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망가졌다" 탈레반 통치 첫날 아프간 주민들
[카불(아프가니스탄)=AP/뉴시스]무장을 한 탈레반 소속원들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트럭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사람들이 망가졌어요."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한 첫날 주민들은 암울함을 자아냈다.
AP통신, 영국 가디언 등은 31일(현지시간) 이러한 아프간 주민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아프간 여성 아리파 아마디는 탈레반 정권 첫날을 자신의 청바지와 다른 옷들을 불태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마디는 지난 20년 동안 서구의 지원을 받는 정부 하에 자랐다. 탈레반 치하와 달리 교육, 고용 등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지 않으며 자랐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일자리를 잃었다고 밝혔다.
"저는 파라에 있는 세관에 취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결국 일자리를 얻었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취업 축하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매우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마디는 취업한 지 3주만에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많은 여성들이 탈레반으로부터 사무실을 떠나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아마디는 "지금은 수염이 긴 남자가 내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아침부터 울고 있다. 오빠가 부르카(눈 부위를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의상)를 사줬고 난 오늘 청바지를 태웠다. 옷들을 불태우며 내 희망도 불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무엇도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이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보탰다.
[카불/AP=뉴시스] 지난 13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 공원에 있는 텐트 안에서 부르카를 입은 한 여성이 AP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8.18.
카불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네사르 카리미는 카불의 한 은행에서 탈레반 통치 첫날을 시작했다.
그는 "은행이 문을 열기 전인 오전 6시쯤 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며 "낮 12시까지 있었는데 ATM기에 돈이 다 떨어져서 아무것도 없이 집에 돌아왔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고 했다.
또 "탈레반은 파이프로 사람들을 때리고 있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너무 엉망진창이라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째 돈을 찾으려고 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카리미는 "평생 이곳 카불에서 살았지만 이런 카불은 본 적이 없다"며 "거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전혀 없다. 사람들은 모두 감각을 잃었고, 이제는 신경도 안 쓴다. 우리 세대는 몇 시간 만에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람들이 망가졌다"고 말했다.
아프간 북부 마자르 이 샤리프에 거주하는 자바르 라흐마니는무신론자다. 그래서 서구의 지원을 받는 정부 아래서도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었다.
그는 "저는 수염을 기르고 아프간 전통의상을 입기로 했다"며 "누구도 무엇을 입어야 할지, 어떤 패션을 갖춰야 할지 들을 수 없다. 수염이나 옷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매우 간단한 것일 수 있지만 여기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투쟁"이라고 전했다.
라흐마니는 "평생 이 땅에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 공부했는데 이 사람들이(탈레반) 내 희망을 묻어버렸다. 이 상황은 탈레반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카불(아프가니스탄)=AP/뉴시스]아프가니스탄 카불 주민들이 은행 앞에서 돈을 인출하기 위해 긴 줄을 서서 대기 중이다. [email protected]
헤라트에 거주하는 레샤드 샤리피는 탈레반이 자신이 매일 운동하던 것을 금지시켰다고 했다.
그는 "저는 헤라트 근처 산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난다. 항상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오늘은 탈레반 통치 하에 달리는 첫날이었다. 그런데 탈레반 대원들이 나에게 총을 겨누며 막았다. 그들은 저에게 '돌아가서 무슬림처럼 옷을 입고 돌아오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탈레반이 점령한 이후 헤라트에 살고 있지만 이렇게 많이 다치지는 않았었다. 삶의 희망을 잃었다"고 밝혔다.
앞서 탈레반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 보장 등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샤리아 율법'에 기반해 자유를 보장하고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했는데, 사실상 샤리아에 대한 해석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자유 보장, 인권 존중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경제 위기와 생계 위협까지 동시에 겪고 있다.
미국의 철수로 국제 원조가 끊겼고 쌀, 밀가루 등 생활 필수품 가격이 종전보다 적게는 10%, 많게는 20%까지 올랐다. 앞서 밝힌 카리미의 사례처럼 은행에 돈이 있어도 돈을 뽑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살 수 있는 물건도 없는 실정이다.
반대로 탈레반 통치 상황에 적응해 다시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AP통신은 코란 구절이 적힌 탈레반의 백기를 파는 노점상의 소식을 전했다. 이 노점상은 작은 크기의 탈레반 깃발을 15달러(약 1만 7352원)에 판다. 교통체증을 뚫고 지나가는 차들을 상대로 판매한다.
그는 이전에는 자동차 청소용 옷을 팔았는데 당시에는 하루 수입이 4달러 정도에 그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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