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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 첫 순교자 유해발굴, 참수·능지처참 복자들

등록 2021.09.01 13: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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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배기 순교자 묘지

바우배기 순교자 묘지


[전주=뉴시스] 윤난슬 기자 = 전북 완주 초남이 성지에서 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인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220여년 만에 발견됐다.
 
이들 3인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시복을 받아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에 올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일 "지난 3월11일 초남이 성지에서 바우배기 일대를 정비하다 220여년 만에 순교자로 추정되는 유해와 유물을 출토했다"고 밝혔다.
 
 복자 윤지충은 고산 윤선도의 6대 후손으로, 1759년 출생해 25세 때 진사시험에 합격했다. 1784년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실의', '칠극' 등 천주교 서적을 접하고 고종사촌인 정약용 형제의 가르침으로 천주교에 입교했다.

1751년생인 권상연 야고보는 본래 학문에 뜻이 있었으나 고종사촌인 윤지충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 기존의 학문을 버리고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윤지충은 1790년 베이징 구베아 주교가 조선 교회에 제사금지령을 내리자 이를 따르고자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웠다. 또 1791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천주교 예법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들이 전통 예절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소문은 친척 등을 통해 널리 퍼졌고, 조정에까지 알려지면서 윤지충과 권상연은 피신했다.하지만 윤지충의 숙부가 대신 잡혀가자 모두 관아에 자수했다.

 진산군수는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권유했으나 이들은 "절대로 신앙 만은 버릴 수 없다"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여러 차례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태도에 변화가 없자 전주감영으로 이송됐고, 이때부터 모진 고문을 받았다.
왼쪽부터 3호 유해(복자 권상연 야고보)의 골반골, 5호 유해(복자 윤지충 바오로) 다섯째 목뼈 예기 손상, 8호 유해(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양쪽 위 팔뼈 예기 손상

왼쪽부터 3호 유해(복자 권상연 야고보)의 골반골, 5호 유해(복자 윤지충 바오로) 다섯째 목뼈 예기 손상, 8호 유해(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양쪽 위 팔뼈 예기 손상


결국 1791년 11월13일 전주 남문밖 전동성당 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윤지충의 나이 32세, 권상연은 40세였다.

특히 윤지충은 사형 판결문이 전주에 도착해 옥사에서 나와 형장으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마치 잔치에 나가는 사람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고 "예수, 마리아"를 노래했다고 전주교구 측은 전했다.

이들의 친척들은 9일 만에 관장의 허락을 얻어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둘 수 있었다. 이때까지 시신에는 조금도 썩은 흔적이 없고, 형구에 묻은 피가 방금 전에 흘린 것처럼 선명한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형 윤지충을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된 윤지헌 프란치스코는 1787년 이승훈 베드로에게서 세례를 받은 이후 가족과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해 갔다.

1791년 형이 순교하자 더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그는 고향을 떠났다. 교회 서적을 베껴 읽으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천주교에 입교시키기도 했다.

그러던 중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그의 교회 활동이 관청에 알려지며 동료들과 함께 체포돼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끝까지 신앙을 지키던 그는 의금부에서 마지막 문초를 받은 후 자신의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했으며, 다시 전주로 이송돼 1801년 10월24일 능지처참형을 받고 37세 나이로 순교했다.
 
이번 유해 발굴과 관련해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유해 발견은 실로 놀라운 기념비적 사건이다. 순교자들의 피를 밑거름 삼아 성장해 온 우리 교회가 순교 역사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분들의 유해를 비로소 찾았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먼저, 이를 섭리하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와 찬미, 영광을 드린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기쁨을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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