 내리자 이를 따르고자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웠다. 또 1791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천주교 예법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윤지충과 권상연은 피신했다가 가족이 대신 잡혀가자 결국 자수했고, 모진 고문을 받았다.

 결국 두 사람은 1791년 11월 13일 전주 남문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윤지충의 나이 32세, 권상연은 40세였다.
이들은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을 내놓은 한국 천주교회 첫 순교자로 기록됐다.

윤지헌 프란치스코는 윤지충 바오로의 동생으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던 중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교회 활동이 알려지면서 1801년 10월 24일 능지처참형을 받고 37세 나이로 순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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