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구간설정위 또 노사 추천…갈등 반복 우려
"노사 추천 살리면 구간설정위 따로 만든 의미 없어"
"유관학회 및 국회 추천·노사 교차배제권 부여해야"
이재갑 "결정위 국회 추천몫 국회 논의서 정리될 것"
고용노동부가 7일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은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누는 게 핵심이다.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를 신설해 합리적인 상·하한 인상구간을 설정하고, 노·사·공익 위원으로 구성된 결정위원회가 이 범위 내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또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보완하기로 했다. 현재 결정기준에 반영하고 있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소득분배율 ▲노동생산성 등 외에 새롭게 ▲임금수준 ▲사회보장급여 현황 ▲고용수준 ▲기업 지불능력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 상황을 추가하기로 했다.
◇"노사 추천하면 구간설정위원회 따로 만든 의미 없어"
하지만 그동안 반복된 노·사의 극단적 대립을 줄일 수 있는 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낙관적이지 않다.
전문성과 과학성을 높이기 위해 신설하는 구간설정위원회가 노동계와 경영계가 추천하는 방식으로 돼 있어 또 다시 노사 간 대립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초안을 통해 구간설정위원회 전문가 위원을 9명으로 구성하며 위원은 노·사 단체가 직접 추천하거나 노·사 단체의 의견을 들어 선정하기로 했다.
노사정 각 5명씩(총 15명) 추천 후 노사가 각 3명씩을 순차배제(총 6명) 해 9인으로 구성하는 1안과 노사정 각 3명씩 추천해 9명으로 구성하는 2안 중 검토할 방침이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조준모 교수는 "기존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 정치교섭 문제를 개선하고 과학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구간설정위원회를 둔 것인데 다시 노사 추천을 받아 전문가 위원을 선정하는 것은 구간설정위원회를 따로 만든 의미가 없다"라면서 "노사 몫을 아예 뿌리 뽑고, 유관학회나 국회의 추천을 받은 뒤 노사 교차배제권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한 방안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사실상 당사자가 배제된 채 공익위원으로만 구성된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을 통해 "노·사·공 3자 위원회 방식을 유지한다고 했지만 정부가 제시한 구간설정 위원회는 당사자가 배제된 채 공익위원으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사실상 최저임금이 공익위원에 의해 결정되는 불균형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폭은 통계와 분석이 필요한 전문가의 연구, 분석 영역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며 "최저임금은 전문가의 책상이 아니라, 공장과 사무실, 청소실과 급식실이라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구간설정위원회가 설정한 상·하한 범위가 지나치게 넓을 경우 사실상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 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정위원회, 국회 추천권 규모 따라 영향 달라질 것"
정부는 결정위원회를 노·사·공익 3자 동수로 구성하되, 전체 숫자는 15명 또는 21명으로 하기로 했다.
정부는 특히 그동안 정부가 추천권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공정성 논란을 야기했던 공익위원에 대해서는 국회가 일정규모 추천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 노·사 단체가 공익위원 선정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추천권과 순차배제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기로 했다.
결정위원회를 21명(노사공 각 7명씩)으로 할 경우 국회가 3명, 정부가 4명을 추천하는 1안과, 노사정 각 5명씩 추천(15명) 후 노사가 순차배제(각 4명)하는 2안 중 검토할 방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결정위원회 공익위원에 대한 정부 추천권, 국회 추천권 등의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선 정부 편향성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조 교수는 "정부는 결정위원회 공익위원에 대한 국회 추천권 몫 등을 확정하지 않고 전문가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확정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편향성 문제를 벗어날지는 앞으로 정해질 구성 인원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위원 추천이 균형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기준이 모호하면 기존 문제의 본질은 하나도 개선이 안될 것"이라며 "국회 추천, 유관학회 추천 등 균형성, 중립성, 독립성 있는 추천 방식(으로 되는 게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광택 국민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공익위원 선정 방식이 지금의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청하는 방식이 아닌 노사가 추천하고 순차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으로 해야 정부 편향성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국회 추천권 3명에 대한 여야 배정분을 묻는 질문에 "만약 국회 추천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최종안을 결정하면 국회 논의과정에서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결정기준 항목 추가...노동계 반발
정부는 또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보완하기로 했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기준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이다. 여기에 임금수준, 사회보장급여 현황, 고용수준, 기업 지불능력,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 상황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노동계는 경영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개선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정부는 고용 수준, 사업주 지불 능력 등 고용 및 경제상황을 염두에 둔 결정기준을 밝혔지만 현재까지 학계 및 연구기관에서 발표된 최저임금 연구에서 고용 및 경제 영향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다"며 "더구나 사업주의 지불능력을 고려한다는 것은 최저임금법 제 1조에서 밝히고 있는 '노동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고용수준, 경제상황, 사회보장급여 현황 등을 결정기준에 명시적으로 추가하겠다고 했다"며 "이는 재벌대기업 등 재계의 압력에 굴복해 최저임금 1만원으로 대표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핑계댄 국제노동기구(ILO) 최저임금결정협약은 최저임금제도 운용에 있어 권한 있는 노사 대표와 충분히 협의하기 위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 노동계와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하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ILO협약의 취지와 정신에 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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