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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얄타회담 데자뷰 트럼프-푸틴 회담, 같은 점과 다른 점

등록 2025.03.18 14:38:14수정 2025.03.18 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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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전화 통화를 갖고 우크라이나 휴전 문제를 논의한다. 두 강대국 지도자가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빼고 운명을 결정하려는 점에서 얄타 회담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만나 ‘30일 휴전안’을 만들어 의견을 들었다지만 실제 협상 과정에서 얼마나 의견이 반영될지 모를 일이다.  



포린 어페어즈는 최근 ‘우크라이나 협상은 새로운 얄타회담이 될 것인가’라는 전문가 분석을 싣고 강대국 권력정치, 세력권 정치의 부활이라고 진단했다.

얄타 회담은 2차 대전 막바지 냉전의 길목에서 있었다. 80년이 지난 후 신냉전의 서막을 여는 트럼프와 푸틴의 회담은 얄타와 닮은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다.

전후 유럽과 동북아 판도 결정한 얄타 회담


1945년 2월 루즈벨트 대통령, 처칠 수상, 스탈린 서기장이 만난 얄타. 이곳은 러시아가 2014년 2월 전격 점령한 크름반도의 남단에 있는 제정 러시아 황제 여름별장 휴양지다. 



루즈벨트는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지은 곳으로 도청 장치가 득실득실한 리바디아궁에서 머물며 회담에 참가했다. 

루즈벨트는 황금 양털의 전설이 담긴 이름인 극비 이동 ‘아르고호 작전’을 통해 10여일에 걸친 여정 후 회담에 참가했다. 루즈벨트는 장거리 여행과 회담 스트레스 등의 후유증도 한 요인으로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사망했다.

얄타 회담은 동유럽과 중국 만주 등 동북 지방을 스탈린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게 했다.

스탈린은 러일 전쟁 패배 이후 쫓겨났던 중국 동북에 다시 군대를 보내고 일본이 깔아놓은 만주 철도를 마음대로 썼다. 대일본 전쟁 참전 대가였다.

장제스 중국 국민당 정부는 승전국이었지만 내전 혼란속에서 소련군이 다롄까지 차지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하얼빈 다롄 등이 ‘중국속의 러시아 도시’가 됐다. 

마오쩌둥이 1949년 12월 모스크바로 달려가 2개월 가량 머물면서 스탈린을 처음 만났다. 신중국 성립 이후 필요한 원조 요청도 있었지만 만주의 러시아 세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 더 큰 관심사였다. 

마오가 스탈린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1950년 1월 초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애치슨 라인’ 선포한 연설)이 며칠 간격으로 했던 연설은 모스크바의 마오 들으라고 한 것이었다. 핵심은 “대만을 넘겨줄테니 스탈린과 손을 끊으라”는 것이었다.

마오는 뜻하지 않은 미국의 ‘러브콜’을 스탈린에게서 동북을 되찾아오는 조약을 맺는 지렛대로 썼다.

마오가 ‘제 2의 티토’가 되는 것을 우려한 스탈린은 장제스에게 얻어낸 권리를 대부분 내주는 신조약을 체결했다. 마오는 그해 11월 6·25 전쟁에 참전해 미국과 적대국이 됐다.

이런 전후 강대국 정치의 회오리속에 장제스의 대만은 미국의 안보 우산속에 들어가 살아남았다.

얄타 체제에서 구축된 동유럽 전후 질서는 1990년 구소련 붕괴로 바뀌었지만 한반도 남북 분단과 양안(중국 대륙과 대만) 관계 등 동북아는 그대로다.

푸틴의 야망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동유럽으로 

러시아는 크름반도 합병 8년 후인 2022년 2월 이번에는 동부 돈바스 등으로 ‘특별군사작전’을 전개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20% 가량을 차지했다. 

푸틴의 머릿속에는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일부를 차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이 얻어냈던 동유럽의 세력권을 되찾고 구소련 붕괴 이후 옐친 집권 시절 국가 부도위기까지 몰리며 당했던 수모를 되갚고 싶을 것이다.

푸틴은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 KGB 요원으로 독일 등에서 15년 이상 근무하며 소련 제국의 붕괴를 체험했다.

스탈린이 얄타회담에서 얻어낸 동유럽에 대한 세력권은 히틀러의 나치를 격퇴하는데 2000만 명 이상의 희생을 치른 후였다.  

