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건물 붕괴 참사' 5중 부실이 낳은 원시적 재난
속도·수익만 좇는 재개발사업, 불법다단계 하도급
공사비 대폭 줄고, 면허 없는 재하청 업체만 철거
해체 계획 무시, 위험성 민원에도 관리·감독 뒷전
[광주=뉴시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 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사고와 관련, 붕괴 건축물이 무너져 도로로 쏟아지기 직전 철거 모습. (사진=독자 제공) 2021.06.10.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는 예견된 인재(人災)였다는 지적이다.
안전불감증, 속도·수익만 좇는 재개발 사업, 불법 다단계 하도급, 졸속 공사, 관리·감독 소홀, 미흡한 안전사고 예방책과 법령 등이 속속 드러나면서다.
◇부실 공사…해체계획서 엉망, 매뉴얼 2배 물 폭탄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공동주택 재개발사업 근린생활시설 철거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지하 1층·지상 5층)의 해체계획서는 하자 투성이였다.
층별 철거 계획이 부실했고, 국토교통부 고시와 달리 철거 장비 하중 계산이 빠졌다. 구조 안전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엉터리 계획서에 이어 건물 해체 절차를 어겼다. 계획대로 5층부터 아래로 해체(하향식)하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1~2층을 먼저 허문 뒤 건물 뒤쪽에 쌓아둔 흙더미 위(3~4층 높이)에서 굴삭기가 중간부터 해체 작업을 했다.
외벽 철거 순서도 지키지 않았다. 벽의 강도가 가장 낮은 왼쪽 벽을 허물지 않고 뒤쪽 벽을 부쉈다. 붕괴 당일 공사장 비산 먼지를 줄이기 위해 평소보다 2배 많은 물을 뿌렸다. 철거 공정(흔히 '집게'를 이용한 압쇄 방식) 또한 철거 공법 중 가장 위험하지만 비용이 덜 드는 것이었다.
◇부실 행정…"위험하다" 반복된 수차례 민원 무시
시민들은 해당 철거 현장의 철저한 관리 감독과 안전 조치를 촉구하는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동구 누리집 '구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을 비롯해 국민권익위원회 국민 신문고에 민원 글이 잇따랐다.
붕괴 두 달 전에는 같은 재개발 구역에서 철거 중인 옛 축협 건물의 인명사고 위험성을 제기하는 공익 제보도 있었다. 해당 건물은 무너진 건물과 불과 300m가량 떨어져 있었다.
사고 발생 한 달 전에도 안전 위협 민원이 이어졌다. 하지만, 동구는 '이행실태를 관리하고 있다' '안전 조치 명령 공문을 보내 조치했다'는 취지의 답변만 했다.
동구는 잇단 민원에도 철거 작업이 계획대로 이뤄졌는지 현장에서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행정기관의 책임론이 제기돼 감독 부실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위험한 철거 공정을 관리·감독해야 할 감리자는 '비상주감리' 계약에 따라 현장에 상주하지 않았다.
감리자는 건물 구조 안전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해체 계획에 적합 판정만 내렸다.
철거 절차 위반을 적발하면 공사 중지 명령까지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책무를 저버렸다. 감리자는 참사 다음 날 새벽 사무실에서 감리 관련 자료를 빼돌렸다는 의혹도 받는다.
◇부실 안전…가림막 의존, 승강장 방치, 통제 뒷전
재개발 사업과 위탁 철거공사를 한 시행·시공사는 무너진 건물 바로 앞의 승강장 이설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공사장 인근에 신호수 2명을 배치하는 것으로 위험을 담보했다.
참변이 일어난 승강장은 동구 지원동과 무등산 방향으로 진행하는 14개 노선버스가 정차하는 곳이다. "공사 기간만이라도 승강장을 잠시 옮겼더라면 대형 참사를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차도를 통제하지도 않았다. 가림막은 무용지물이었고, 건물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흙과 폐건축물 더미도 부실하게 설치돼 있었다.
이러한 안전 불감증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는 통째로 무너진 건물을 피할 틈도 없이 휴짓조각처럼 주저앉았다.
◇부실 계약…곳곳 재하도급 정황, 붕괴 사고 초래
경찰 수사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드러났다. 해당 구역의 일반건축물 철거 공사는 ▲현대산업개발(시행사) ▲한솔기업(시공사) ▲백솔기업으로 하청·재하청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석면 철거 공사는 다원이앤씨가 수주해 백솔기업에 하청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다원이앤씨는 '철거왕'으로 불렸던 이모 씨가 설립한 다원그룹 계열사다.
이윤만 남기기 급급한 다단계 하도급으로 공사비는 대폭 줄었고(3.3m²당 28만 원→10만 원→4만 원), 날림 공사로 이어졌다.
실제 백솔기업만 철거 작업을 했는데, 다른 업체에서 석면 해체 면허를 빌려 공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다원이앤씨가 한솔기업과 이면 계약을 하고 하청을 준 백솔기업에 구체적인 공법까지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시행사인 현대산업개발 측이 한솔·백솔기업 측에 먼지 민원을 줄이기 위해 살수를 많이 하라는 지시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살피고 있다.
경찰은 부실한 건물 지지 정황, 수직·수평 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철거 방식, 물을 머금은 흙더미가 내려앉으며 건물 하중 증가, 굴삭기의 건물 내부 작업 등이 결합돼 통째로 건물이 무너졌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전문기관 감정 내용과 국토부 조사 결과 등을 두루 고려해 붕괴 원인을 규명한다. 현재까지 7명(현대산업개발, 한솔·백솔기업 각 3명과 감리자 1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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