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해체해 경성으로 옮겨라?…'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
‘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 경주 석굴암(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이 증보·발간한 고(故) 황수영(1918-2011) 박사의 ‘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이양수·이소령 증보, 이기성·강희정 해제, 사회평론)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1909년부터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석굴암(국보 제 24호)에 관심을 가졌다. 이듬해 총독부는 아예 석굴암 전체를 해체해 경성으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경주군 주임서기 기무라 시즈오를 비롯한 지역의 부정적 여론과 관계 기관들의 입장 차이 그리고 경제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계획 자체는 무산됐다. 이후 석굴암의 문화적 가치에 주목해 시찰하러 오가는 사람들이 늘었고 석굴 안에 있던 불상 2구와 소형 탑 등이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으며, 대대적으로 보수된 후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pp.211-214).
1973년 한국미술사학회에서 첫 출간한 ‘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는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도굴과 파괴 등 우리 문화재의 수난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금동보살입상(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증보판 ‘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는 황수영 박사가 문헌을 편집·기록한 자료집의 체제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인용 문헌의 원문을 바탕으로 앞뒤 내용을 폭넓게 번역·수록해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보완했다.
특히 기존 자료집에는 도판이 한 장도 실려 있지 않았으나, 이번 증보판에서는 인용 자료의 실제 이미지와 관련해 유물의 컬러도판 등을 다양하게 실었다. 또 각 항목에서 다루는 유물이나 유적에 대한 전문 연구자의 해제를 추가해 해당 내용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 오쿠라문화재단 소장 이천오층석탑(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동관 1층 상설전시실에 전시돼 있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국보 제 86호)’은 일본인에 의해 반출됐다가 돌아온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이 탑은 개성 부소산 경천사 터에 있던 것을 1907년 일본 궁내대신(宮內大臣) 다나카 미쓰아키(田中光顯)가 개인적으로 해체해 일본으로 가져가 물의를 빚었다. 일본 국내에서도 이 일은 큰 문제가 돼 해체된 경천사 탑은 도쿄제실박물관(현 도쿄국립박물관) 경내에 포장된 채로 보관돼 있다가 다시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졌다(pp.270-278).
‘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밖에 조선총독부가 사상적 이유로 파괴한 문화재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1940년대 이후 ‘국민의 사상 통일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항일 전적비나 공훈비를 철거해 박물관으로 옮기거나 현지에서 폭파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공적을 기록한 ▲‘해남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보물 제 571호)’등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광복 이후 원 위치로 이전됐다(pp.373-374). 항일 승전기념비인 ‘황산대첩비’는 현지에서 폭파되기도 했다(pp.370-372).
일제기 문화재 피해자료 책표지(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오는 11월에는 일본에서 일문판 ‘일제기 문화재 피해 자료’가 발간될 예정이다. 국문판과 일문판이 발간되면 일제 강점기 우리 문화재의 피해와 반출 과정에 대한 한·일 양국 국민의 관심과 이해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2일 "국문판과 일본판 발간을 계기로 문화재청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국외문화재의 환수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적극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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