하지만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교두보로 다시 동유럽으로 확장하려는 데는 이유도 명분도 없다.

얄타회담은 자유진영의 루즈벨트와 처칠 대 스탈린 2 대 1 구도였다지만 2차 대전으로 국력이 기운 대영제국 처칠의 입김은 크지 않아 루즈벨트와 스탈린의 회담이었다.

이번에는 트럼프와 푸틴으로 바뀌었다.

얄타 때처럼 ‘3거두’가 모여 처칠 수상같은 한 자리가 더 있다면 중국 시진핑 주석일 것이다. 시 주석의 중국은 처칠의 영국 못지않은 강대국이 됐지만 회담에 참가할 명분도 기여한 것도 없다.

얄타회담은 동유럽과 중국을 스탈린에게 팔아넘기고 미국 국내적으로는 공산주의를 조장했다는 비난을 받는다.(‘8일간의 얄타회담’·세르히 플로히)

강대국의 권력정치 부활 

소련의 붕괴 이후 30여년이 지나면서 탈냉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던 ‘일극체제’는 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달러 제국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화폐 전쟁’ 시리즈를 출간한 중국 쑹훙빈은 ‘달러의 빙하기’가 올 것이라고 조롱했다.

트럼프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것은 멀어져가는 초강대국의 향수가 남아있다. 

올해로 집권 25년을 맞은 푸틴은 가까이는 구소련, 멀리는 제정 러시아 제국 영광의 재현을 꿈꾼다.

아편전쟁 이후 서양 제국주의에 침탈되고, 동양의 소국 일본이 동북에 만주국을 세우는 등 자존심을 구긴 중국에서는 시진핑의 중화부흥 구호가 호응을 받고 있다.

트럼프 집권 후 세 강대국 지도자 모두 자국이 국제사회에서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이고 팽창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중국은 대만과 남중국해, 러시아는 우크리아나를 넘어 동유럽, 미국은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운하 등으로 방향만 다를 뿐이다.

1945년 얄타 협상에서 세계 지도를 다시 그렸던 것처럼 주변국 입장이 무시되거나 소홀히 되는 것이 비슷하다. 과거와의 비교에서 느끼는 불만을 강권을 통해 되찾으려 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1991년 이후 이념적 갈등이 시장 자유화, 민주화, 세계화로 자리를 내주면서 강대국 권력정치, 영향력 경쟁은 잠시 뒤로 미뤄졌다.

민주적 규범의 세계적 확산과 구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서구 편입으로 냉전의 지정학적 단층선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했다.

지금은 적대적이 됐지만 구소련 해체 몇 년후 러시아가 NATO 가입을 모색하던 때가 있었다.

1997년 NATO와 러시아는 “어떤 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경계나 영향권을 나누지 않고 유럽에 안보와 안정을 위한 공동의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틀을 구상했다. 

하지만 NATO의 동진 확장을 보며 집권한 푸틴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날 조지아를 침공했고, 2014년 2월 크름반도, 8년 후 우크라이나 동부를 침입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위성국으로 만들려고 한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강대국 주도로 진행되는 점은 얄타 회담과 유사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

약소국이 강대국의 강권에 아무 소리도 못냈던 얄타 때와는 다르다.

유럽 국가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젤렌스키는 2월 28일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설전을 벌인 것이 상징적이다. 대만은 반도체 경쟁력으로 일방적으로 무시하지 못한다.

미국은 지역적 팽창주의 정권에 대한 주요 견제자였으나 트럼프는 이를 모방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이 예측 가능한 힘의 균형으로 돌아가는지 아니면 장기간의 불안정과 전쟁을 시작하는지는 실마리가 될지 미지수다.

각자도생의 시대, 2차 대전 이후의 질서가 다시 밀림으로 복귀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벌써 나왔다.(‘밀림의 귀환’ 로버트 케이건)

각자도생 시대 한국의 생존 자산은 무엇

한국은 6·25 때 막 번지기 시작한 냉전의 최전선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의 장점이 있었다.

지금은 미중 갈등과 북핵 위협으로부터 지킬 생존의 자산이 무엇인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폴란드는 핵무장으로 가고, 안보 불안에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북구 3국이 NATO에 가입했다.

한국은 미중 사이 경쟁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모니카 더피 토프트 터프트대 플레처 법학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중국과 관계를 심화시켜 자신의 입장을 헤지(hedge)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공감언론 뉴시스 kjdrag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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